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가게 복기록
장사를 시작한 지 3년이 조금 넘는 시점에 우리는 가게를 넘겼다. 초기 자본을 고스란히 받고 넘겼으니 손해 본 것은 아니었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인생의 값진 경험, 진한 교훈을 남겼으니 오히려 남는 장사였다는 게 맞다.
가게를 넘겨받은 이는 은행을 퇴직하고 야심차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년 남성이었다. 전문 중개인을 통해 우리 가게에 대한 정보, 예를 들어 최근 1년간의 월 매출이나 상권이 지닌 긍정적인 전망 등을 전해 듣고 여러 번 가게를 드나들더니 결국 인수하기로 했다.
수입차 딜러를 했던 전력 때문인지 고객을 대하는 태도나 사회성이 남달랐던 남편과는 달리 은행에서도 종일 계산기만 두들겼을 것 같은 인상의 그분이 몹시도 걱정이 됐다. 오지랖은... 계약을 할 때나 인수인계를 할 때도 아내가 동행하지 않은 것을 보니 온전히 혼자서 운영할 심산 같았다. 그 역시 걱정이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 계약서에 명시된 날까지만 내 몫의 공간이었다.
영업 마지막 날, 여느 때처럼 장사를 했고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았다. 24시간 삼겹살집에 큰 룸을 하나 얻어 3년 동안 인연을 맺었던 아르바이트생들과 주방 실장님, 우리 아이들까지 20여 명이 모여 마지막을 기념했다. 우리 부부보다 더 섭섭해하던 아르바이트 직원들과 새벽까지 실컷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섭섭하지 않았다.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되려 홀가분했고 모든 것에 감사했다.
큰 말썽, 사고 없이 첫 장사를 마무리한 것, 많은 도움을 주었던 모든 인연에 감사했다.
쫄딱 망해 인테리어를 철거하고 원상복구시키면서 끝맺음한 게 아니라, 있는 가게 그대로 제값 받고 넘겼으니 그 또한 감사했다.
갑자기 장사한다며 정신없던 엄마 아빠였는데도 무럭무럭, 씩씩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도 감사했다.
잠시나마 아내와 함께 짊어지던 가장의 짐을 다시 혼자 끙끙 짊어지게 된 남편에게는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나 역시 내 역할에 대한 부담, 책임감을 다시 짊어지게 되었으니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사춘기가 깊게 들어찬 큰아들을 돌봐야 했고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엄마를 가게에 빼앗긴 작은 아이의 곁도 살펴야 했다. 처음부터 사회생활을 했던 엄마라면 갖지 않았을지도 모를 의무감이다. 엄마가 집에 있어줘야 하고 제때에 뜨신 밥 차려줘야 한다는 강박. 그 강박을 다시 챙길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장사를 끝낸 게 너무 좋았다. 다음날 갈 곳이 없다는 게 제일 좋았다.
44년 인생에 고작 3년이었다.
그 짧은 경험이 내 인생에 남긴 흔적은 어느 것보다 크고 깊었다. 굳이 상처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지나고 보니 그리 아팠던 기억도 없고 상처 따위도 없다. 3년 내내 팔뚝 잔뜩 박혀있던 기름 튄 자국은 몇 번의 여름을 지나며 옅어지다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일화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걸 보면 짧지만 굵은 이벤트였음이 분명하다.
언젠가 한 아르바이트 직원이 매운 소스를 강제로 먹게 돼 속이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8화에 소개했던 직원이다.) 구토를 하러 화장실로 가는 길에 건물 복도에 그만 토사물을 쏟고 말았다. 남편과 다른 직원이 치웠다고 하기에 잊고 있었다. 그러다 집에 가는 길에 확인하니 웬걸. 대충 치우는 시늉만 한 현장이 아닌가.
"아니, 다들 이렇게 해놓고 다 치웠다고 한 거야?"
"다 닦았는데? 마지막에 물티슈로도 좀 닦았는데? 흔적이 좀 남았어도, 우리 손님이거나 직원이라고 생각도 못할 텐데 뭘?"
"그렇지... 물티슈로 닦았지... 감쪽같이... 그런데 그 옆에 우리 치킨집 상호가 적힌 물티슈 비닐이 버려져있네? 누가 봐도 OO치킨 관계자가 여기에 딱 토해놓고 간 것처럼 보이던데? 제대로 뒤처리를 했어야지!"
잔뜩 잔소리를 쏟아내며 청소를 했던 기억이 난다. OO치킨의 소행이 아닌 것처럼 멀리 튄 흔적까지 닦아댔다.
얼마 전까지 내게 치킨집 장사에 대한 기억은 바로 그 치우다 만 현장 같았다.
급하게 가게를 넘기면서 3년간의 기억을 대충 뭉개 놓았었다. 누가 물어보면 힘들었다고, 인생 최악의 악몽 같은 기억이었다고 치를 떨었다. 가게를 오가며 울었던 기억밖에 없으며 다시는 장사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손도 대기 싫어서 꼼꼼히 닦아 버리지도 않은 채 방치해 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내 인생에 없던 일이 될 줄 알았다. 나와 치킨집은 전혀 연상이 되지 않을 만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 현장을 끄집어내서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전쟁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용담을 떠들듯이. 하나씩 꺼내며 얘기하다 보니 그 3년은 내 인생 최고의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는 말로는 부족한 3년. 나를 한 뼘만큼 성장시켰다고 하기에는 엄청나게 몰아쳤던 3년.
이문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남겼다고 하기에는 한때 장사를 했던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좋은 추억이 많았다기에는 아픈 기억이 많고, 힘들었다고 하기에는 웃고 떠든 기억이 많다.
특별한 경험을 오지게 하느라 당시에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지만 이렇게 글로 남기고 보니 제법 괜찮은 경험이었다. 대충 치워놨던 기억을 말끔히 정리하고 보니, 첫 장사의 마무리를 멋지게 한 것 같아 후련하다.
첫 장사가 치킨집이었는데 말이죠... 제목에서부터 냄새가 난다는 이웃 작가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말인데, 두 번째 장사는 말이죠...?
가게 오픈 즈음 초3이었던 큰아이가 써놓았던 편지를 마침 오늘 우연히 발견했다. 그렇게 찾아도 없더니...
새벽 1시가 넘어 퇴근했는데 현관앞에 놓여있었다. 이 편지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