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 합격, 그리고 특허사무소 개업을 결심하기 까지

1인 변리사 사무소를 꿈꾸다

by 정연주 변리사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던 2013년 여름, 생계를 위해 나는 OOO특허법률사무소에 명세사로 입사했다.


명세사는 변리사에 소속되어 특허 출원을 위한 명세서를 작성하고, 변리사의 검수를 거쳐 업무를 완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OOO특허법률사무소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곳이었다. 덕분에 특허 실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고, 이후의 커리어 전반에 깊은 밑거름이 되었다.


2015년 겨울,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같은 사무소에서 수습 변리사로서 경력을 이어갔다. 그러나, 회사 사정 상 대기업 사건의 비중은 점차 줄었고, 내가 더 깊이 배우고 싶었던 종류의 업무를 충분히 맡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보다 다양한 사건과 책임을 맡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XXX특허법률사무소는 대기업 사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형의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산학협력단, 연구소, 중소기업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업무의 폭은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이러한 구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해당 사건들은 대기업 사건에 비해 수가가 현저히 낮았고, 정해진 연봉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단순히 ‘많이 처리하는 법’ 뿐만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법을 몸으로 배워갔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 강도는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어려웠다. 결국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또 한 번의 이직을 선택했다.


AAA특허법인은 보다 규모가 있는 조직이었고, 업무는 세분화되어 있었으며, 절차는 정규화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다시 대기업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고, 빠르게 역할에 적응하며 안정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전까지 쌓아온 경험과 판단이 체계적인 조직 안에서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임신과 출산이라는 개인적인 변수도 함께 찾아왔다. 임신과 동시에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고, 유산의 위기와 조산의 위험이 이어졌다. 첫째 임신 때까지는 회사를 계속 다녔지만, 둘째를 계획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했다. 이 상태로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과연 맞는 선택일까. 답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포기하는 선택만큼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둘째를 선택했고, 이번에는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둘째가 돌을 막 지났던 2023년 봄, 나는 YYY특허법률사무소에 합류했다. 두 곳에서 합격 제안을 받았지만, 나는 보수보다 장기적인 커리어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곳을 선택했다. YYY특허법률사무소는 인공지능 ·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딥테크 기술의 IP 전략을 수립하는 사무소였다. 특히 IPO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단순 출원이 아닌 포트폴리오 설계 단계부터 관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IP R&D 전략 수립, 무효 분석 등 보다 고도화된 업무를 수행했다.


2023년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연구실을 벗어나 현업의 도구로 자리 잡은 해이기도 했다. 텍스트 생성에 머물던 AI는 코드 작성, 문서 분석, 기획 보조, 고객 대응 등 실무 전반으로 빠르게 확장되었고, 이때부터 AI는 ‘가능한 기술’이 아니라 ‘없으면 불편한 기술’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나의 일하는 방식에도 질문을 던졌다. 기술의 도움을 전제로 한다면, 반드시 큰 조직에 속해 있어야만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오히려 AI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더 작고 유연한 구조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1인 변리사 사무소를 구체적인 선택지로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