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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3. 2019

D-100 프로젝트 < D-46 >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다른 어떤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는 날.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일부러 '쓰는 행위'조차 피하고 싶지만

'쓰는 행위'라도 해야 하는 날.

수능 전 날...


아이를 깨우고 학교를 보냈다. 예비소집일이라 수험번호와 고사장을 확인하게 된다. 먼 곳이라면 하교 후 함께 다녀오자 했었다. 다행히도 집에서 멀지 않은 신설 학교. 폭설이 내린다거나 길이 얼어버리는 등의 돌발상황만 안 생기면 10분이면 닿을 거리다. 아이는 안 가도 된다고 했다. 그 시간에 독서실을 가겠다고...

그런데 나는 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고사장을 나오는 길에, 현타가 왔다.

"비로소, 시작되었구나... 내일이구나... 아... 내일이구나..."

'통곡할 만한 자리'는 그렇게 예고 없이 훅 펼쳐졌다. 차를 몰며 하염없이 펑펑, 엉엉 울었다. 눈이 붓는지 얼굴이 때끈해지는지, 세상 처량해 보이는지 상관없이 가슴이 뻥 뚫리도록 울었다.

그 와중에 연료 부족 표시가 떠서 주유를 했다. 내일 아이 고사장에 가는 길에  넣을 수는 없으니...

기름을 넣는 일 하나에도 생각이 많아졌다. 늘 한결같이 5만 원을 주유했는데, 오늘은 3만 원을 넣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5만 원 넣었다가 5등급 나오면 어쩌지? 모든 과목이 3등급을 벗어나지 말았으면 하니 3만 원을 넣자.' 기왕이면 만원을 넣지 하시겠지만... 나도 양심은 있다.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톡에서도 보였는지 친구가 점심을 사주겠다며 시간을 내주었다. 새로 생긴 고깃집으로 데려가 주는 맘이 고마워 다시 눈물이 났다. 이때 알았다. 내 멘탈은 이미 나갔구나...


100일 전.

적금을 시작했다.

작년 수능 직후, 100일 동안 만원씩을 저금하면서 '보내는 사람' 란에 한 글자씩 편지를 입력했다는 어느 어머니의 사연을 따라 했다. 100일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8월 6일부터 오늘까지 매일 만원씩...

준열이를 아빠로
유정이를 엄마로 만들어준 호재
마냥 해맑은 아기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스무 살이라니 신기하구나
세상은 꽃길만 있지는 않지만
순간순간 삶이 주는 의미와 재미를
만끽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래
눈부신 삶을 한껏 누리길

마지막 만원을 송금하며 '길'자를 입력하는 순간의 후련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휑해지던 기분... 또 주르륵...


100일 전부터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 식구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랬더니 유난히 더 먹고 싶어 지는 건 뭔지... 그래도 꾹 참고 끓이지 않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바쁜 일정들은 모두 수능 전, 가능하면 10월로 마무리했다. 교육자원봉사도 9월에 빡빡하게 스케줄 짜서 끝내 놓았다. 봉사 때문에 시작이 늦어진 마을교사 양성과정도 수능 전에 마무리했다. 11월 초에 예정되어있던 교도소 자원봉사와 순천 학부모 설명회 출장은 고사했다. "뭐야? 프로답지 못하게?"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3주 전

김치를 담갔다.

수능 도시락에 신김치 대신 가장 맛있어하는 익힘 정도의 김치를 넣어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일주일 전

도시락 반찬 리스트를 작성했다.

작년 수능 때, 사촌 형 수능 도시락을 준비하던 나에게 아이는

"난 평소에 좋아하는 가공식품 3종 세트 싸줘~~ 싸구려 분홍 소시지, 비엔나 소시지, 베이컨. 그거면 충분해~"라고 했다. 그 세 가지를 포함해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선정했다.


3일 전

반찬 재료들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장조림용 고기와 가공식품 3종 세트, 깻잎전 재료인 돼지고기와 깻잎과 야채들...


이틀 전인 어제

12월로 예정되었던 천안 모 고등학교 수업이 갑자기 당겨지는 바람에 저녁을 차려줄 수 없었다. 덕분에 수능 도시락 모의 체험을 해볼 수 있게 도시락을 싸놓고 나갔다. 선배맘의 조언대로 새로 준비한 보온 도시락의 상태가 어떤지, 뚜껑은 잘 열리는지, 밥과 반찬의 양은 적당한지를 확인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오늘

그렇게 차곡차곡 차분히 준비해 놓고는 오늘 이렇게 눈물을 짜고 있다. 다행히 아이가 하루 종일 독서실에 있었고 저녁도 친구와 만나 설렁탕을 먹고 들어오겠다고 해서 찌질한 모습을 들키지 않았다.

장조림을 만들고 전거리를 준비했다. 내일 챙겨야 할 물건들을 한 군데 모아두었다. 아이가 들어오면 정리하겠지... 그때까지는 멘탈을 다시 수습해야 한다.

핸드폰을 열어 여기저기 들어가 본다. 수능 응원 문구에 수능 유의사항으로 가득하다. <수험생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마세요>라는 기사를 읽어보고, 남편에게 전송도 해주었다. "내일까지 아무 말도 말자"라고 함께 다짐한다.

떨리는 목소리,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로 전화받는 나에게 남편은

"글이라도 써~"라고 다독여준다.

"잠이라도 자~"라던가, "기운 내~"가 아닌 "글이라도 써~"라는 말이 이렇게 힘이 될 줄이야...


수능금지송을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의 성스러웠던, 조심스러웠던 100일을 글로 옮기면 부정이 탈까 봐 꺼내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글쓰기를 허하노라..."라는 한마디에 세상 모든 금기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수험생 어머니들의 종교는 샤머니즘이라던데, 나의 샤머니즘은 '쓰기'였구나...


이렇게 나의 100일을, 오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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