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진 Aug 16. 2016

창의성의 함정

번외 - 크라우드 펀딩 사례들을 돌아보다

이번 디자이너 모놀로그는 번외 편으로 창의성이 가진 함정이라는 주제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지난 편에 예시로 들었던 Triton의 인공 아가미 사례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문의해오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 밖에도 개인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의 사례를 모니터링해 오면서 창의성이 가진 양면성을 봐왔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 모놀로그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이며, 따라서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실 관계 측면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수정 요청을 해주시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어떤 프로젝트나 진행자 개인 또는 단체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기존의 사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통해 앞으로의 창의가 실수를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작성하는 글입니다. 선정된 사례를 진행하신 모든 프로젝트 진행자들에 더해, 모든 창작자를 응원합니다.




창의적 발상은 새로운 제품을 제안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지만, 반면 지나친 새로움은 현실화시키는 데 문제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여러 화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바와 같이, 좋은 디자이너는 많은 경험을 통해 현실화시킬 방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방안을 가지고 개략적이나마 전체적인 실행 계획을 기안부터 실행까지 순차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제시된 계획을 기획이라고 한다.


즉, 외형에 대한 렌더링과 제품의 기능, 스펙에 대한 나열이 끝났다고 해서 기획을 완료했다고 하는 것은 기획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개략적으로나마 어떤 공정과 어떤 조립 과정, 또는 유통이나 작동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아이디어만 던졌다면 그것은 기획이라고 볼 수 없다.  단순히 어떤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기안'으로, 기획과는 다르다. 좋은 기안은 뛰어난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는 훌륭한 출발점은 될 수 있지만 기안만으로는 결과물에 도달할 수 없다.


물론 기획자 개인 또는 단일 집단이 모든 부분을 파악하고 있을 순 없다. 이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외부의 자문이다. 다양한 집단을 통해 여러 의견을 듣는 것은 기안이 가진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 기획의 단계에 다다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잘못된 실행을 했을 경우 발생했을 시간적/물질적 비용을 줄이고 더 경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래의 사례는 성공적인 기안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기획 단계까지 이어지지 못해 제품의 제조 단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례이다. 이들은 대중으로부터 호평받는 좋은 출발점을 가졌지만 전반적인 실행계획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해 많은 비용적 손실을 경험한 프로젝트들이다.


해외에도 지난 글에서 소개한 Triton과 같이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지만, 이번 글은 국내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WADIZ)'의 사례를 중심으로 수집하였다. 타 크라우드 펀딩이 아닌 '와디즈'에 사례가 집중된 것은 국내의 제품 제조 크라우드펀딩 자체가 대부분 와디즈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 사례가 많은 만큼, 펀딩 프로젝트는 성공했지만 실행계획이 실패한 사례가 많이 모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크게 세 가지의 사례를 수집하였다.



1. iBoa Bag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2632

iBoa, 스마트 제품 충전 가방, 2015 (iBoa)


첫 번째 제품은 아이보아 사의 스마트 제품 충전 가방으로, 2015년 국내 크라우드 펀딩인 와디즈에 올라왔던 사례이다. 이 프로젝트는 목표치를 186% 상회하여 14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동원했지만, 배송 예정이었던 2016년 1월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 제조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진행자 측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까지 3억 원 이상의 비용이 사용되었고, 제작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비용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이 제품은 처음 나왔을 때 그 가능성이 의심스러웠는데, 다름이 아니라 애플(Apple)사의 정책이 굉장히 까다롭기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스마트폰 충전 잭만 해도 인가된 제품이 아니면 충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데, 디자인에 있어서도 규정된 비율과 디자인적 응용이 제한된 부분이 정해져 있어 자유롭게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보관, 운반, 충전할 수 있다. (iBoa)

또한, 위의 그림처럼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스마트 워치를 동시에 충전한다는 것은 전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복잡하고 위험한 부분이 있다. 사실, 단순 보조배터리부터도 전기적으로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다. 전압이나 전류 관리 측면에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세 가지 제품을 나누어 동시에 충전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소비자가 고용량의 리튬 계열 배터리를 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것은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러한 부분들이 생산과정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물론, 이보다도 더 원초적인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2. iSpeakerLight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2624

iSpeakerLight, 조명 겸 스마트폰 도킹 스피커, 2015


두 번째 제품은 목표금액의 163%에 해당하는 약 32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모금한 프로젝트이다. 깔끔한 'ㄷ'자형 디자인에 하단부에는 스마트폰 도킹을 하고 상단부는 조명으로 활용하며, 측면에 스피커를 내장한 제품이다.


이 제품 역시 2016년 2월에 배송될 예정이었던 것과는 달리 예정일로부터 6개월이 넘게 지난 아직까지 제작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며, 후원자의 상당수가 펀딩을 취소하고 후원금을 환불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프로젝트 진행자에 따르면 5월 경 1억 5천만 원 이상이 투입되었으나 더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하며, 최근 몇 달 간의 소식에 따르면 스피커 소싱에서 어려움을 겪어 제작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스피커 구조도, iSpeakerLight


iSpeakerLight 측에서 제공하는 구조 렌더링을 보면 상단부는 터치센서로 조명을 제어하며, 측면부에 스피커와 앰프가 내장되고 하단에 전원이 연결되는 크게 3가지로 나뉘는 구조인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조금 비효율적인 구조이며 구현하기에 어려운데 비해 최종 목표가로 잡은 170,000원은 상당히 저렴한 등, 현실적인 부분에서 의구심이 드는 부분들이 있다.


우선 세 부분으로 나뉘기 때문에 이를 제어하기 위한 회로기판(PCB) 역시 적어도 3장 이상은 제작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스피커를 제작할 때 1장만 제작하는 경우도 많고 많아야 2장 정도 제작하는 기판이 3장이 쓰여야 한다는 점은 비효율적이다. 기판이 많아지면 우선 기판 제작비용이 직접적으로 올라가며, 조립비용도 올라가고 안정성이 떨어진다. 또, 전파 테스트나 불량 테스트 등을 할 때에도 불리하다.


두 번째로, 부피가 어느 정도 커지기 때문에 금형 생산비용이 올라간다. 외부 재질이 어떤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블루투스를 활용한다는 점 때문에 알루미늄을 활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아래와 같이 현재 프로젝트 소식으로 올라온 사진을 확인하면 플라스틱으로 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플라스틱으로 이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출금형을 활용해야 하는데, 부피가 크기 때문에 금형비가 상당히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제조 중인 제품 외형. (iSpeakerLight)


마지막으로, 제품의 구조가 스피커에는 부적합한 형태이다. 스피커는 아주 단순하게 물리적인 소리를 내는 제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력된 소리가 공명하기 위한 울림통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매우 중요하고, 이 울림통을 만드는 기술 때문에 고가의 Hi-Fi 스피커가 존재하는 제품군이다.


불행히도, iSpeakerLight는 울림통이 스피커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는다. iSpeakerLight가 울림통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ㄷ자 형태의 측면에 스피커 홀(perforation)이 배치되어 있는데,  하단부와 상단부는 기판이 배치되어 울림 공간이 적을 것이며, ㄷ자로 소리가 퍼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또한 측면을 활용하는 것 역시 디자이너가 기능을 배치하기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스피커라는 제품으로 활용하기에는 부자연스럽다. 스피커 소싱이 어려웠던 이유가 이러한 문제가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3. HELEN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2657

HELEN, 웨어러블 스마트 알리미 밴드, 2015 (Deliber)

마지막 사례는 딜리버(deliber)사의 '헬렌(helen)'이다. 헬렌은 스마트폰에 온 알림을 진동으로 알려주고 자동으로 메시지 답변도 보내주는 스마트 밴드로, 기존의 스마트 밴드와는 달리 주얼리(jewelry)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헬렌은 목표액을 258% 초과 달성해 2500만 원가량을 모금했으며, 2015년 12월 말 배송 예정이었으나 현재까지 제작이 지연되고 있다. 현재 딜리버 사는 웹을 통해 프로젝트 후원자 전원에게 신청자에 한해 후원금을 환불해주고 있다.


헬렌의 프로젝트 진행 소식을 살펴보면, 아마도 소형화와 단가에서 문제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소형화 문제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문제인데, 금속 재질로 만든 작은 모듈 안에 필요한 기판과 배터리 등을 모두 넣을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있었던 부분이다. 유사한 디자인의 금속제 팔찌를 보면 알겠지만 기판을 넣을 공간을 만들기가 어려운데, 금속판이 너무 얇으면 내구성에 문제가 생기고 너무 두꺼우면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통신장비와 배터리, 충전회로, 진동모터 등을 모두 넣기엔 제품이 굉장히 작다는 것이 문제로 보인다.


또한, 단가 측면에서도 소형으로 작은 제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집적회로 제작이나 조립 등에서 비용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속과 주얼리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내는 것 역시 비용이 올라가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광을 내거나, 보석을 박는 것은 모두 수작업이 필수인 작업이다. 이 안에 기판까지 넣으려면 거의 세공의 수준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이러한 제품을 최종 단가 69,000원으로 기획한 것은 처음부터 이미 무리가 많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금속 버클과 가죽 끈으로 이뤄진다. (Deliber)

마지막으로 금속 재질과 통신 장비는 궁합이 좋지 않다. 물론, 휴대폰의 사례를 보았을 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통신을 활용하는 제품에는 금속 재질을 피해왔다. 통신 자체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팬택(pantech)에서 베가 아이언을 출시했을 때 놀라움을 샀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으며, 애플 사에서 데스그립(death grip)이라고 불리는 아이폰 통신 장애가 발생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마도 통신 테스트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거나, 시제품 자체가 단순히 외형만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 이러한 부분이다. 헬렌의 프로젝트 소식에 따르면 디자인이 상당히 바뀌었으며, 재질이 변화된 부분들이 있는데 어쩌면 이러한 변화의 이유가 이 때문일 수 있다.




기안은 즉흥적으로, 기획은 철두철미하게


창의성은 즉흥적이고 폭발적으로 발휘하되, 이를 정제하는 과정은 아주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조력자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 '정말 뭐 이런 것까지 신경 쓰나' 싶을 정도로 기획이 이뤄져도 실제 진행되는 과정에선 분명히 문제를 만난다. 위의 기안들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부분들이 있으며, 이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획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예정된 일정과 비용을 초과하여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문제를 기획 단계에서 예상하는 것은 아무리 경험이 많은 다양한 관점이 모여도 거의 불가능하다. 변수는 정말 수도 없이 많다. 때문에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한다는 것은 사실 막중한 책임감과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잘못된 기획에서 발생하는 시간적, 물질적 손실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우리는 창의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약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고안했을 때,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면, 스스로가 천재적으로 느껴졌다면 그 기안을 덮고 일주일 이상을 잊고 지내는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기안은 어쩌면 어디선가 이미 시도 끝에 실패했거나, 너무도 뻔한 문제가 있어서 시도조차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일주일 뒤에 정말 냉정한 시각으로 정제한 뒤에, 그래도 괜찮다면 조심스럽게 한 스텝씩 진행해도 좋을 것이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실행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보고, 조금이라도 모호한 부분은 오랫동안 공부해도 결코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목적지에 도착하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데 어떻게 만들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