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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Sep 08. 2020

이게 없으면 하루도 못 살아

전력과 에너지 효율 이야기

'이게 없으면 하루도 못 살아!'라는 게 있나요? 


저의 경우 얼마 전에 예고도 없이 정전이 되며 '전기'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주말 오전,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죄다 문을 닫고 날은 찜통이라 '집에서 마리오 파티나 해야지'하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갑자기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24시간 가동 중인 에어컨이며 화장실 환풍기가 탁 꺼지고, 냉장고 웅 소리와 전등 불빛도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하려 휴대폰을 들었는데, 와이파이도 끊겨 있었고요. 통화하는 동안 아이에게 동영상을 보라고 할까 싶어 TV 리모컨을 들었다가 아차, 하고 다시 내려놓았어요. 대신 간식이라도 줄까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가 안에 있는 냉기가 확 빠져나오자 아이쿠나 싶어 황급히 문을 도로 닫았습니다. 갑자기 바깥세상과의 유일한 연결 통로인 휴대폰 배터리가 걱정되어 전화만 하고 황급히 화면을 껐어요. 갑작스러운 정전이라 아파트 측에서도 당황스럽고, 엔지니어를 불렀지만 주말이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더군요. 복도로 나가 보니 비상등만 켜져 있고 엘리베이터도 작동하는지 긴가민가했습니다. 우리 집은 43층인데... 순간 공포가 엄습하더군요.


코로나 때문에 연초부터 집콕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전기가 없는 집콕은 또 다른 얘기였어요. 시간이 지나가며 덥고 탁해지는 공기에 입을 꾹 다문 에어컨제습기가 원망스러웠고, 무용지물인 선풍기 대신에 조그만 손 선풍기만 아이 손에 쥐어 주었어요. 와이파이 없는 태블릿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 데다, 밤사이 충전도 잊어서 더더욱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 기회에 피아노 연습이라도 시킬까 한 순간, '아 맞다. 우리 집 디지털 피아노지..'


예고 없는 정전이 두 시간이 넘어가자, 점심 걱정과 함께 냉장고 속 음식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어요. 평소 같으면 외출해서 점심도 먹고 놀다 오면 될 텐데, 코로나 시대의 정전은 더욱 잔인했습니다. 식사야 어떻게든 나가서 먹든지 사 오든지 하면 되겠죠. 지금 홍콩에서는 두 명 이상 같은 자리에서 식사할 수도 없을 만큼 엄격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세 식구가 가면 어른 한 명은 따로 앉아야 한다는 소리죠) 즐거운 시간은 아니겠지만요. 하지만 어제 사둔 고기며 냉동 만두는 어쩐단 말입니까.  


결국 세 시간 정도가 지나자 전력은 돌아왔지만, 그때의 무력감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에도 정전을 겪어본 적은 있지만, 1) 예고 없이, 2) 찜통 같은 여름에, 3) 코로나 시대에, 4)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로 일어난 일이나 더욱 강렬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일생을 살아갑니다. 디지털 문명이 발달하며 특히 전력에 엄청나게 의존하지요. 지금은 집에 가스레인지라도 있지만 전에 미국 살 때는 전력만 쓰는 집(all-electric home)에 살아서, 보통 가스로 많이 쓰는 스토브와 건조기까지 모두 전기로 사용했어요. 전기 자체는 2차 에너지로, 전기 기기를 쓴다고 눈앞에서 온실 가스가 배출된다든가 환경이 오염되지 않기 때문에 '청정한' 느낌이 들죠. (실제로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붙여 생산되는 전력으로만 가사를 운영하면 정말 청정한 삶을 꾸릴 수 있을 겁니다.) 

집에서 전기를 소비하는 가전들 (이미지: VectorStock)

하지만 전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주로 '뭔가를 태우며' 만들어집니다. 화력 발전소에서는 석탄을, 가스 발전소에서는 가스를 태워 만들지요. 집에 있는 콘센트에서는 한없이 무해해 보이는 그 녀석을 만들기 위해, 저기 멀리 있는 발전소에서는 엄청난 양의 온실 가스와 연기를 공중으로 내뿜고 있다는 거죠. 초록초록 환경보호 포스터에서 보이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많이 늘기는 했지만 아직은 전 세계 에너지 믹스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어요. 우리가 숨 쉬듯 사용하고 있는 전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하면 적게 쓸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하는 이유지요.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화력 발전소 (이미지: GHG Protocol)



에너지 효율이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까요? 국가나 전력 회사 차원에서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건 당장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한 가지 우리가 일상에서도 쉽게 눈여겨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또 다른 형태의 신재생 에너지라고도 불리는 '에너지 효율화'입니다. 


'효율'이란 뭔가요? 뭔가를 투입했을 때 얼마큼의 결과가 나오는지, 그 대비로 보통 효율을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썸남의 전 여친 SNS를 염탐하고 싶을 때(음?!), 이름 석 자만 가지고 몇 시간이나 웹페이지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건 효율이 낮은 방법이죠. 이름과 사는 지역, 공통 지인 등 언뜻 스쳐 말했지만 내 뇌리에는 깊이 박힌 정보를 다양하게 활용하면 금방 '효율적으로' 그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같은 아웃풋(그녀의 SNS를 찾기)을 내기 위해 얼마나 인풋(시간과 노력)을 들이느냐가 바로 '효율'이란 겁니다. 자동차의 경우 같은 양의 연료를 주입했을 때 몇 km나 갈 수 있는지, 즉 연비가 효율의 지표가 될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꽤나 멋져 보이지만 기름을 무지막지하게 먹는 허머는 연료 효율이 좋지 않고, 약간 성냥갑 같이 생겼지만 기름을 적게 먹고 하이브리드로 운용할 수 있는 프리우스는 연료 효율이 좋다고 말할 수 있죠.


디자인과 가격 뿐 아니라 연료 효율도 차량 평가의 지표가 됩니다.

전기 기기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결과(깨끗이 세탁된 옷, 25도를 유지해 주는 에어컨, 꽁꽁 얼린 채 유지되는 아이스크림)를 내기 위해 얼마큼의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하는지의 지표가 바로 에너지 효율이지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면 효율이 낮고, 적게 필요하면 효율이 높은 거예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무심히 넘기곤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세탁기나 냉장고, TV, 에어컨 등 모든 가전제품은 에너지 효율이 얼마인지 테스트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겉에 그 정보가 붙어 있답니다. 


에너지 효율의 지표

그러면 에너지 효율은 어쨌든 하나의 '수치'로 표현될 수 있겠지요? 구체적으로 이 지표는 각 기기에 따라 다릅니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여러 번의 테스트 시뮬레이션을 거쳐서 효율을 계산하는데 [1], 예를 들어 집에서 물을 데워 따뜻한 물을 제공해 주는 온수기의 경우 24시간 동안 총 6번 샘플을 추려서 효율을 계산한다고 합니다. 아래 식을 보면 (까마득한 수학의 정석의 기억...) 복잡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분모는 투입되는 에너지 총량, 분자는 샘플의 질량과 온도를 고려한 아웃풋 에너지라고 보면 됩니다. 결국 인풋 에너지에 대한 아웃풋의 양이죠. 

이러한 숫자는 모두 기기의 종류나 외기 온도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구하게 되어 있고, 서로 다른 지표를 씁니다. 히트 펌프 같은 난방기는 SEER와 HSPF, 보일러는 AFUE, 지중 열원 히트펌프는 COP를 쓰죠. 또, 세탁기는 전력뿐 아니라 물 사용에 대해서도 효율성이 정의됩니다. 아무래도 물을 왕창 사용하는 것보다는, 세탁물을 깨끗이 빨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물을 되도록 적게 사용하면 좋겠죠.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에너지 라벨

하지만 위와 같은 지표는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지고 확 와 닿지는 않습니다. 친구에게 새로 산 냉장고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거 글쎄 연간 에너지 사용량이 200 kWh도 안된다니까'라고 말하면 아마 상대는 '어쩌라고'라고 눈을 굴리겠죠. 그래서 전에 리베이트 제도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어려운 지표나 수식 대신 쉽게 각인되는 마크나 직관적으로 와 닿는 그림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표적인 사례가 에너지 스타 제도이지요. 에너지 스타는 시중 다른 제품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들에게 부여되는 귀여운 별표입니다. (제품마다 기준은 다른데, 냉장고는 20%, 식기세척기는 40% 에너지 절약을 달성해야 별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뿐 아니라 유럽, 일본, 대만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서, 어디선가 봤다 싶을 거예요.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뿐 아니라 조명과 서버 등 75개 제품을 평가하고 있으니,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전기 기기에 해당되는 셈이지요. 뿐만 아니라 요즘은 집 전체가 얼마나 에너지 효율적인지 평가하는 가이드라인도 있어서 신축 건물의 경우 '이거 에너지 스타 건물이야'라며 광고하기도 해요. 

에너지 스타 라벨과 에너지 스타 주거 건물(이미지: EnergyStar.gov)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별표가 있다고 무조건 효율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규제가 생기고 기술이 발달하며 에너지 효율은 매년 개선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에너지 스타를 받기 위한 요구사항도 기술에 발맞춰 같이 진화하고 있고요. 특히 가장 효율적인 제품에게 주어지는 에너지 스타 최고 효율(Energy Star Most Efficient) 표시는 어느 해에 평가받았는지도 적어 놓는답니다. 다락방에 틀어박혀 있는 먼지 폴폴 날리는 모니터 한 귀퉁이에서 별표를 발견했다고 뿌듯하게 그걸 사용할 필욘 없단 거지요. 


한국에서는 에너지 효율 등급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요 그림도 익숙하게 많이들 보셨을 거예요. 해당 제품이 5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몇 번째에 해당되는지 쉽게 알려주고 있어요. 에너지 스타 제도와 마찬가지로, 해당 제품을 썼을 때 연간 에너지 소비가 얼만큼이며 그것이 금전적으로 환산했을 때 얼마인지도 쓰여 있지요. 제가 살고 있는 홍콩도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 있어서, 막대그래프로 에너지 소비 등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을 잘 살펴보면, 특히 1등급인 제품들은 이런 라벨을 자랑스레 뙇! 크게 붙여 놓지요. 

한국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 라벨과 홍콩의 에너지 라벨

에너지 효율화는 국가적으로도 열심히 추진하는 과제입니다. 유명한 정책으로는 일본의 탑 러너(Top Runner) 정책이 있어요. 이것은 "이번 연도의 가장 효율적인 제품의 에너지 효율이 다음 해의 새로운 베이스 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정책이에요 [2]. 올해의 1등이 다음 해의 출발점이 되면서, 기업들은 향후 몇 년간 이를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이걸 따를 경우 정말 빠르게 에너지 효율이 개선될 수 있겠죠?  



에너지 절약 = $$$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을 구매하면 환경도 환경이지만 사실 내 돈을 아낄 수 있어서 제일 좋습니다. 미국 기준으로 연간 에너지 비용으로 2,000 달러를 지출한다고 하는데요, 이는 이산화탄소 12톤 이상이라고 합니다. 아낄 수 있는 부분을 아끼면 온실가스 배출량도, 에너지 소비로 인한 지출도 아낄 수 있는 거죠. 

미국 기준 가구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 (이미지: EnergyStar.gov)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가정에서 에너지 효율에 관심을 기울이면 연간 25%까지도 에너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열 가구 중 한 가구만 에너지 스타 라벨이 붙은 냉난방 기기로 교체해도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 배출을 막을 수 있는데, 이는 차량 120만 대를 도로에서 없애는 것과 같다고 하니 참 엄청난 양이죠. 


숨 쉬듯 그냥 쓰는 돈이라 생각하지 말고, 돈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음 쇼핑에서 한 번쯤 에너지 라벨을 눈여겨볼 수 있지 않을까요? 


*표지 이미지 출처: Smart Energy Portal

[1] https://www.govinfo.gov/content/pkg/FR-1998-05-11/pdf/98-12296.pdf

[2] https://sustainabledevelopment.un.org/partnership/?p=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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