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분과 초로 나눠서 하루를 빈틈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를 위해 꾸준히 강의를 듣거나 자격증을 따며 다가올 날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이 나의 언니 이은정이다.
어린 시절에도 그녀는 늘 분주했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도 미간에 주름을 잡혀가면서 책을 몇 시간씩 몰입해서 읽거나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장에 숫자를 써 내려갔다. 이은정의 유일한 휴식은 소파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십자수나 뜨개질, 학을 접는 등 소득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도 생산물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녀와 전혀 반대되는 성향의 나는 기껏해야 30분 정도 책 읽고 티브이 보다가 심심하면 친구들과 전화를 해서 몇 시간씩 수다를 떨며 시간을 때웠다.
나는 이은정이 신기하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했다. 신기했던 건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이었고, 못마땅 한건 그렇게 열심히 살지 못하는 나에게 죄책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도 그녀의 인생은 마찬가지로 바쁘다. 한 아이의 엄마로 형부의 아내로, 회사원으로, 강사로 눈코 뜰 새 없이 삶이 흘러간다. 더불어 여전히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오랜만에 놀러 온 이은정은 역시나 강의 준비를 하기 위해 노트북과 자료를 한 아름 싸들고 왔다. (자매의 회포 따위는 언제나 어울리지 않는다.) 자판을 두들기며 그녀는 최근에 스마트 스토어를 열었다고 한다. 언제 또 그렇게 준비를 하였는지 궁금하면서도 마음이 바빠진다.
예전과 다르게 이은정의 삶을 보며 내가 너무 나태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이은정처럼 살 자신은 없다.) 친언니 이은정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이은정은 꾸준히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투자하고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이었다.
가족은 절대 본받을 수 없고 칭찬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 그녀처럼 열심히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보는 2023년 2월의 마지막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