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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12. 2019

D-100 프로젝트 < D-47 >

< 매일매일의 힘 >


'100일 동안 내 책 쓰기' 인증을 하면서 매일의 글을 쓴다는 것이 많은것을 채워줌을 느꼈다. 이 성취감, 만족감을 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그들과의 인증제를 시작한 지 3주가 되어간다. 디베이트 수업과는 별도로 진행하는 것이라 사실 큰 부담이다. 내 인증도 챙기기 힘든데, 그들과의 인증도 챙겨야 해서 밤 10시가 넘어가면 톡도 바쁘고 나도 바쁘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 4명은  

<중학교 비문학 독해연습>이라는 문제집 인증제를 하고 있다.

A4 한쪽 분량의 비문학 지문을 읽고 거기에 딸린 문제 2~3개를 푼다.
정답지를 보고 답을 맞힌다.
문제 푼 면을 촬영한다.
단톡 방에 밤 12시 전까지 인증샷을 올리면 끝!

처음엔 누구나가 그렇듯이 모두 열심히 참여했다. 인증제의 취지에 대해서도 공감했다.거기에 내가 살짝 친 약까지 곁들여 성공적으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50일 동안 인증을 잘하면 맛난 걸 사주겠다는 약... 대신 인증을 못하면 하루당 500원을 계산해서 맛난 거 살 때 보태기로 했다.


2주가 되어가던 즈음, 촉이 발동했다. 아이들이 매일 올리던 인증샷을 면밀히 검토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제대로 문제를 푼 것인지 확인하려던 것인데 한 녀석이 같은 페이지 사진을 4번 올린 을 발견했다. 어찌나 용의주도했는지, 네 번모두 약간 다른 각도에서 찍었다. 페이지까지 확실하게 체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요 녀석 봐라?' 괘씸하면서도 웃기기도 했다. 그렇게 공들여 사진 찍을 시간이면 충분히 풀 수 있는 양이건만...

톡상에서 그 4일에 대한 불인정 선포를 하고, 인증제의 취지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야 했다.

이 일 이후 다시 한번 잘해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오늘까지 인증은 지속되고 있다.

돌아가면서 하루씩 빠지기도 하지만 4명 중 한 명은 인증을 빠지지도 않을뿐더러 하루에 풀 수 있는 만큼을 몇 장씩이나 열심히 풀고 있다. 빨리 끝내기 위함이 아니라 문제집을 더 풀고 싶어서라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꽤 효과적인 인증제이 분명하다.


중3 학생들은 매일 수필 하나 읽기를 하고 있다.

<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 시리즈 중에서, 시는 너무 짧을 듯하고 소설은 너무 길다고 생각해 고른 것이 수필이었다. 그저 길이 때문에 고른 것이었는데 만족도는 꽤 높다.

소설책 2장 분량의 수필 속에는 각 작가마다의 각기 다른 경험들과 다양한 생각들이 펼쳐진다. 이를 읽으면서 자신의 삶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나라면 어떨까 유추해보기도 하는 경험을 아이들이 매일 하고 있다.


읽고 나면 짧게 한줄평을 써서 내게 개인 톡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5명 중 3명은 늘 장문의 소감문을 보내온다. 길지는 않지만 진지한 고민이 담긴 글을 보내는 이들도 있고, 늘 손으로 꾹꾹 눌러쓴 소감을 보내오는 이다.

일기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 줄임말로 가득한 톡에 익숙한 아이들이 장문의 소감문을 이렇게 진지하게 '매일' 쓸 수 있다니. 놀라움을 넘어 감동이다.

다양한 마음, 다양한 표현, 그러나 모두 다같이 진지한 태도...

 

고민하고, 고민에 대한 결과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 공간, 방법을 꾸준히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책 좀 읽어라, 문제집 좀 풀어라"라는 목적의식 없는 명령이 아니라, 책을 읽고 문제집을 푸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먼저임을 깨달았다.


약간의 강제, 약간의 부담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집어 들어 읽고 소감 한 줄을 남기는 정성, 그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의미 있는 한 문장을 만났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카프카가 말했던, 꽁꽁 언 바다를 도끼로 내리친 것 같은, 우리를 잠에서 깨운 것 같은 문장 하나, 글 한편...

그런 경험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준 아이들에게 한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끝까지 잘 진행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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