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작렬 김밥

by 늘봄유정

"이번 토요일에 바빠?"

"아니? 왜? 스터디 밤늦게 끝나니 데리러 와달라고?"

"아니~~ 내가 뭐 그렇게 간 큰 남편인 줄 아냐? 근데, 애들 점심은 뭐해줄 계획이야?"

"점심? 그냥 뭐 있는 거 대충 주면 되지. 그건 왜?"

"아니~ 혹~~~ 시라도 애들 김밥 싸줄거면 싸는 김에 다섯 줄만 더 싸 달라고~"

"다섯 줄? 스터디하는 사람들이랑 먹으려고? 밖에서 안 사 먹고?"

"공부하다가 밥 먹으러 나가면 시간 버리니까 김밥 사다 먹기로 했거든. 당신 김밥 잘 싸니까 자랑도 할 겸..."

"아... 밤 10시에 데리러 오라고 하는 건 간 큰 거고, 김밥 싸 달라는 건 간 큰 남편이 아닌 거구나..."

"아냐 아냐, 안 싸도 돼~ 그냥 해본 소리야. 애들 거 쌀 거면 싸 달라는 거지 일부러 싸지 않아도 돼. 신경 쓰지 마~"


며칠 전 남편의 '그냥 해본 소리'는 내 신경을 온통 김밥에 집중시켰다. 안 싸자니 찜찜하고 싸자니 부담스러웠다. 아이들 점심으로 대충 집에 있는 재료 써서 두어줄 마는 것과, 중년 아저씨들의 식사로 다섯 줄 싸는 건 절대 같은 일이 아니다. 그걸 알리 없는 남편이다. 주말에 뭘 차려 먹을지 고민하는 아내에게 "집에 있는 거 대충 간단히 먹자~"하는 사람 아니던가.


젠장 1.

김부터 시작해 김밥을 쌀 수 있는 모든 재료가 집에 있다. 심지어 단무지까지. 재료가 없어 못 싼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다.


젠장 2.

밥이 너무 잘 됐다. 평소엔 질거나 되거나 둘 중 하나이던 김밥용 밥이 오늘따라 딱 맞게 고슬고슬하다. 게다가 윤기까지 돈다.


젠장 3.

잘 말린다. 매번 탄탄, 탱탱하게 싸지 못했다. 옆구리는 터지기 일쑤였고 다 말고 나면 양끝으로 재료들이 줄줄 흘러나왔는데... 오늘은 딱 봐도 딴딴하다.


젠장 4.

잘 썰린다. 칼이 유난히 잘 든다. 자르다가 풀어지고 너덜너덜해져서 이 칼 저 칼 바꿔가며 자르곤 했는데 오늘은 김밥집 칼처럼 쓱쓱 잘 썰린다.


"에구... 남편 때문에 마누라 고생해서 미안해 어쩌지?"

라며 형식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남편에게 나도 기계적인 답을 던진다.

"아. 니↗. 야↘... 이 김밥 먹으며 부담감 팍팍 느껴서 시험에 꼭 합격하길 바랄게..."


1년 가까이 자격증 시험공부 중인 남편은 수험생인 아들만 챙기는 아내에게 내심 섭섭한 게 많아 보였다. 본인에겐 더없이 중요한 시험이요, 내년엔 더 어려워진다고 하니 올해 꼭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아내에겐 그저 남얘기인가 싶었을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출근 전 토마토를 갈아주는 것이었다. 대신 공부를 해줄 수도 없고 어떻게 공부하라고 조언을 해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김밥 다섯 줄 싼 것으로 수험생 뒷바라지 생색을 낼 수 있다면 기꺼이 말아주마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뒤끝 작렬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수능 보는 아들만 신경 쓰는 아내 때문에 제대로 수험생 대접을 받지 못한 모든 설움이 달래지기를 바라본다.

'우리 와이프 내조가 이 정도요~'라며 어깨에 뽕 좀 들어가기를 바란다.

마음 한편이 부담스러움으로 꽉 차서 밤새고 코피 쏟아가며 공부하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수험생 없는 일 년을 보내고 싶으니 올해 꼭 합격하기를... 바란다.

김밥 댓 줄 싸 달라하고는 일 년 내내 욕 들어먹지 않으려면 꼭 합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