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를 버린 죄

by 늘봄유정

지난주 금요일, 남편이 나를 버렸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담담하게 그날을 써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직장 동료들과 야구장에 간 남편이 너무 신나 보이더라는 내 말을 들은 친구가 우리 부부에게 관람권을 선물해 주었다. 가까운 곳에서 여유롭게 야구를 볼 수 있는 테이블 석이라 기대가 컸다. '더우니 선풍기를 꼭 챙겨가라, 음식 주문 줄이 길 테니 먹거리를 미리 준비해 가라, 맥주보이 맥주가 최고다 꼭 먹어라'같은 깨알 팁도 함께 전수해 주었다. 야구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도 간만의 야구장 데이트는 설레는 이벤트였다. 야구에 몰입하지는 않더라도 시원한 맥주에 치킨 한 조각을 먹으며 불금 저녁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일 아침. 전날까지 이어지던 비 소식이 그날은 없었다. 관람권 선물을 준 친구에게 답례를 보냈다. 남편과 어디에서 몇 시에 만나 출발할지 약속을 잡았고 선풍기와 작은 아이스박스 등 더운 날씨를 이겨낼 준비물을 점검했다. 그렇게 들떠 있던 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사람과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사람이 너무 가고 싶어 한다고... 남편은 두산 팬이고 그 사람은 LG 팬이라고도 했다. 두산과 LG의 경기라서 관람이 더욱 재미있어질 이유였다. 섭섭함이 밀려왔다. 내 친구가 선물해 준 표인데... 내 친구가 나랑 당신 둘이 가라고 했는데... 우리 둘이 가는 줄 알고 설렜는데... 그런데 당신은 다른 사람과 가고 싶었구나... 그랬구나...


마냥 섭섭할 줄만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나보다는 더 즐겁게 야구장 데이트를 즐겨줄 사람과 가는 게 남편에게 좋을 터였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내가 억지를 부리며 간다고 한들, 우리 둘 다 재미없을 건 뻔했다. 여러모로, 남편을 내어주는 게 맞았다. 오랜 기간 부부로 살아보니, 맹목적인 집착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냉정한 배려가 남아있었나 보다.


그 둘은 나와 출발하기로 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먼저 만나 출발했다. 기념품 숍에서 유니폼을 샀고 치킨도 샀다며 신이 나서 톡을 보내왔다. 잘했다... 둘이 보내기를 잘했다...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다. 넓은 아량으로 남편의 그 사람을 인정해 준 나 자신이 멋졌다.



남편과 그 사람이 함께 야구장 데이트를 즐긴 그날, 낮 최고기온은 35도를 넘었고 습도는 80%였다. 1점으로 뒤지다 3회 초에 4 득점을 해 좋은 분위기였던 두산은 4회 말에 4점, 6회 말에 3점, 7회 말에 6점, 8회 말에 1점을 내어주었다. 두산은 16대 7로 LG에 대패했다. 짜증이 극에 달한 남편은 다시 야구가 싫어졌다고 씩씩거렸으며 잔뜩 신이 난 그 사람의 등판 사진을 보내왔다. 심지어 좌석도 LG쪽이었다. 남편은 숨죽여 울어야 했다. 조강지처를 버린 자의 끝은, 쌤통이었다.


다행이다. 그 사람의 등판이 나보다 넓어서... 기대 울기 딱 좋은 등판.

덧...

언젠가 나보다 남편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남편이 나보다 더 사랑하는 이가 생겼다고 한다면, 그때도 쿨하게 보내줄 수 있을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사랑하기에 보내줬다고 대범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야구나들이에서 버림받은 것 때문에 이렇게 진지하게 상상할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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