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을 아웃소싱 합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나 쉽게 묻습니다.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직장 상사에게 보낼 메일은 어떻게 써야 예의 발라 보일지,
심지어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우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까지 전부 AI에게 털어놓곤 합니다.
엔터 키 한 번이면 단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문장들이 쏟아져 나와 화면을 채우는데,
그 매끄러운 답변을 보고 있자면 묘한 안도감과 함께 서늘한 기분이 동시에 듭니다.
귀찮은 고민을 대신 해줘서 편하긴 한데,
어쩐지 내 삶의 운전대를 남에게 쥐어준 것 같은 찝찝함이 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효율성의 시대를 살아가느라 '망설임'이라는 인간 고유의 특권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 끙끙 앓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다가 결국 내린 결정이 비록 오답일지라도 그 과정 자체가 나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립니다.
특히 나의 마음에 대한 고민은 더욱이 말입니다.
AI가 뱉어낸 최적의 답안지는 매끈하지만 거기에는 나의 체취가 묻어있지 않습니다.
질문은 내가 던졌으되 대답은 타인이,
아니 엄밀히 말하면 수많은 데이터의 파편들이 대신해 주는 이 기이한 소통 방식이
과연 우리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데이터 쪼가리와 진짜 흉터
흔히들 마음이 힘들 때 명확한 해결책을 원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이라는 것은 0과 1로 나누어떨어지는 코드가 아닙니다.
우리가 겪는 상실감이나 허무함은 단순히 '세로토닌 부족'이나 '인지적 오류' 같은 단어 몇 개로 납작하게 정의될 수 없는,
훨씬 더 질척거리고 복잡한 덩어리입니다.
인공지능은 수백만 권의 심리학 서적을 학습했기에 위로의 말을 건넬 수는 있어도,
새벽 2시에 천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 막막한 공기의 무게는 결코 알지 못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기억의 총합이자 감각의 축적입니다.
뜨거운 커피에 덴 혀의 꺼끌함,
비 오는 날 맡았던 흙냄새,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던 그 물리적인 통증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런 감각적인 데이터는 오직 육체를 가진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고유한 자산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언어 모델이라도 '가슴이 시리다'라는 문장의 문법적 구조는 파악할지언정,
그 말이 품고 있는 진짜 차가움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외부의 지식으로 나를 해석하려 들면 들수록,
우리는 정작 내 안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신호를 놓치게 됩니다.
텍스트로 요약된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니까요.
AI가 제안한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법'은 정말이지 정확합니다. 심리학자인 저도 동의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머리로는 인정해도, 몸으로는 할 수 없는 나와,
왜 할 수 없는 내가 있는지,
그런 나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질문을 해도
방법을 말하던, 처음과 같은 명확한 답을 AI는 내놓지 않습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지독한 노동.
결국 '나'를 아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기술에도 하청을 줄 수 없는 유일한 작업입니다.
이것은 몹시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노동입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저의 내담자에게 미안합니다.
거울 앞에 서서 낯선 타인을 마주하듯 내 민낯을 뚫어지게 쳐다봐야 하고,
덮어두고 싶었던 기억의 지하실을 굳이 내 발로 걸어 내려가서 먼지 쌓인 상자를 열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인공지능이 나를 분석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주체성이라는 것은 본래 남이 대신 씹어서 넘겨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좋다는 길, AI가 추천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를 따라가는 것은 안전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 서서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인가?"라고 물었을 때, 기계는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면 소리가 난 것이 아니라는 철학적 난제처럼,
내가 직접 느끼고 판단하지 않은 삶은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흘린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시간만이 진짜 내 것입니다.
빈 화면 앞에서 견디는 힘.
해결하려 생각하지 않고, 혹여 생각한다 하더라도 생각하는 나를 가여이 바라보는 꼿꼿함.
이제 잠시 모니터를 끄고, 깜빡이는 커서가 없는 백지 상태의 마음을 마주해야 합니다.
프롬프트 창에 질문을 입력하는 대신,
내 안의 심연을 향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답이 금방 나오지 않아 답답하고 불안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오늘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답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침묵과 공백을 견디는 힘이야말로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욕망하는지는 데이터 센터의 서버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호흡하고 있는 당신의 몸과 마음속 아주 깊고 어두운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발견은 오직 당신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조금 늦고 서툴더라도, 남의 답안지를 베끼는 것보다 내 손으로 쓴 오답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