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한 종류가 아니었어?
기후변화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탄소 발자국' '온실가스' '이산화탄소 배출량' 같은 말을 많이 들어 봤을 거예요. 제가 처음 관련 분야에서 일을 시작할 때 가장 헷갈렸던 부분은 왜 이런저런 용어를 섞어서 쓰냐는 것이었어요. 온실가스가 분명 이산화탄소만 있는 건 아닌데, 왜 주로 이산화탄소만 말하는 걸까요? 그리고 왜 가끔은 CO2에서 O2를 떼고 탄소만 말하는 걸까요?
옛~날에 과학 시간에 온실 효과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요 (아 벌써 수십 년 전이야ㅜㅠ) 지구는 다른 행성과 달리 동식물이 살기 딱 좋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죠. 아주 춥지도 않고, 아주 덥지도 않고요. 그건 지구의 대기에 담요처럼 포근하게 열을 감싸 주는 온실 가스가 있기 때문이에요. 너무 온실 가스의 양이 많아 버리면 금성처럼 엄청나게 더워져 버리고, 아예 없으면 화성처럼 너무 추워지죠.
그런데 이 담요 같은 온실 가스는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이나 이산화질소 같은 기체도 열을 가두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고요, 사실 수증기도 아주 중요한 온실 효과를 갖는답니다. 습한 공기가 열을 가두는 건 직관적으로도 이해가 되죠. (그리고 사실 수증기는 대기 중에 머무르는 시간이 아주 짧아서 온실가스처럼 '축적'되는 게 아니랍니다. 무시해도 된다는 소리)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하는 온실 가스겠죠? 자연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거야 뭐 우리의 소관이 아니지만, 지금의 기후변화를 인간이 초래한 만큼 '무엇을 얼마큼' 줄여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하니까요.
또, 기후변화를 얘기할 때는 온실 효과를 야기하는 기체의 종류뿐 아니라, 그 기체가 대기 중 얼마나 많은지 (코딱지만큼 있으면 그다지 신경 안 써도 되겠죠), 한 번 방출되면 지구를 얼마나 덥게 하는지, 그리고 대기 중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등을 생각해야 한답니다.
온실 가스의 종류와 배출량 [1]
제일 유명한 애: 이산화탄소(CO2)
얘가 왜 제일 유명하냐면요, 전체 온실 가스 배출량의 80% 이상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규제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화석 연료는 대개 탄소 기반이기 때문에 태우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서 이산화탄소가 생성되는데요, 바로 그래서 인간이 산업 혁명 이후 으쌰으쌰 에너지를 만들고 경제를 일구어 나가며 엄청나게 배출되었지요.
그래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란 말이 '온실 가스 배출량'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겁니다. 일단 당장 줄일 수 있고, 줄여야 하는 대상이니까요.
그다음으로 유명한 애: 메탄(CH4)
얘는 냄새가 나서 유명하죠. 메탄은 발생량이 그다지 크지는 않은데요, 같은 양을 놓고 봤을 때 이산화탄소에 비해 온실 효과를 훨씬 크게 일으킵니다. 훨씬 두꺼운 이불이란 거죠. 메탄은 주로 가축의 분뇨나 소화, 음식물 쓰레기 등에서 발생하고, 천연가스의 주 성분이기 때문에 가스 개발이나 운송에서도 항상 주요한 문제로 등장합니다.
덜 유명한 애들: 이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
교토 의정서에서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에 더해 이 네 가지 가스까지 합쳐 6개의 기체를 온실 가스로 정의하고 있는데요, 이 넷은 좀 덜 유명합니다(?). 이 중 이산화질소는 석탄 개발과 관련이 깊은데요, 그러고 보니 석탄은 캘 때부터 탈 때까지 아주 기후변화의 주범이네요. 그만큼 탄소가 집약적으로 뭉쳐진 까만 덩어리니까 그렇겠죠.
나머지는 (저도 잘 몰라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가스들이네요. (지자체 자료[2]를 긁어 왔습니다)
수소불화탄소(HFCs): 불연성 무독성 가스로 취급이 용이하며, 화학적으로 안정하여 냉장고 및 에어컨의 냉매로 사용됩니다.
과불화탄소(PFCs): 탄소와 불소의 화합물로 전자제품, 도금산업 등에서 세정용으로 사용되며, 우리나라의 경우 전량 반도체 제조공정(플라즈마 에칭 및 chamber cleaning)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육불화황(SF6): 제품이나 변압기 등의 절연체로 사용되는 곳에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니 정말 이산화탄소가 문제네요. (불화탄소들의 경우는 두 개를 합쳐도 2%고, 육불화황은 여기 나오지도 않..)
얼마나 따뜻하게 해주나?
근데 양이 적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방 안에 아이가 똑같이 5명 있다고 해도 그 아이들이 몽땅 신생아면 '육아 노력 지수'가 어마어마할 거고, 자기 앞가림을 하는 열 살짜리 어린이들이라면 노력 지수는 확 적어지겠지요. (말은 안 듣겠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기체 분자 하나가 다른 것들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지구를 덥게 하는 녀석들이 있거든요. 이렇듯 얼마나 두꺼운 이불인지 나타낸 수치를 지구 온난화 지수(Global Warming Potential, GWP)라고 합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왜 덜 유명한 애들도 온실 가스 목록에 버젓이 이름을 올렸는지 알 수 있지요. 이산화탄소는 양은 엄청 많지만 다른 기체들에 비해 그래도 양반입니다. 요즘 식량 생산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의가 부쩍 많아졌는데, 이것도 메탄가스의 생성과 관련이 깊어요. 이산화탄소의 25배나 되는 지구 온난화 지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지요.
얼마나 오래 있나? [3]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한 번 배출된 온실 가스가 얼마나 오래 대기 중에 머무르냐의 문제입니다. 이것 또한 기체마다 제각각인데요, 배출된 뒤 금방 사라지면 괜찮지만 오래오래 머무르며 지구를 덥히면 큰일이니까요.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대기 중에 오래 머무는지 딱 잘라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해요. 절반 이상의 이산화탄소는 배출된 뒤 20-200년 간 바다에 스며 들어가고, 나머지는 풍화 작용이나 암석 생성 등으로 사라진다고 하는데요. 이런 작용은 사실 수천 년까지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 말은 즉 한 번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대기 중에 존재할 수 있다는 소리죠. (딴 얘기지만 몇 년 전에 'carbon mineralization'이라는 탄소 제거 신기술도 주목받았었죠. 암석 생성을 좀 더 빠르게 하면 대기 중 탄소 제거를 빠르게 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메탄은 12년, 이산화질소는 100여 년의 시간 동안 대기 중에 머무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메탄이 그나마 빨리 없어지는 편이죠.
아무튼 이 와중에도 온실 가스는 자꾸만 배출되고 있습니다. 지구를 덥게 하는 효과는 작지만 엄청난 양으로 배출되며 대기 중에 아주 오래 머무는 이산화탄소, 배출되는 양은 적지만 지구를 무진장 덥게 하는 다른 가스들... 이 때문에 아마 앞으로 적어도 수십 년은 기후가 더 많이 변하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목격할 거예요.
그나마 우리가 사는 온대 지방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적은 편인데요, 극지방은 정말 극적으로 기후가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극곰이 기후변화의 아이콘처럼 된 것도 기후변화가 특정 지역에만 사는 동식물을 완전히 멸종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공룡도 매머드도 멸종했지만 그와 관계없이 인간은 잘 살아가고 있지만, 자연적 이유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 때문에 고작 백여 년의 세월 동안 지구를 너무 망쳐 버리면 그건 좀 심각한 문제겠죠.
알고 보면 지구의 온실 효과는 참 고마운 존재인데, 자꾸 이불만 더 두껍게 덮으려 하는 우리 모습이 씁쓸합니다.
* 참고 자료
[1] https://www.epa.gov/ghgemissions/overview-greenhouse-gases
[2] http://www.yongin.go.kr/home/www/www12/www12_02/www12_02_03/www12_02_03_01.jsp
[3]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12/jan/16/greenhouse-gases-remain-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