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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것이 내 세계다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바스락의 금요 문장 ( 2025.09.19 )

[오늘의 문장] ☞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김종원

생각하지 않으면 쓸 수 없고, 쓰지 않고 지난 하루는 흩어져서 인생에 없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을 나아지게 만들고 싶다면, 생각을 글로 써서 머리도 알게 하라. 글로 쓰는 사람만이 자신이라는 존재를 이 세상이라는 종이 위에 제대로 쓸 수 있다.


[나의 문장]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그런 말로 가득 찬 하루는 인생을 공허하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에서 후회를 덜어내고 싶다면, 생각을 말로 박제하지 않도록 하라. 말로 뱉어내지 않은 생각은 내 인생을 지배하지 못한다. 행동이 내 존재를 증명한다.


[나의 이야기]

며칠째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 하나가 있다. 아니, 사람이 한 명 있다. 당장 찾아가 왜 그랬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 머릿속에 커다란 뫼비우스의 띠 하나가 부유하며 나를 흔들고 있다.


'헉, 어떻게 이럴 수가'에서 시작한 당황스러움은 '참, 어이가 없네?'라는 황당으로 이어져 '생각할수록 화나네?'라는 분노로 확장됐다. 그러다가 '설마, 내가 잘못 알았겠지.'라는 자기부정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그러면 그렇지. 그 사람은 그러고도 남지.'라는 실망, 허탈 그 어디쯤에서 멈춘다. 그러다가, '나라면 그렇게 못할 텐데,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에서 다시 시작한다.


나를 옭아 매던 생각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으로 터져 나온다. 주로 남편 혹은 상대와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한다. 설명이라고 포장했지만 결국 뒷담화다. 공감과 위로 혹은 조언을 충분히 받고서 진정됐던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상대를 향한 불쾌한 마음에, 괜한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해진다. 뫼비우스의 띠가 두 개가 된다.


아무리 세상에 대고 소리쳐봤자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 상대를 앞에 잡아두고 따진다 한들 통쾌할까. 더 공허한 사과 내지 황당한 변명만 돌아올 것이다. 상대를 험담하고 다니면 속이 풀릴까. 그 말에 내가 더 현혹되어 원래의 것보다 더 커져 있는 무한의 고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 어느 한 지점을 잘라낼 수 있는 건 결국 나요, 나의 침묵이다.


말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향한 실망과 미움까지 걷어낼 수는 없다. 여전히 머릿속 서랍 안쪽에는 상대에 대한 깨진 신뢰가 자리 잡고 있을 테지만 상관없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상대의 평판과 신뢰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말이 내 머릿속으로 다시 들어와 나를 죽이지 않는다. 말로 생성되지 않은 생각은 힘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 대신 행동한다. 입 밖으로 꺼내 여기저기 말하지 않는 것으로 내 마음의 무게를 보여주고, 휘둘리지 않고 내 길을 가는 것으로 내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세상이 아닌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말 대신 글을 쓴다. 말은 타인을 향하는 듯하다가 다시 머릿속으로 들어와 나를 괴롭히지만, 글은 반대다. 글은 내가 가야 할 길을 열어준다. 온전히 나를 향한 외침이며 지침이다.


여전히 입이 근질근질하다. 오늘만 공허해질까, 오늘만 후회할까. 마음이 가는 대로 실컷 행동하고 나서 오늘을 인생에서 걷어낼까.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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