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말이를 위해 코팅이 잘 된 사각 프라이팬을 장만했으며 얇게 부쳐 조심스레 말고 또 말았다. 인생 역작으로 기록될 계란말이를 탄생시킨 날로 기억한다.
조카를 위해 준비했던 첫 수능 도시락. 계란말이가 예술... 이후로는 저렇게 안말린다...
작년에는 큰 아들의 도시락을 쌌다.
수능 훨씬 전부터 철저한 계획하에 도시락을 준비했다. 적당히 알맞게 익은 김치를 싸주려고 3주 전에 김치를 담갔다. 일주일 전에 아이와 의논하여 반찬 리스트를 작성했다. 3일 전 온라인으로 반찬 재료들을 주문했다. 이틀 전에는 보온도시락의 상태와 밥, 반찬의 양을 가늠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모의체험을 시켜주었다.
수능 전날엔 장조림을 만들고 전거리를 준비하며 질질 눈물을 짰다.
당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소고기 뭇국을 끓였다. 장조림, 깻잎전, 멸치볶음, 소시지 베이컨 말이, 아스파라거스 볶음, 분홍 소시지, 김.
바리바리 쌌다. 선물 받은 도시락 세트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채웠다. 책가방 외에 소풍이라도 가는 듯 큰 도시락 가방을 한 손에 들고 가던 아들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수능을 마친 아들은 수험생들의 도시락 반찬이 다 똑같아서 배꼽을 잡았다고 했다.
오늘 아침, 큰 아이의 수능 도시락을 다시 쌌다.
재수를 결심한 아들의 두 번째 수능 도시락이었다. 매달 치르던 모의고사 때마다 점심을 걸렀다던 아들은 수능날도 점심을 안 먹겠다고 했다. 배가 부르면 영어시간 집중도 안되고 혹시 배가 아플 수도 있을 거란다. 그래도 정 싸야겠다면 밥과 스팸 몇 조각, 엄마가 만든 오이지무침 정도만 조금 싸 달라고 했다. 책가방에 간단히 들어갈 정도 크기의 작은 도시락이면 충분하며 보온도 필요 없다고.
아들이 주문한 딱 그만큼만 쌌다. 그마저도 먹고 싶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사과 몇 조각만 더 쌌다. 준비하는데도 10분밖에 안 걸렸고 싸놓고 보니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가장 작은 도시락 통만 골라 담고 가장 작은 도시락 가방에 담았다. 큰 책가방 안에 쏙 들어가 한참을 뒤적거려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을 움츠린 수능 도시락이었다.
이게 끝! 싸면서도 민망했다.
고사장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도시락 사진을 본 남편이 한마디 했다.
"아... 하나가 아쉽네... 계란 프라이가 하나 얹어져 있었다면 좋으련만... 사진상 그렇다는 얘기야."
"사진으로 밥 먹냐!"
계란 프라이를 생각 안 한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디선가 읽은 블로그 글이 걸렸었다. 계란 프라이는 소화가 잘 안될 수도 있고 배탈이 났을 때는 안 좋을 수 있다는 이야기. 계란말이나 프라이나 같은 계란인데 싶어 하나 부칠까 했다가 행여나 하는 마음에 패스했던 거였는데... 남편의 난데없는 계란 프라이 타령에 아침부터 신경이 곤두서버렸다.
안 먹더라도 계란 프라이 곱단하게 하나 부쳐 밥 위에 얹어줄걸 그랬나...
싸 달라는 대로 대충 싸지 말고 작년처럼 하나하나 정성 쏟아 바리바리 싸줄걸 그랬나...
도시락에서부터 부담 느낄까 봐 내 딴에는 신경 쓴다는 것이 너무나도 무심한 도시락을 낳은 게 아닐까...
'도시락 따위 아무렴 어떠리. 올 한 해를 갈아 넣은 아들의 노력이 고사장에서 고스란히 발휘될 수만 있으면 되지...' 싶다가도, 계란 프라이 하나만 얹었다면, 그랬다면 어미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