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시시콜콜

<가족 편>

by 늘봄유정

"내가 얼마나 서럽고 화가 나던지... 확 죽어버리고 싶더라."
주말이라 찾아뵌 시어머니께서 던지신 말씀...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니는 여전히 스포츠센터에서 3시간 동안 놀며 쉬며 운동을 하실 만큼 정정하시다. 식사도 잘하시고 흰머리도 거의 없으시며 정치 얘기에 흥분도 잘하신다.

그러던 어머님께서 두어 달 전부터 잠만 잤다 하면 꿈을 네다섯 개씩 꾸는데 한참을 꾸고 일어나도 한 시간밖에 안 지났고 꿈도 어머님 젊은 시절 꿈이라 너무 신경이 쓰인다고 하셨다.

"너, 콰이강의 다리 아니? 내가 거길 위태위태하게 건너고 있는 꿈을 꿨다... 그 영화를 결혼 전에 봤는데."

"아니, 어젯밤에는 나 새댁 때 문간방서 살던 애기 엄마가 애를 업고 나온 거야~~ 별일 다 있지? 얼굴도 고대로야~"

"간밤에 너희 시아버지가 꿈에 나왔는데 생전처럼, 어제 만난 사람처럼 나랑 얘기를 하더라?"

그러면서 신경과라도 가봐야 하는 건지 자식들에게 물어보셨지만 아들 며느리, 딸 사위 할 것 없이 모두 대수롭지 않게 넘겼더랬다.
"어머니~ 저도 꿈 많이 꿔요~"라는 큰 아들.
"에구... 어머니 꿈 많이 꾸셔서 힘드시구나..."라는 작은 아들.
"하하하. 엄마, 신경과 가서 뭐라고 말하게? 꿈 많이 꾼다고?"라는 큰딸.
"어쩐대요... 어머님이 가장 행복하셨을 때라서 그리워서 꿈꾸시는 거 아닐까요?"라는 며느리...

그 모든 반응이 맘에 안 드셨던 어머니는 혼자서 신경과 진료를 받으셨고,

"어머님, 살면서 많이 힘드셨나 봐요"라는 의사의 위로와 수면제 처방에 흡족해지셨다. 그러면서 무심한 자식들에 대한 괘씸한 마음은 한없이 커지셨고 결국 만만한 막내아들 내외에게 투정, 하소연을 한동안 쏟아내셨다.

나이 들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관심을 얻기 위해 하는 것처럼 저러시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 대수롭지 않은 상처지만 엄마 아빠가 오버해서 걱정해주고 밴드라도 붙여주고 나면 흡족한 미소로 돌아서던 아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노년기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일 수 있다. <나이 듦에 관하여>라는 책을 상기해보자면, 어머님의 노여움은 관심받고자 함이 아니라 삶의 목적과 존재가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때문인 것이다. 거기에 외로움까지 더해진 노인에게 함께 살지도 않는 자식들의 '먼산 불구경 보듯'하는 태도는 섭섭함을 넘어선 괘씸함, 서러움을 안겨드린 것...

주차장까지 배웅 나오신 어머님은 내 귀에 들릴락 말락하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입원을 해봐야 하나?"
이번에도 나는

"아.. 입원요?"라고 문하며 그대로 차에 타버렸다.

'꿈 좀 많이 꾸신다고 무슨 입원까지?'라는 생각이 묻어있는 얼버무림...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어머님이 원하신다면 입원을 시켜드리는 게 맞다.>


* 입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어머님의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절박하게 여겨주는 누군가가 필요하신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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