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아는 성장통이다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화요일엔 샛길독서 : 어린 왕자 5

( 라라크루에서는 화요일마다 윤병임 작가님이 독서의 샛길을 안내합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여 글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그대 자신을 심판하라.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로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보다 자신을 심판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니라. 그대가 정말 자신을 잘 심판할 수 있게 된다면 그대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로다.

"Then you shall judge yourself", the king answered. "that is the most difficult thing of all. It is much more difficult to judge oneself than to judge others. If you succeed in judging yourself rightly, then you are indeed a man of true wisdom."

(어린왕자 10장)



매년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가라앉는다. 단순히 '우울감'이라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점점 버겁다. 대화가 대화로 끝나지 않고 머릿속에 들어와 내내 나를 긁어댄다. 자기 객관화, 자기 성찰이라는 성숙한 이름으로 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스캐닝하는 것 같지만 실은 엄격한 자기 검열이다. 자기 검열에서 당당하게,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최근 지인으로부터 내 어떤 행동이 자기기만일 수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 단어 안에서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의 말, 행동,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살아가는 방식 등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이 내 안의 깊은 것과는 다른지, 얼마나 다른지를 고민해야 했다. 답이 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린왕자가 방문한 첫 번째 별에는 왕이 살고 있다. 신하도 없고 백성도 없으니, 그가 원하는 권위의 존중이나 명령의 복종은 일어날 수가 없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꽃'처럼, 왕이라고 불러줄 사람, 왕이라는 직함의 권위를 인정할 사람의 존재가 없는 상태에서 왕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어린왕자에게는 절대 권력, 굉장한 권력으로 보이지만 어린왕자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그 별의 왕이었다. 게다가 소위 명령이라는 것도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어린왕자가 하려는 행위를 보며 만들어낸 명령이었으니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작에 불과했다.


그러니 왕이 자신을 '왕'이라 칭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이상적인 모습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행위다. 하지만 <어린왕자>속의 왕만 그렇다고, 나는 아니라고 떳떳이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기기만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부족한 나, 어리석은 나, 민망한 나'만 생각하자면 삶은 너무 고통스럽다. 그걸 포장, 위장, 과장하면서 자신을 조금은 긍정적인 존재로 바라보아야 살아진다.


물론 나의 실체를 아는 유일한 존재가 '나'이기 때문에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은 나를 다시 괴로움으로 몰아넣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기만적 행위를 하는 자아와 그걸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끼는 자아가 서로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한동안 멜랑꼴리아를 경험한다. 자기기만을 직시했을 때 생기는 부끄러움, 죄책감, 자기혐오와 같은 감정인 멜랑꼴리아. 연말마다 내가 느낀 그것은 자기기만과 인식 사이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자기기만과 멜랑꼴리아 사이를 줄타기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일을 자기 객관화의 과정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때로는 멋지고 훌륭한 나의 이미지로 나를 속이고 때로는 그런 나를 꾸짖으면서 조금씩 원숙해지는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연말의 형언할 수 없는 내 감정은 또 하나의 알을 깨기 위한 성장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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