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사골국을 먹게 할 거야~~

by 늘봄유정

냉동실에 사골국이 떨어지면 큰일 나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국이 없으면 섭섭해하는 남편을 달래고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좋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편리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반찬이 없을 때 냉동실에 잔뜩 얼려두었던 사골국물을 녹여 끓이고 김치 하나만 곁들여내면 한 끼가 해결됐다. 그래서 더운 여름날엔 땀 뻘뻘 흘려가며 끓였고, 추운 겨울날엔 거실 창 가득 김이 서리게 스팀 뿜어가며 끓였더랬다.


어렸을 때는 열심히 먹던 아이들이 서서히 사골국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대신 걸쭉한 찌개나 푸짐한 고기반찬을 찾았다. 남편도 밍밍한 사골국보다는 고기나 굴을 넣어 뽀얀 미역국이나 얼큰한 김치 콩나물국, 시래기된장국등 다양한 국 메뉴가 다채롭게 돌아가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결국 사골국은 떡국으로 소비되거나 다른 찌개의 베이스 국물로 사용되면서 시나브로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요즘, 사골 좀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오늘 큰 맘먹고 장을 봐왔다. 시험을 앞두고 얼굴이 까칠해진 두 남자와, 12월 중순까지 온라인 클래스를 하며 집콕해야 하는 한 남자를 위해 이틀 동안 아궁이 앞을 지키기로 한 것.


반나절 이상 물을 갈아가며 핏물을 빼고 물에 한번 튀겨낸다. 찬물에 깨끗이 씻은 사골을 여섯 시간 동안 푹 끓인다. 첫 번째 끓인 국물을 따로 덜어내고 새로 찬물을 부어 다시 여섯 시간을 끓이다. 중간중간 들여다보며 기름과 불순물을 걷어낸다. 여섯 시간씩 세 번을 끓이고 나니 너덜너덜해진 뼈를 버리고 첫 번째 국물, 두 번째 국물, 세 번째 국물을 합쳐서 다시 한번 끓인다. 드디어 뽀얗고 걸쭉한 사골국이 완성된다. 완성까지 꼬박 이틀이 걸리는 이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은 큰 맘을 먹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사골국을 끓인다는 건...

평소 해준 것 없는 어미지만 그래도 무언가 하나는 해주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

곰살맞게 애교 한번 부리지 않는 아내이지만 부쩍 잠꼬대가 심해진 남편을 살피고 있음을 알릴 수 있는 것.

손끝이 야무져 철마다 인테리어를 바꾸는 사람도 아니고, 바지런해서 매일매일 반찬을 바꿔가며 정갈한 상차림을 준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우직하게 불 앞을 지키며 사골국 하나는 잘 끓여낼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뜨끈한 국물에 밥 말아 한 그릇 후루룩 들이키고 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혼자 흐뭇해하는 것.

냉동실에 가득 채운 사골국을 보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뿌듯한 것.


그렇게 사골국을 끓인다는 건,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던 것 같다. 보잘것없는 내가 괜찮은 어미이자 아내인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눈속임이요, 잘난것 하나 없는 나 자신에게 티끌만 한 자존감이라도 심어줄 수 있는 경건한 의식이었다.


그런데 밍밍한 사골국으로는 더 이상 눈속임도 불가능하고 나 스스로도 만족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물에 뼈다귀만 담가놓으면 저절로 알아서 뽀얘진다는 비밀을, 끓이면 끓일수록 몸에 좋은 칼슘보다는 인이 많이 나와 오히려 몸에 안 좋다는 과학적 사실을 모두가 알아버면 어쩌나. 나오는 결과물의 양과 쓰임에 비해 내 공헌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엔 양지, 사태, 도가니까지 넣어 푸짐하게 끓여내기로 했다. 아무리 뒤적여도 국물밖에 없던 사골국 대신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실한 고기들이 딸려 올라오고 한참을 입에서 우물거려야 목구멍을 넘어갈 수 있도록 푸짐한 곰국을 말이다. 고기를 함께 끓여 때깔은 좀 탁하지만 구수함과 영양은 배가 된 탕을 끓여내리라...


고기 가득한 국물에 밥을 말겠지. 송송 썬 파를 가득 넣고 소금, 후추를 넣어 잘 섞은 뒤 크게 한 숟가락 들어 올리겠지. 잘 익은 김치를 그 위에 얹어 한입, 낙지 젓갈을 얹어 또 한입.

그득하게 먹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뱃속까지 뜨끈한 기운이 가득 차는 기분을 만끽하게 될 것이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국물 한 방울 먹지 않고도 가슴속이 뜨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테지...

순전히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한 사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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