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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22. 2020

코로나에서 회복하는 방법

코로나, 기후변화, 그리고 Green Recovery

같은 글이 영문 블로그에도!


2020년. (아우 지겨워)


온 세계가 처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공평하게' 무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8월 현재 전 세계에서 80만 명에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이 바이러스 앞에서 인류는 속수무책입니다. 의료나 재정 인프라가 열악한 국가들은 방역, 추적, 치료에 거의 손을 놓고 있고, 세상 선진국인 줄만 알았던 나라에서도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내는 와중에도 마스크를 쓰네 마네 하며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 전염병의 경험이 과연 모두에게 공평할까요? 학교를 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며 학습 불평등이 심각해졌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습니다. 가정에서 온라인 학습 환경을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는 인프라(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환경, 보충 학습의 기회)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성취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해요. 학습뿐만이 아닙니다. 이 곳 홍콩에서도 정부가 모든 공공시설을 닫으며 테니스장, 골프장 등도 폐쇄되었는데, 부자들은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프라이빗 클럽에서 계속 스포츠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레저를 즐기고 있다고 해요. 이 전염병 앞에서 인간의 신체는 똑같이 무력하지만, 각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원에 따라 각기 다른 경험이 되는 듯합니다.


이렇듯 치명적인 전염병이나 핵전쟁,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 등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 '공평하게' 파괴하겠지만,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은 결코 공평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에서 기후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여러 사진을 보도했습니다 [1]. 전 세계가 더워진다, 북극 빙하가 녹는다 말은 많이 하지만 우리는 매체로만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지구의 변화를 여실히 체감하고 있는 듯합니다. 기온 상승과 가뭄은 특히 저소득층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으니까요. 기후변화가 지금 추세로 진행되면 시간문제일 뿐 결국 우리 모두는 피해를 입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느리고 불공평하겠죠.

기온 상승과 가뭄으로 인해 더 고통받는 사람들(출처: New York Times)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변화, 그리고 Green Recovery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명뿐 아니라 경제와 산업 측면에서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지만, 사실 기후변화 부문에서는 한 가닥의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전에 코로나 사태와 기후변화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요, 온 세계가 잠시 멈춰 서면서 산업, 교통, 항공 분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이 줄었거든요. 전 세계에 팬데믹 공포가 극대화되었던 5월 경 나온 자료를 보면 연간 배출량이 전 해에 비해 8퍼센트 가량 감소했다고 합니다 [2].

예년 대비 2020년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출처: Nature.com)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번 몇 달 동안 배출량이 주춤했으니 지구에게 회복할 기회를 주었다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토닥토닥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 '이제까지 해놓은 짓'이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거든요. 욕조에 목욕물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제까지 물을 신나게 콸콸 틀어 놓다가 그 양을 잠깐 줄였다고 (수도꼭지를 잠근 것도 아니라고요ㅠㅠ 그냥 수도꼭지를 약간 돌려서 나오는 물의 양이 적어진 것뿐) 욕조에 찰랑거리던 물이 갑자기 쑥 내려가는 건 아니겠죠?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인 거죠.


그러면 어차피 망했는데 그냥 원래대로 살고 내생을 기약해야 할까요? (안녕 지구. 고마웠어) 그 아닙니다. 요즘 EU를 중심으로 Green Recovery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배출량이 많이 줄었으니, 경제 회복을 할 때 이걸 계기로 삼아 청정하게 회복해 보자는 담론입니다. 지금 세계 각국의 정부는 코로나 이후의 경기 부양책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 중인데요, 특히 영국, 독일 등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배출량 감축 사업을 지원하고, 녹색 산업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계획을 속속들이 내놓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국가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등장한 세계 주요국의 경기부양책을 비교 분석한 아래 그래프를 한 번 보세요. 초록색은 Green Recovery에 부합하는 정책, 갈색은 반대의 정책인데요, 갈색이 훨씬 많은 걸 한 눈에도 알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초록색 정책이 뭐고 갈색 정책이 뭔지는 다양하지만, 쉬운 예로는 석탄 사용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 산업 중,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 산업을 지원하느냐 서서히 줄여 나가느냐로 정책의 방향을 알 수 있죠. 정부가 석탄 사용을 줄이자는 계획을 세워서 신재생이나 청정에너지로 서서히 대체해 가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영국에서는 며칠 전 마지막으로 남은 석탄 광산 중 하나가 문을 닫았습니다), '요즘 좀 힘들고 석탄은 싸니까 일단 규제 없이 태우자'라는 국가도 있는 거죠(호주는 최근 비트코인 서버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 다시 석탄 사용량을 늘렸습니다).

 

친환경 지표로 본 각 주요국의 경기 부양책(출처: Carbon Brief)


문제는 갈색 국가들이 경제 대국이 많다는 겁니다. (한국도 껴있네요ㅠㅠ) 바지런하게 각종 환경 규제를 완화해서 환경 단체들의 속을 문드러지게 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오일 및 가스 개발 시 메탄이 새어 나오는 것을 규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어요. (메탄이 이산화탄소보다도 훨씬 강력한 온실 가스인데, 어차피 그분은 기후변화는 사기(hoax)라고 믿으니 뭐..) 또 중국은 다른 국가들이 허덕대고 있던 7월에 유일하게 경제 성장을 기록해서 향후 온실가스 배출이 우려되는 시점이지요.  


세계 각국이 서로 다른 방향의 정책을 내놓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국가란 본래 이기적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는 법인데, 일단 생존에 급급한 국가라면 Green Recovery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요. UN 기후협약에 따르면 기후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맞춰야 하는데, 그러면 많은 국가들은 아직 땅에 묻혀 있는 화석 연료를 개발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해요. 특히 저개발 국가들은 억울한 노릇이지요. 실제로 방글라데시 대표는 "우리가 하지도 않은 일을 책임지기 위해서 왜 희생을 해야 하냐"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까지 화석연료를 태워 경제 성장을 이룩한 건 소위 선진국들이니까요. 지금처럼 코로나로 인해 경제 타격이 어마어마한 지금, Green Recovery는 그야말로 불공평한 담론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며칠 전 미국 Death Valley의 온도가 섭씨 54.4도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는 지구 역사상 (신뢰할 수 있는 기록 중) 가장 높은 기온이라고 해요. 그럼 이 상황에서 각 개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어찌 보면 불편한 이 주제에 대해 눈과 귀를 열고, 정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후변화는 말 그대로 참 "불편한 진실"입니다. 무시하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옆에서 자꾸 누가 얘기하면 맘만 불편해지고요. 조지 마셜이라는 분이 지은 <기후변화의 심리학>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원제 자체가 <Don't Even Think About It: Why Our Brains Are Wired to Ignore Climate Change (생각도 하지 마: 우리 뇌가 기후변화를 무시하도록 프로그램된 이유)>입니다. 저자는 우리 뇌가 왜 기후변화 담론을 자꾸 무시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무시하기 어려운 시점에 다다른 것 같기는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녀가 죽는다는 생각을 견디지 못하지만 우리가 죽은 이후에 언젠가는 자녀들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우리가 죽은 이후의 일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기후변화로 인한 공포를 피할 수 있다. (...) 사람들은 기후변화는 자기가 죽고 나서도 한참 후에 일어날 일이라고 말하여 공공연하게 자신의 무관심을 정당화한다.

- 조지 마셜, <기후 변화의 심리학> 중


무시하고 편하게 살자는 달콤한 속삭임을 물리치고 개개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본인의 라이프스타일도 조금씩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에 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정부의 에너지 정책만 봐도 기후변화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이를 잘 주시하고 투표권을 행사해야 되는 거죠.


독일의 태양광 정책을 보면 정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 독일은 딱히 햇빛 찬란한 국가는 아닌데요, 그 추운 알래스카나 비가 많이 내리는 시애틀보다도 태양광 잠재성이 적다고 해요 [3]. 그런데도 독일이 태양광 발전에서 얼마나 앞서 나가고 있는지 아세요? 설비용량만 보면 2014년 전체 에너지 수요의 거의 절반을 달성했는데요, 전 세계 태양광 설비를 모두 동원해도 세계 에너지 수요의 겨우 1.8퍼센트를 충당할 수 있는 걸 보면 얼마나 큰 비율인지 알 수 있지요. 아래 그래프를 보면 연간 새로 설치되는 용량은 줄어도 주황색 누적 용량을 보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독일의 태양광 산업이 번창할 수 있었던 이유는 Erneuerbare Energien Gesetz (재생에너지원법) 등 입법적으로 지원하고, R&D 투자 등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정책이 미래 에너지 산업의 큰 틀을 바꿀 수 있단 거죠.

독일의 태양광 설치량(출처: Clean Energy Wire)


개인이 이 분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되면, 본인의 탄소 발자국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굳이 검색해보지는 않더라도 매체 헤드라인만이라도 관심 있게 본다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들--차를 타는 대신 걷기, 에너지 절약, 환경친화적 기업 상품 이용--이 왜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어요. 이 중 에너지 절약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화석 연료를 태우는 건데,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기를 사용하고 쓸데없이 낭비를 하지만 않아도 적어도 우리 가정 차원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줄어드니까요.


'나 하나 신경 써서 뭐가 달라질까'라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남들은 안 그러는데 나만 그러면 손해라는 속마음을 담고 있어요.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통렬하게 깨닫지 않았나요? 인류는 한 배를 탔고,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지금도 기후변화의 피해가 속속 보이는데, 이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아무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해도 말이죠.


*표지 이미지 출처: Global Climate Change Alliance

[1]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0/08/06/climate/climate-change-inequality-heat.html?action=click&campaign_id=54&emc=edit_clim_20200812&instance_id=21205&module=RelatedLinks&nl=climate-fwd%3A&pgtype=Article®i_id=82735091&segment_id=35862&te=1&user_id=b4113b6dafb0a172598be6dad851c6ba

[2]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1497-0

[3] http://www.forbes.com/sites/quora/2013/10/04/should-other-nations-follow-germanys-lead-on-promoting-solar-po 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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