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5시였다. 컹컹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이라는 걸 의식하지도 않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었다. 규칙적으로 한참을 울더니 이내 고요해졌다, 싶은 것도 잠시. 삐익 삐익. 이번엔 경보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장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어야 할 것 같았다. 뒤이어 전파 탐지기, 밤 부엉이, 마림바 소리가 이어졌다.
소리의 진원지는 큰아들 방이었다. 요일별, 시간대별로 설정해 놓았던 휴대전화 알람이 한꺼번에 모두 활성화됐는지 5분 간격으로 성실하게 울려댔다. 문제는 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아들이었다. 평소엔 알람이 울리면 황급히 끄고 다시 잠들거나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곤 했는데, 오늘은 알람이 실컷 울리도록 놔두고 있었다. 지난밤 만취해 들어온 아들의 무의식까지는 알람이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더 자고 싶었던 나만 알람소리에 깨버렸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 다시 울릴지 모르는 알람을 끄기 위해 나른한 이불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전화'였다. 저쪽 끝방에서 알람이 시작될 때마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수신하느라 아들 전화의 알람이 꺼지면 내 휴대전화의 통화 종료 버튼을 얼른 눌렀다. 그러면 5분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아들 방으로 달려가 휴대전화 전원을 끌 수도 있었겠지만, 혹시 일찍 나가야 하는 일정이 있다면 엄마의 성급한 행동 때문에 아들이 낭패를 볼 수도 있는 노릇이니 함부로 끌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잠과 알람 사이를 오가며 두 시간 동안 아들에게 건 통화는 총 15건이었다. 징글징글한 아들에 더 징글징글한 엄마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많은 알람을 설정해 놓은 아들의 최근 사정, 일정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다. 월, 화, 수요일에는 1교시 학교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 7시에 일어나 씻고 등교를 했다. 목, 금, 토, 일요일에는 수시 입시철이라 수험생들을 데리고 실기장에 가야 해서 대여섯 시에 일어났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날에는 인근 고등학교 앞에 나가 입시학원의 휴지를 돌렸다. 아들을 알아봤던 어떤 이가 내게, 비 오는 날 등교하는 고등학생들 틈에서 받아주는 이도 별로 없는 휴지를 돌리고 있는 일이 꽤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는 말을 했을 때, 마음이 아렸다.
하루쯤은 푹 잤으면 싶었지만, 아들은 매일 알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엄마아빠가 깰까 봐 드라이로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여닫으며 나가는 기척을 들었더랬다. 그러니 모처럼 아들에게 아무 일정도 없던 토요일 새벽, 정신없이 울려대는 알람 소리가 야속할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밤, 아들은 친구와 방어회를 먹고 있다며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방어회라니.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다. 평생 고기만 먹을 것 같던 녀석이 어느 날 회를 입에 대더니, 이제는 기름진 참치회나 방어회도 곧잘 먹는다.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던 바닷냄새 가득한 멍게, 해삼, 굴도 먹게 되었단다. 어른 입맛이 되어가는 중이다.
방어회 맛을 알아버렸다는 건, 어렸을 때는 얼굴을 찡그리며 못 먹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주중, 주말, 눈, 비에 상관없이 길을 나서야 한다는 것.
누군가의 눈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이라 해도 자신이 신나서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는 것.
아침마다 엄마가 깨워줘야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알람을 설정해서라도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것.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조금씩 맛보다 보면 평생 먹을 수 없을 것 같던 비릿하면서 기름진 방어회도 그럭저럭 맛있어진다는 것.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것이 자식의 성장이다. 그래서 가끔 알람을 대신 꺼주고 일어날 시간에 맞춰 깨워줘야 하는 날이, 퍽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