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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4. 2019

D-100 프로젝트 < D-45 >

< 이기심의 무게 >


결국 끝났다. 모든 것은 끝이 있기 마련.

결과야, 이제 우리 소관이 아니고, 신이 있다면 그의 몫이다.


아이를 데리러 4교시가 끝나기 20분 전 학교 앞에 도착했다. 이미 학교 앞 대로변은 주차된 차량으로 가득했다. 하는 수 없이, 멀리 주차된 차량의 대열 제일 마지막에 차를 세웠다. 대로변에 위치한 고사장은 입구가 대로에서 난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골목은 오르막길이었고 그 끝은 막다른 길이었다. 막다른 길에 고등학교와 중학교 입구가 마주 보고 있는 구조였다. 중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었다. 학교 앞 벌써 누군가의 아빠, 엄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틈에 껴서 나도 아이가 나올 문을 보며 하염없는 기다림을 이어갔다.


마칠 시간이 임박하자 어이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 골목길로 한대, 두대 차들이 들어오더니 급기야 정문 앞에까지 주차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눈동자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차를 떡하니 세웠다. 나 같으면 차 밖으로 나오기도 민망하겠건만 '그런 게 민망했으면 여기에 대지도 않았다'는 것인지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와 다른 이들과 나란히 서서 아이를 기다렸다.

그래도 한쪽으로 세워두는 기본은 지켰다고 칭찬해드려야 하는 건가...


모두가 같은 맘이었겠지만 어느 누구 하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험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아이의 밝은 표정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맘 때문이었으리라.

그 어떤 부당한 상황이라도 그저 눈 질끈 감고 넘겨버려 어떤 액운이라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더 기막힌 상황은 그 이후에 펼쳐졌다. 아이들이 한, 둘 나오기 시작하자 정차되어있던 차량들도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쏟아져 나온 아이들로 골목길이 꽉 막혔다는 것이었다. 지켜보던 부모들 중 여기저기서  "쌤통이다! 아마 제일 늦게 집에 갈 거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들은 아랑곳 않고 경적을 울렸다. 창문을 열어 좀 비켜달라고까지 했다. 하필 차는 왜 또 고급 외제차량이더냐. 타이타닉 최고등급 객실 이용자라도 된듯한 저 도도한 뒤통수는 또 뭐란 말이더냐.

"신이 심판하실 것이다. 아이의 성적으로 벌을 내릴 것이다."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입 밖으로 내지 말 것을... 이 말 한마디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덕이 무너져 내리면 어쩔 것인가... 아이에게 갈 복이 조금이라도 달아나면 어쩔 것인가...


그러나 한편...

지나가는 다른 수험생들에게 경적을 울리며 자기 아이의 귀가를 서두르는 그들이 나쁜 걸까,

그런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은 내가 더 나쁜 사람일까?

자기 아이가 조금이라도 덜 춥게, 조금이라도 빨리 지친 몸을 쉴 수 있게 학교 앞에 차를 댄 그들이 이기적인 걸까,

학교 앞에 세우고 싶은 맘이야 있었지만 그런 일을 하지 않는 덕을 쌓음으로 인해 우리 아이에게 더 큰 행운이 오기를 바란 내가 더 이기적인 걸까?

눈앞의 이익만을 바란 그들이 이기적인 걸까,

보이지는 않지만, 먼 미래의 이익까지 고려하며 사는 내가 더 이기적인 걸까?

뻔히 드러나는 행위로 자신의 이기심을 당당히 드러내는 그들이 나쁜 걸까,

착한 척, 상대를 위하는 척했던 모든 행위들이 내 아이에게 좋은 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하는 행위였다면 내가 더 나쁜 걸까?

그들과 내가 가진 이기심의 무게는, 다르긴 한 걸까?


그런 고민을 씁쓸히 하다 보니 아들이 나왔다.

멋쩍게 웃으며 "망했어!"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한없이 미안했다. 방금 퍼부었던 저주의 말들로 인해 내 아이에게 올 복중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아 미안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누군가처럼 저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빨리 쉴 수 있게 정문 앞에 주차해둘 것을... 차라리 대놓고 이기적일 것을...


자식 앞에서는 나 하나쯤 이기적인 인간으로 손가락질당해도 괜찮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라고...

그들의 행동이 또 이해가 되는 나는...

참...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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