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 발견에 관하여
나는 통합적 심리치료 모델로,
게슈탈트와 EFT, 정신역동적 관점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결국 실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치료자가 내담자로 하여금 찾아야 하는 것은 '내적인 통찰'이다.
'아, 몰랐는데 저의 내면에 그런 마음(욕구)이 있었군요..!'
즉 게슈탈트에서는 배경, 소외된 것, 양극성이라고도 할 수 있고 정신역동적으로는 무의식, 가려진 것, 억압된 것(나는 현상학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 이 개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심리치료를 함에 있어 모든 것은 아니지만, 거의 80%라고 본다.
이 통찰을 통한 내면(혹은 배경)의 마음(욕구)이 드러났을 때, 비로소 이것을 실현시킬지, 폐기할지, 어느 정도로 용인할지, 같은 다음 단계에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명확한 요구 없이 눈물을 머금고 우리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만 하는 아이에게 우리가 해줄 것은 없다.
따라서 심리치료에서 이 작업이 우선 완성되지 않았다면, 치료자도 내담자도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 심리 치료에서 '길을 잃는' 것이다.
이 통찰(배경)은 인간의 특성 상 특이하게도
오직 내담자의 개인 내적인 마음(정신세계)에서만 감각할 수 있고, 경험하고 탐색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내담자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이 탐색 과정은 길을 잃기 쉽다.
이 지점에서 치료자는 길을 잘 아는, 길 잃은 자를 많이 보아, 길을 자주 찾아줬던 경험 많은 가이드다.
그렇다하더라도, 결국 발걸음을 내딛어 내면을 탐험을 하는 자는 내담자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통찰을 통한 '내면의 욕구(마음)'는
결코 치료자가 해석이나 이론을 통해 알 수 없고
어떤 치료자 누군가가, 당신의 그 숨겨진 무언가를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치료자의 실수이자 오만이다.
치료자는 통찰을 이론이나 해석을 통해 가설로서 '추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추측한 것을 혼자 담고 있지 말고 내담자에게 확인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내담자에게 승인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가설은 틀린 것이거나 나올 순서가 아닌 통찰이라고 보고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내담자들은 상담실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용이 중요하지 않으니 꺼내놓을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꺼내놓은(굳이 이 상담실에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 마련한 이 순간에) 이유에 더해, 그 말한 내용(사건)들을 비추어보았을 때, 어떤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상담실에서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자아냈는지'를 치료자는 보고, 관심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금물을 끓이다보면, 팔팔 끓고 물이 튀고 김이 나고 하는 번잡한 과정들을 거쳐,
결국에는 소금만 남게되는데,
상담 중 치료자 관심과 여정의 끝에 얻어지는 산물로는,
내담자의
1. 근본적 욕구는 이것이구나!와
2. 피하고자 하는 공포는 이것이구나!가 남게 된다.
이것이 심리 치료 초기 과정 중의 중요한 산물이다. 초기 단계가 지났는데 아직도 이것이 명확하지 않은 치료자가 있다면, 그 상담은 잘못가고 있거나 길을 잃은 것이다(이 때의 파훼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흔한 것은 치료자의 역전이다.).
한 때, 나는 이러한 심리 치료적 '소금'을 얻는 과정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 나는 내담자에게 이 '산물'을 주기 위해, 그리고 치료의 다음 단계를 위해
이론적(특히 정신분석적) 해석을 통해 찾아주려고도 했고,
정서와 신체감각를 통해 찾아주려고도 했다.
하지만 최근 EMDR 치료를 수련하면서 문든 떠올랐던 것은 내담자가 결국에 중요한 곳을 향해 자동적으로 간다는, 아니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개념은 지극히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언어화되거나 보거나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것이기에 비유와 은유를 통해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담자가 알아서 자동적으로 중요한 곳(근본적 욕구와 공포)으로 간다.'는 원리는 마치 중력장과도 같다.
우주의 중력장은 주변의 별, 아니 모든 것들을 끌어당긴다. 블랙홀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만 하다.
우리 마음 속의 어떤 마음들을 크고 작아서 큰 것들은 더 세게 잡아당기고 작은 것들은 약하게 잡아당긴다.
이런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엔, 잡아당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EMDR에서는 BLS(양측성 자극)을 주며 'Go with that'이라고 하며 현재 가지고 있거나 떠오른 '것(감정이든, 신체감각이든, 기분이든, 생각이든 상관 없다.)'을 가진 채로 있는다. 그러면 내담자는 어떤 사고의 흐름 혹은 경험을 흐름을 타고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한 예시를 보여주면 이렇다.
<가슴이 답답한데,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내담자의 사례>
양측성 자극(좌우로 움직이는 공 영상+화면의 양쪽에 닿을 때 마다 둥둥 울리는 소리 자극)을 보고 눈을 움직인다.
1. 내담자: (가슴이 답답하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치료자: "좋습니다. 가슴이 답답한 느낌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2. 내담자: (공이 내는 소리가 둥둥 하는 것이 마치 북 소리 같다. 둥둥- 큰 북 같다.) "북이 떠오릅니다."
치료자: "좋습니다. 북을 떠올리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3. 내담자: (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니, 정글북이 떠오른다. 확신이 없지만 정글북 속에서 곰이 북을 쳐대는 모습이 떠오른다.) "정글북이 떠올랐습니다. 왜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치료자: "좋습니다. 정글북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4. 내담자: (정글북을 보던 어린 시절 내가 떠오른다.) "정글북을 보는 어린 제가 보입니다."
치료자: "좋습니다. 어린 자신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5. 내담자: (어린 나 주변으로 어린 시절 살던 방이 떠오르며 방 밖에서 엄마는 무엇을 하는 것들이 떠오른다.) "저는 외롭습니다."
치료자: "좋습니다. 외로운 느낌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6. 내담자: (엄마가 무언가를 하고 있고 나 혼자 티비나 봐야 하는데, 나의 자세가 눈에 띈다.) "아이의 자세가 축 늘어져 있습니다."
치료자: "좋습니다. 축 늘어진 모습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7. 내담자: (늘어진 자세는 힘이 없어보인다.) "무기력한 느낌이 떠오릅니다."
치료자: "좋습니다. 무기력한 느낌을 가지고 계속 가보겠습니다."
8. 내담자: (그 무기력한 느낌이 지금의 몸에서 느껴진다. 엄마 없이는 티비나 볼 수 밖에 없는, 기다려야 하는 어린아이의 어쩔 수 없음이 느껴진다.) "네 저는 무기력 합니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저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어서 답답한 것이었네요!"
(사례는 이쯤보고 이 다음은 치료자와 내담자의 몫으로 남겨두자.)
그렇다.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가슴 답답함은 현재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 답답함은 내담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무언가를 하게 만들려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했고, 지금 상담실까지 찾아왔으리라는 가설을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방법이 상담실에서 혹은 전통적 임상 Practice에서 흔히 쓰이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Talk-Therapy의 특성상 여전히 말로 묻고 답하여 이러한 "네 저는 무기력 합니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난하다. 왜냐면 내담자는 저런 내면의 것들을 밀어내고 소외시키는데 이미 '잘 적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를 쓰는 인지적인 작업인 '대화'를 할 때, 진실은 더욱 더 깊이 숨어버린다(운전에 잘 적응한 사람에게 "운전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설명해주시죠." 라고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내담자의 내면 통찰은 중력과 같다고 했다. 북소리와 정글북(심지어 정글북의 북은 그 북도 아니다.)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내담자는 기어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투사한다. 정글북이 아니어도 그렇다. 이 사람은 나무를 봐도, 물컵을 봐도, 지나가는 구름을 봐도 자신에게 중요한 그 '무엇'을 투사하여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전쟁터에 나간 가족과 떨어진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을 보여주어도 가족의 얼굴을 투영하여 떠올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내담자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현실(이 말을 좋아하지는 않느다. 각자 '현실'이라고 하면서 돈 혹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것 등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을 담으면서 현실이라고 은폐한다.)' 혹은 '당장 급한 것'들에 의해 철저히 밀어내야했지만, 상담실에서 전문가와의 가이드와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므로 통찰이란 것은 무언가 애써서 '캐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이 기울어지는 것과 같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뭘 원하는 것 같나요?" 라고 물으며, 내담자에게 구태여 분석 작업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러한 탐색과정이 심리치료의 성패 있어 대단히 중요한 티핑 포인트라 생각하여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을 동료 전문가들과 했고, 여러 이론을 탐독했다.
결론적으로(지금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통찰로 이르는 지름길은
1. 내담자가 자연스럽게 어떠한 것(느낌, 생각, 감정, 감각 중 아무거나)을 떠올리는(머무는) 것
(주의점: 생각해내려 하지 않기, 만들려하지 않기, 분석하지 않기, 해결책을 찾지 않기, 이유를 찾으려하지 않기)
2. 그 와중 마음 속에 일어나는 어떤 것이든 포착하는 것
(주의점: 맥락에 맞는지 아닌지, 적절한지 아닌지,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치료자에게 말할지 말지, 무시할지 말지, 잡을지 놓을지 판단하지 않기)
3. 반복
이다.
그래서 나는 게슈탈트치료, EMDR, 인간중심치료, 정서중심치료, 정신분석 등 모든 이론은 어쩌면 이러한 과정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나는 내가 대단히 무모한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