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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Oct 13. 2016

"간단하게 해주세요."

#10. 간결한 디자인이 더 어렵다

"간단하게 해주세요.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음... 생각보다 어렵겠네요."

"아니요,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깔끔하게만 해주시면 되요."

("그게 어려운 건데요.")


디자인의 결과물은 의외로 단순하고 쉬운 형태인 경우가 많다. 이는 외부에서 보기에 '이렇게 간단한 작업이면 금방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단순하고 쉬운 형태는 많은 고민 끝에 탄생한다. 디자인은 고민하면 할 수록, 더하기보다는 덜어내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적은 요소가 간결함으로 보이느냐, 부족함으로 보이느냐의 갈림길에서 디자이너의 고민은 시작된다.



단순할수록 고민의 양은 증가한다.


라디오를 디자인하는 것보다 TV를 디자인하는 것이 더 어렵다. 보기에는 라디오가 더 복잡하고 요소가 많아 어려울 것 같지만 이렇게 요소가 많은 제품은 그 요소들을 잘 이용하면 개성을 보이기 쉽다. 예를 들어, 요소들의 레이아웃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이미지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역동적이고 개성적인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운동감이 들도록 요소들의 간격에 일정한 리듬을 두어 배치하거나 한두 가지 요소에 크기나 색채로 대비를 둠으로써 규칙적인 레이아웃에서 벗어난 강한 개성을 줄 수 있다. 고급스럽고 묵직한 느낌을 원한다면 요소들을 규칙적으로 배치하면서 제품의 하단에 두면 시각적인 무게감을 줄 수도 있다.


같은 요소라도 배치되는 형태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전달한다.



위의 이미지는 간단한 도식으로 사례를 든 것이지만, 실제로는 배치되는 요소들의 형태 자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차이가 더 커진다. 역동성이 강조되는 제품은 실리콘이나 우레탄 등 스포티한 활동에 어울리는 방수성이 좋고 긁힘이 적은 소재가 쓰이며 장갑을 끼고도 조작할 수 있는 커다란 버튼이 사용되는 반면, 사무용 제품은 인테리어에 어울릴 수 있는 목재나 깔끔하게 후처리된 알루미늄 등이 쓰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형태나 재질, 감성 등이 더 큰 차별점으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TV는 어떨까. 작업량 자체로 보면 쉬워보인다. 조작부가 거의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TV는 보통 검은 판넬 형태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것을 디자인으로서 특정한 감성을 전달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즉, 네모난 화면은 고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다리나 프레임 정도로 차별화를 시켜야 한다. 다리나 프레임만 좀 손대면 되니까 작업량이 많지 않아 쉽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훨씬 더 많이 고민해야 '새로우면서도 지나치게 이상하지는 않은' 경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단순해보이는 작업 속에 더 많은 고민이 요구되는 것이다.


TV, 삼성전자



디자인 결과물이 미니멀하고 단순할 수록, 작은 디테일이 매우 중요해진다. 요소가 많은 디자인은 요소의 배치(layout)와 형태(shape)가 함께 작동해 이미지를 형성한다. 반면 요소가 적은 디자인은 '배치'라는 좋은 무기를 쓰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에 오로지 형상에 따라 전달하는 인상이 결정된다.


즉, 이는 '단순한 결과물'을 내는 작업이라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른바 '좋은 디자인'을 구성하는 것은 적절하게 배치된 요소들과 다듬어진 형태에서 나오는 안정감과 긴장감의 조합이다. 특히 반복과 대비는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조형 원리이다. 그런데 요소가 너무 적은 디자인은 반복과 대비가 일어나기 어렵다.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Less is more.

'적은 것이 더한 것이다.'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꽤나 여러 번 들어봤을 이 말은 현대 건축 디자인의 거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한 말이다. 미니멀리즘을 변호하는 명제로도 자주 언급되는 이 말은 그러나 실은 단순히 요소가 적은 디자인이 더 우수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Barcelona Pavillion, Mies van der Rohe



미니멀해 보이는 그의 건축물은 사실 주변의 많은 요소들을 고려한, 계산된 간결함이다. 건축물 주변의 자연물까지 반영해 공간의 연결성을 생각하고 공간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극소의 장식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해, 표현 자체로는 적은(less) 것이지만 그 기반의 더 많은(more) 고민과 생각을 통해 생성된 것이다.

결과물이 단순하고 쉽게 느껴지는 것은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불필요한 부분을 절제해낸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요소들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그 생략이 사용성에 문제를 발생시키지는 않을지, 없어지는 것이 디자인 목표에 더 부합하는지, 어떤 요소로 대체될 수 있는지 등을 빠르고 신중하게 검토하여 덜어냄으로써 더 많은 효용을 제공하도록 기획하는 것이다.


 

Arc Touch, Microsoft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이 많이 사용하는 전략은 'A를 들어 B를 치는' 이른바 이화접목의 방법이다. 이를테면 위의 '아크 터치' 마우스는 내부의 덩어리를 생략하면서 오히려 사용성을 높이고 있다. 펼쳤을 때 납작하게 되어 휴대성이 좋아지면서도, 접혔을 때는 적당한 부피를 가지게 되어 마우스로서 기능할 수 있다. 간결하고 깔끔한 해결방법이다.







More makes less.


간결함과 단조로움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 갈림길에서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중요한 능력이며, 전문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디자인이 간결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결론을 내리자면, 먼저 단순히 깔끔하고 매끈한 외형을 만들기 위한 삭제가 아닌 어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통해 생략이 이루어졌을 때 디자인은 간결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어떤 논리와 철학적인 배경 등이 디자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디자이너는 본연의 전문성과 더불어 다방면에 대한 박학다식함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디자인의 과정에서 디자이너가 활용할 수 있는 재료이자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더 간결한 디자인을 추구할 수록, 더 많은 개념적인 철학이 필요해진다.


동시에, 시각적인 요소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대비(contrast)'는 디자이너가 아주 섬세하게 다뤄야하는 시각적 언어의 활용 기술이다. 시각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포인트를 주느냐에 따라서 디자인은 간결한 가운데서도 특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평소에 이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적은 요소가 단조로워 보이기 쉽다.


반쪽의자, 정우진



정우진 디자이너가 2011년 IFDA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잎상(Gold Leaf)을 수상한 '반쪽의자' 우리 시대의 간결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간결한 가운데서도 등받이의 형태나 좌판, 의자의 발 등이 반복과 대비를 이루고, 반쪽짜리 좌판을 활용해 꼿꼿이 앉도록 하면서도 공간성을 확보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이다.


간결함 속에는 더 많은 고민과 배려가 들어있다. 디자인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혹은 기업의 간부)나 디자인을 실행하는 디자이너 모두 간결함 속에 담긴 고민과 배려를 알고자 노력해야 하며,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과 배려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적은 요소로 이루어진 표현물' 정도를 만들려 하면 그 결과물은 단조롭고 단순해질 뿐이며, 소비자/사용자에게 어떠한 반향도 주지 못한다. 언제나 더 많은 고민을 통해서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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