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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22. 2024

엄빠주의 끝!

아들이 독립했습니다.

집을 구해 나간 것은 아니니 분가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습니다만 심리적인 분가를 또 한 단계 실행한 것 같습니다.


아들만 둘인 저에게 '게임 시간' 조율, 아니 협상은 큰 과제였습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자기주장이 확실해진 아이들과 양육이 처음이었던 엄마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기 일쑤였지요. 아들이 말하는 아들의 친구들은 늘 자유롭고 평화롭게 실컷 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엄마가 말하는 엄마의 친구들은 엄격하고 단호하게 게임 시간을 통제하고 있었으니까요.


매일 같은 논쟁을 반복할 수 없던 우리는 타협을 하게 됩니다.

첫째, 주중에는 게임 절대 금지. 대신 주말에는 무한정 게임 가능. 단, 일요일 밤 9시 이후에는 금지.

둘째, 중간·기말고사 2주 전부터는 주말에도 게임 금지.

셋째, 주말이더라도 가족 모임이나 일정이 있는 경우에는 적극 협조할 것.

넷째, 컴퓨터 위치는 안방 맞은편 방으로 고정.


'주말 무한정 게임 가능'이라는 강력한 제안 때문에 아들들은 모든 항목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말에 가족 일정이 있는 날은 금요일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밤새 게임을 하던, 웃픈 기억도 있지만 대체로 순조롭게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좋은 사양으로 컴퓨터를 마련해 준 덕에 PC방도 자주 드나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순전히 저의 추측일 수 있습니다) 안방 맞은편 방이 컴퓨터 방이었는데, 제가 누운 위치에서 보면 아이들의 컴퓨터가 바로 보였지요. 청소년 시기에 부적절한 영상을 시청하거나 친구들에게 심한 욕설을 할까 봐 걱정되었기에, 밤새 키보드와 마우스의 소음에 시달려도 참았던 세월이 십여 년입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을 엄마·아빠의 시야에서 꿋꿋하게 게임을 이어왔던 두 아들은 최근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작은 아들은 제대 후를 기약했습니다만 큰아들은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자기 방에 랜선을 깔아달라고 요구했고 컴퓨터방에 있던 책상과 의자를 옮겼으며 자기 돈으로 새 컴퓨터를 장만해 제 방을 다시 꾸몄습니다. 덕분에 컴퓨터방은 남편과 저의 서재가 되었지만, 왠지 허전한 마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식들이 또 한 걸음 멀어져 간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집에 살고 있지만 동거인일 뿐 양육, 보육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모든 훈육, 간섭, 통제는 종료된 지 한참이라는 것이 더욱 확실해진 것입니다.


더 이상 아들의 컴퓨터 화면에 무엇이 틀어져 있는지 뒤에서 감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음을 벗 삼아 잠들지 않아도 됩니다. 엄빠주의가 끝났으니, 아들은 그 옛날 제게 말했던 친구들처럼 자유롭고 평화롭게, 게임이든 무엇이든 실컷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소 온갖 외부 일정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던 큰아들이 이제는 제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안 들어오더니 안 나옵니다. 완벽하게 동거인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 엄빠주의 : 엄마아빠 주의라는 뜻으로 '후방주의'와 비슷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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