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말들의 편 가르기, 차별의 말들 >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상상해 볼 때가 있다. 책으로 만난 사람은 그의 글을 통해서만 가늠할 수 있으니, 그의 글과 나의 편향된 생각이 합쳐져 가공의 인물이 탄생한다. 살면서 즐겨 읽던 책의 작가를 만나는 일이 흔한 경험은 아니므로 어쩌면 내 머릿속의 작가는 실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 우연히 작가를 마주하게 됐을 때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데, 그게 얼마나 짜릿한지 모른다. 몇 달 전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들었을 때가 그랬다.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 울리던 그의 음성이나 말투, 표정과는 사뭇 달랐던 작가를 보며, 그만큼 그에 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 들떴던 기억이 난다.
그분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주로 사회 불평등과 갈등, 불합리한 차별과 혐오에 관해 책을 쓰는 작가에게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는 '냉철하다, 예리하다'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한 작가는 분명 씩씩한 말투를 가졌으며 거침없고 확고한 사람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나의 선입견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리여리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 작가를 맞이하느라 분주한 독자들 앞에서 어떻게든 일손을 도우려던 다정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책을 이야기할 때 문득 보여주는 단단한 표정에서는 냉철함을 넘어서는 아우라가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나는, 들떴다.
교육자원봉사 소모임인 '미르아이 북클럽'이 경기도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받게 된 혜택 가운데 하나가 '저자와의 만남'이었는데, 단번에 떠오른 작가가 바로 태지원 작가님(브런치 작가명 유랑선생)이었다. 우리 독서모임의 취지가 청소년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지만 평소 디베이트 강의를 하면서 많이 참고하는 책이 작가님의 책들이었다. 신간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강의나 행사로 바쁘실 테고 현업에도 종사하고 있어 부담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 없이 제안 메일을 드렸던 이유다. 감사하게도 작가님은 흔쾌히 응해주셨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와주셨다.
[ 평범한 말들의 편 가르기, 차별의 말들 ]
책은,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 차별과 혐오를 품고 있는 말이 "악의 없이 저지른 일이었으나, 명백한 결례"(p9)라는 것을 강조한다. '정상, 등급, 완벽, 가난, 권리, 노력, 자존감, 공감'이라는 핵심어를 중심으로 일상의 언어에 가려져 있던 차별과 혐오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얼마나 쓰이고 있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공감'이라는 키워드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제안한다.
작가가 제시한 해결책은 막연한 '공감'이 아니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공감과 연대로 마무리가 됐다면 실망했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262 어쩌면 공명은 '마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머리'로 생각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263 <공감의 배신>을 쓴 저자이자,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폴 블룸의 이야기대로 공감이 늘 온전한 답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공감한다고 해서 모든 혐오와 비난, 범죄나 폭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공감이 곧 도덕의 근원이고 모든 걸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란 얘기다.
272 누군가에게 깊숙이 공감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낯선 세계의 타인을 만나고 환대하는 태도를 일부러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방음벽이 설치된 방 안에서 확성기를 대고 소리 지르는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낯선 걸 혐오하고픈 내 안의 본능을 알아차리되, 그 본능을 경계해야 한다고. 내 안에 형편없고 구린 마음이 존재함을 알아차리고 그 형편없음을 직면해야 오히려 본능과 같은 고정관념을 물리칠 용기도 갖게 될 거라고.
- p 273
[ 공감의 영역을 넓히려는 의식적인 노력과 형편없는 나를 마주하고 인정할 용기 ]
독자마다 생각하는 결론이 다르겠지만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결론은 이것이다.
무턱대고 공감하라고 했다간 내(內)집단을 향한 깊은 공감만 강화될 수 있다. 혐오와 차별은 자기 자신과 내 편에게만 깊이 공감하고 동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던 인간의 본능에 뿌리를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집단 안에서는 최대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개성을 없애고, 외집단을 향해서는 혐오와 차별을 도구로 끊임없이 다름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존했던 역설적인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따라서 공감만을 강조하는 것은 적절하고 현실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말했듯 '마음'이 아닌 '머리'로 냉철하게 생각해야 일어날 수 있는 게 공명일 것이다.
의식적인 노력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듣고 읽고 토론하고 쓰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상대를 파악하면서 그 간극을 알아내는 것. 갈등과 혐오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토론과 글쓰기를 더 열심히 배우고 더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야겠다.
[ 공감과 환대 ]
나는 새벽에 일어나 떡을 쪘다. 오랜만이었다. 떡을 배운 이후로 줄곧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환대 방식은 늘 떡이었는데 최근 뜸했다. 바쁘다는 게 큰 핑계였지만 무엇보다 누군가를 격하게 환대하거나 감사를 표현할 일이 그만큼 없었다는 게 실감 났다. 요즘 SNS에서 많이 보이는 통밤 설기를 만들기로 했다. 일주일 전에 미리 준비한 햇밤을 전날 삶아서 까두고 쌀가루도 하루 전 빻아두었다. 재료를 준비하고 떡을 만들어 포장하는 내내, 주는 마음이 더 행복하다는 걸 실감했다.
작가님과 우리는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세 시간을 꽉꽉 채워 이야기 나눴다. 시간이 그렇게 가는 줄도 몰랐다. 각자 조금씩 준비해 와서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다과를 충분히 즐길 새도 없이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작가님은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던 중동에서의 생활, 엄마이자 아내이며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의 쓸모, 글쓰기와 출판에 관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이지만 책을 매개로 깊은 공감이 일어나는 시간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환대하는 공간이었다. 더없이 충만했다.
[ 가문의 영광 ]
작가님의 글 중 하나가 교과서에 실렸다. 비상교육에서 나오는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첫 단원에 '우리는 왜 첫사랑 이야기를 좋아할까'라는 글이 실리게 된 것. 낯선 것을 융합하는 게 재미있다는 작가님이 소나기 속 첫사랑과 경제학 원리를 엮어 쓴 글인데, 지금은 절판된 <토론하는 10대를 위한 경제문학 융합콘서트>라는 책에 실려있다고 했다.
작가님께 "가문의 영광이시겠어요~"라고 농담처럼 말씀드렸지만, 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교과서에 실린 글의 작가를 만나다니, 영광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까 싶었다. 절판된 책을 웃돈을 주고 구매했고, 다른 이들은 신간에 작가님 사인을 받을 때 난 절판된 책에 사인을 받았다.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 쓸모 ]
작가는 책에서 "쓸모에 대한 의문은 때로 욕구보다 불안에 발 딛고 만들어진다."라고 했다. 육아, 가사, 글쓰기, 교육자원봉사를 하면서 매 순간 불안했던 우리다.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일이라고 하지만, 돈으로 매기지도 못하는 일을 한다는 소리를 감내해야 했고 스스로도 의심 또 의심했다. 이게 과연 쓸모 있고 가치있는 일인가.
그런데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우리의 삶에 쓸모없는 순간과 가치 없는 일은 없다. 모든 시도는 귀하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쓸모와 가치를 찾아내는 것, 타인을 쓸모로 함부로 폄하하지 않고 인정해 주는 것, 이 모든 일은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귀한 시도다.
- p 254
* 작년에, 작가님의 책을 리뷰한 글이 있어 함께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