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닭발

by 늘봄유정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아니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다. 창피해서 이불속에 머리만이라도 박고 싶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통곡이라도 하면 나을 것 같은데 건넌방에서 작은아들 녀석이 숙제 중이었다.

벌써 저녁시간. 배고프다는 작은 녀석을 위해 카레를 데우고 돈가스를 튀기다가 냉동실에 하나 남은 봉지 닭발을 꺼내 들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매운 닭발을 만들리라. 혀가 타들어가고 속이 뒤집어져서 내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리 분노했는지, 혹은 속상했는지, 아니면 수치스러웠는지를 잊어버리도록 하리라.


생닭발이라 물에 한번 삶아줘야 한다. 생강, 대파를 대충 쑤셔 넣고 끓였다. 평소 같으면 10분 넘게 푹 끓였겠지만 익었다는 기분이 들자마자 찬물에 헹궜다. 동봉된 소스를 넣고 자작하게 볶아내야 하지만 오늘은 국물 있는 닭발을 먹고 싶었다. 닭발이 잠기게 물을 넣고 소스를 짜 넣은 뒤 뚜껑을 덮었다. 제발 좀 알아서 그냥 맛있어져라... 청양고추 하나를 가위로 뭉텅뭉텅 잘라 넣었다. 졸여지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상으로 옮겼다. 자리에 앉자마자 숟가락으로 국물 한번 닭발 한 번을 허겁지겁 먹었다. 맛있다. 맵다. 계란찜을 부르는 맛이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계란찜을 했다. 전기 주전자로 급하게 끓인 물을 작은 스텐 뚝배기에 붓고 풀어놓은 계란을 서서히 넣으며 마구마구 저어주었다. 최대한 빨리 익어라... 잘 저은 계란물 위에 국그릇을 덮었다. 익기를 기다리며 다시 닭발을 흡입...

며칠 동안 다이어트한답시고 저녁도 안 먹었지만, 앞에서 밥을 먹는 아들 녀석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지만, 생각보다 덜 매워서 아쉽지만 계속 국물을 떠먹었다.


적당히 익은 계란찜을 가져와 닭발과 먹었다. 싱겁고 맛이 없다. 이제 닭발까지 맛없다. 갑자기 역한 냄새가 났다. 수저를 내려놓았다. 남은 닭발을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나중을 기약하며 냉장고에 다시 넣어두고 싶지 않았다. 눈구멍으로 나올 뻔했던 물들이 콧구멍으로 다 빠져나왔으니, 닭발은 할 만큼 한 거였다. 어차피 해소되지 않을 갈등이요 해결되지 않을 상황이라면 그냥 이렇게 나 혼자 닭발이나 먹고 씩씩거리다 제풀에 지치면 될 일이다.


"하지 마! 너 아무것도 하지 마!"

마침 영화채널에서는 <엑시트>가 방영 중이고, 용남의 아버지가 평소 한심하기 그지없던 아들에게 던지는 대사가 크게 귀에 꽂힌다. 타이밍 참... 나 들으라고 일부러 방송사에서 틀어놓았나 보군... 방송국 놈들...

'닭발도 하지 말고, 불평도 하지 말고, 씩씩거리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사랑도 하지 말고, 효도도 하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고, 숨도 쉬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웃 작가님들은 그들의 글에서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글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며 글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노라고. 나 역시 그렇게 믿는다. 글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가끔은, 빌어먹을...

내 브런치인데, 내 글인데 속시원히 못쓴다. 보는 눈이 많다. 나의 한마디에 맘 쓰고 맘 상할 사람들 생각에 썼던 글을 여러 번 지웠다. 오늘만도 그렇다. 왜 이리 뿔이 났는지 소상히 적어내지를 못한다. 애꿎은 닭발을 뒤적거리고, 내용도 없는 글을 쓰고 있다.


"너 아니면 안 되겠어, 나 좀 안아줘!"라며 퉁퉁 부은 얼굴로 찾아가 놓고는, "미안해, 애초에 너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라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 나. 버려진 닭발...

그 와중에 글에 첨부할 사진을 찍은걸 보면, 닭발이 아니라 글에게 뛰어가기 위해 닭발을 이용한 게 아닌가 싶다. 이래저래 버려진 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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