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May 03. 2024

쓰레기는 걱정하지 마

D-543

네가 입대하고 첫 분리배출일이었다.

지난주에 쓰레기를 들고 나가는 엄마를 따라오는 네게 쉬라고 하니, 너는 말했지.

"다음 주부터는 엄마 혼자서 해야 하잖아."

그 '다음 주'가 벌써 와버렸다.


너와 함께 한 게 언제부터였을까. 분리배출이 가능한 시간에 집에 있는 사람은 너와 나 둘뿐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너와 나의 일이 되었던 일, 한두 주를 묵혀서 버리든 매주 버리든 많기는 매한가지였던 일, 너는 카트를 밀고 나는 양손 가득 꾸러미를 들고 나서던 일.


엄마의 지인 중에는 분리배출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자랑하는 이들이 있다. 퇴근한 남편과 아이들이 도맡아 한다는 거지. 좋겠다고 호응해 주지만 심각하게 부러워한 적은 없단다. 집집마다 가족구성원들이 맡은 역할이 있는 법인데, 우리 집에서 그 일은 내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같이 한다면 수월하겠지만 혼자 한다고 해서 크게 불만이 생기지는 않았단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네가 함께할 때마다 엄마는 좋으면서도 불편했단다. 엄마가 아빠나 형에게는 잘 권하지 않는 일을 너에게는 쉽게 권하는 게 아닐까 돌아보고 또 돌아봤어. 네가 함께 하는 걸 엄마가 너무 당연 여기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마 스스로에게 경고했단다. 타인을 배려하는 너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이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너에게는 네 수고를 들여 돕는 일이 당연한 일이어도 되지만, 상대에게도 너의 수고가 당연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군대라는 사회에서 조금은 영악해지기를 바란다. 옆에 있는 전우를 챙기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연함이 너에게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없으려면 어느 정도 단단하고 명확한 기준을 세워두는 게 필요하단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순간 '왜 자꾸 나만? 왜 또 나야?'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거든. 그러기 전에 네가 너를 지켰으면 좋겠구나. 하찮은 일, 귀찮은 일을 다 떠맡아 감내하지 않았으면 한다. 



쓰레기 걱정은 하지 말거라. 엄마가 운동 다녀온 새에 아빠가 말끔히 치워두었더라. 오래전부터 분리배출에 동참했던 아빠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고 "맨날 내가 다 했거든?!!!"이라며 큰소리치는 엄마와, 매번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갈 때 조용히 쓰레기봉투를 챙겨 나가는 아빠. 우리 둘이 평화롭게(?) 잘 해결하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엄마야말로 아빠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구나. 수고의 무게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기, 군대에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