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필요 없었다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혜윰 작가의 <주말은 십(詩) 니다> 2026.2.28


<사과 없어요> 김이듬


아 어쩐다, 다른 게 나왔으니,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게 나왔으니, 아 어쩐다, 짜장면 시켰는데 삼선짜장면이 나왔으니, 이봐요, 그냥 짜장면 시켰는데요, 아뇨, 손님이 삼선짜장면이라고 말했잖아요, 아 어쩐다, 주인을 불러 바꿔달라고 할까, 아 어쩐다, 그러면 이 종업원이 꾸지람 듣겠지, 어쩌면 급료에서 삼선짜장면 값만큼 깎이겠지, 급기야 쫓겨날지도 몰라, 아아 어쩐다, 미안하다고 하면 이대로 먹을 텐데, 단무지도 갖다 주지 않고, 아아 사과하면 괜찮다고 할 텐데, 아아 미안하다 말해서 용서받기는커녕 몽땅 뒤집어쓴 적 있는 나로서는, 아아, 아아, 싸우기 귀찮아서 잘못했다고 말하고는 제거되고 추방된 나로서는, 아아 어쩐다, 쟤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래 내가 잘못 발음했을지 몰라, 아아 어쩐다, 전복도 다진 야채도 싫은데




몇 달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임을 앞두고 음식점을 고르는데, 몇 가지 선택지 중 A가 백합 칼국수집을 제안했다. 의외였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던 A와 B는 평소 밀가루 음식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 친구들은 샤부샤부나 한식을 모임 음식으로 정하곤 했다. 그런데 A가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칼국수를 제안한 것이다.


"칼국수는 밀가루라 좀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라는 나의 말에, "국수보단 샤부가 더 좋지 않을까?"는 C의 말에, A는 단호히 말했다.

"오히려 요즘 평생 안 먹던 칼국수가 땡겨."

그렇게 우리는 백합 칼국숫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백합 칼국숫집의 메뉴는 단 두 개였다. 백합 칼국수와 파전. 먼저 도착한 이들이 다섯 명에 맞게 식사를 주문했다. 그때 5분 늦는다는 C의 톡이 왔다.

"나 칼국수 말고 다른 거 먹을 테니 칼국수는 3인분만 시켜주세요~"

오잉? 이미 5인분을 시켰는데?

뒤이어 D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나는 칼국수 안 먹어~. 다른 거 시켜주세요~"

오잉? 여기 칼국수 말고는 파전밖에 안 파는데?


평소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는 A와 B가 말했다.

"아, 우리는 너희가 우리 때문에 매번 면 요리를 못 먹는 것 같아서 일부러 칼국수 집으로 정한 건데...."

C가 말했다.

"난 원래 면 요리를 안 좋아해. A가 모처럼 칼국수 먹고 싶다고 해서 따른 거지. 나는 백합 추가해서 백합 먹고 파전 먹으면 되니까."

D가 말했다.

"나도 국수 안 좋아하지만 다른 거 팔겠거니 하고 오케이 한 건데. 여기는 칼국수밖에 안 파네? 파전 먹으면 되지 뭐."

내가 말했다.

"나도 체중 조절하느라 밀가루 음식 피한지 몇 달 됐는데. 그래서 요즘은 밀가루 많이 먹는 날엔 방귀가 많이 나오고 설사를 해. 오늘 설사 한번 하지 뭐."


결국 다섯 명 중 칼국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 끼 식사쯤은 친구를 위해 싫어하는 걸 먹어도 괜찮다는 배려만 5인분 시켜놓았던 것이다. 추가 백합을 까먹고 예의상 칼국수 한 젓가락씩을 거들면서, 우리 다섯 명은 배려가 이렇게 위험할 수 있다고 떠들며 유쾌한 식사를 마쳤다. 35년 지기 친구 사이지만 아직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던 우리였다.

사과는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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