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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17. 2024

두산의 승리, 당신의 승리를 위하여

"난 야구 안 좋아해."

퇴근하자마자 TV 앞에 앉아 야구 경기를 보는 남편이 늘 하는 말입니다. OB 베어스 리틀야구단 출신답게 남편이 응원하는 팀은 한결같이 두산입니다. 두산팀 선수의 실책으로 이닝이 끝나고 나면 "어이구~~ 어이구~~ 저 **들~~~. 이래서 내가 야구 안 좋아한다니까."라며 평소답지 않게 성질을 부립니다. 그러다가 상대팀 선수가 삼진아웃 되거나 두산 선수가 시원한 홈런 한 방을 때리면 집이 떠나가라 손뼉을 칩니다.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제가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야구 안 좋아한다며!!!"라고 쏘아붙이면,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로 "안 좋아하지~"라고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아내는 야구에 별 관심이 없고, 혼자 야구장을 찾는 건 귀찮다는 남편은 늘 혼자 작은 화면으로 야구를 즐깁니다. 작년 4월 큰맘 먹고 저와 함께 야구장 나들이를 나섰다가 잊었던 약속 때문에 되돌아와야 했던 날 이후로는 한 번도 야구장을 찾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야구 열기가 뜨거워 좌석 예매가 쉽지 않아졌으니 남편에게 야구는 집에서 혼자 즐기는 스포츠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은 회사 동료들과 잠실에서 열리는 두산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경기 예매에 성공한 것이었죠. 아침부터 신이 난 남편은 신발장을 뒤적였습니다. 날아오는 공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글러브를 챙겨간다며 말입니다. 미팅이 있어 양복을 입고 출근해야 했는데, 얼마나 더울지는 안중에도 없는듯했습니다. 온몸에서 폭포수 쏟아지듯 땀을 흘리는 사람이건만 짜증 하나 내지 않았습니다. 야구에 진심이 아니고서야... 


야구가 시작하던 저녁 무렵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의 문자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 장난 아님."

"비 오는데 누가 보나 했는데 내가 본다. ㅋ"

"8회 5대 5. 넘 재밌어."

"경기가 안 끝나... 넘 재밌어."

"두산의 승리를 위하여~~ 어. 오늘도 힘차게 외쳐라~~"


남편의 회사 동료가 보내줬다는 영상에서 남편은 거나하게 취해 보였습니다. 경기 내내 마신 술에, 경기에, 야구장의 열기에, 잊었던 열정에... 최근 저렇게 신나 보였던 적이 있나 싶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엔 세상에 즐거운 일이 많았던 사람 같은데, 언제부터 저 즐겁게 들썩이는 등을 잃었을까... 짠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6월 7일 기아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두산은 11회까지 이어진 치열한 연장전 끝에 무사 주자 만루인 상황을 만들었고, 결국 승리를 했습니다. 남편의 생도 그러할 것이라 믿습니다. 치열한 삶을 버티다 보면 그 끝에 결국 그가 생각하는 승리가 있으리라. 그때까지 매 순간을 즐겼으면 합니다. 때론 욕도 하고 때론 노래도 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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