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누구한테물려줄거야?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매장과 집까지는 차로 30분이었다.

아이들 혼자 가게에 찾아올 수 없었고 틈날 때마다 수시로 드나들 수도 없었다. 일부러 우리 동네가 아닌 판교에 매장을 낸 이유였다. 학원 갔다 집에 가는 길에 들르거나 가게 한 구석에서 밤늦게까지 자리 잡고 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와 남편이 교대해가며 수시로 집을 드나들었지만 그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다음날 학교 갈 준비도 해야 하고 뒹굴거리며 TV도 좀 보고 10시 전에 잠도 자야 하는 나이였다.


대신 휴일이면 가끔씩 엄마 아빠 출근길에 가게에 데리고 갔다. 한두 시간 오픈을 준비하는 동안 간단한 소일거리를 시키고 아르바이트 직원이 한 명 오면 그제야 아이들은 나와 함께 퇴근을 했다. 그마저도 자주 있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다 가게에 가게 되면 서로 열쇠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가게에 들어가는 기분이 꽤 좋았나 보다. 사장이 된 기분?

하루는 큰 아이가 열쇠를 돌리며 말했다.

"이 가게 누구한테 물려줄거야?"

"뭐라고?"

"이 가게 말이야~ 나랑 OO이 중에 누구한테 줄 거냐고~"

요놈 봐라? 벌써부터 유산상속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다니... 동생과 나눠먹을 지분을 두고 저울질을 하다니...

"글쎄? 공부 잘하고 매사에 뭐든 열심히 하는 놈한테 줘야지!"

'공부'에 방점을 찍은, 엄마다운 마무리였다.


상속 조건을 의식했는지 그날따라 아이들은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가며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난다. 정작 부모는 이 가게를 언제 어떻게 얼마에 넘길지를 상시 고민 중이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건물주도 아닌, 임차해서 영업하는 치킨집을 물려받아 뭘 어쩌겠다는 건지...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한 번쯤은 꿈꿔보는 치킨집 사장 말고 다른 꿈을 꿀 것이지...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시어머님은 아들의 경로 이탈을 심히 못마땅해하셨다.

"우리 집안에 장사가 웬 말이냐. 장사를 뭐 아무나 하는 건 줄 아냐?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이게 뭐냐? 난 아무한테도 창피해서 말 못 한다."

가게를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오셔서도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셨다. 한참 힘들던 시기라 시어머님 얼굴만 봤을 뿐인데도 눈물이 쏟아지던 며느리에게 도대체 왜 우냐며 다그치셨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속상한 마음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으셨다는 걸 안다.


우리 아이들이 서로 가게를 물려받겠다며 아옹다옹할 때 내 마음도 그랬다. 좀 더 그럴듯한 일을 할 것이지 치킨 장사가 웬 말인가 싶었던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머리로는 긍정하고 있었어도 가슴으로는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고, 번듯한 직장이나 전문직에 종사했으면 좋겠으며 추울 땐 따뜻한 곳에서, 더울 땐 시원한 곳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일할 때도 마음만 먹으면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꿈꾸었다. 몸보다는 머리 쓰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땀 흘린 노동의 대가로 푼돈을 벌기보다는 자본을 굴려 손쉽게 돈 버는 방법을 알기 희망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하는 치킨집 따위는 잊어버리기를 바랐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큰다던데, 튀김기 앞에서 밀가루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치킨을 튀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빨리 장사를 접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는 손쉽게 돈 버는 방법을 모르는 부모다. 장사를 접고 다시 외벌이로 돌아가 남편의 어깨에 세명이 주렁주렁 매달린 채 살아가고 있다. 주식이나 코인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 후 독서실로 가서 자격증 공부를 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낄까. 겨우 백만 원정도 벌면서 아이들 가르친다고 식탁에 앉아 책만 읽고 있는 엄마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치킨집을 하던 때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길까?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들 산다!'라는 생각만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돈 버는 재주는 없지만 삶을 살아내는 재주, 버티는 재주는 있는 부모로 보였으면 좋겠다. 물론, 이 부분에서는 남편과 나의 의견이 많이 갈리겠다. 남편은, 아들을 재벌 2세로 만들어주기 위해 재벌 1세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현실적이지 못한 나란 사람은... 가끔 가는 동네 치킨집 한구석에 엄마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며 문제집을 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10년 전의 내 새끼들이 생각나 울적해진다. 취한건지 어쩐건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머니 속 단돈 몇천 원이라도 쥐어주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대책 없는 사람이다. 당장 내 살림의 빵구를 걱정해야 하는데 순간 차오르는 감정에 충실한 사람.


아이들에게 물려줄 치킨집은 없어진 지 오래다.

엄마 아빠가 죽거들랑 상속을 포기하는 게 너희들에게 더 득일 거라고 얘기하며 넷이서 한바탕 웃어대기도 한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농담이나 던지는 한심한 엄마다.

그래도, 그것만큼은 물려받기를 바란다.

힘들어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

그 힘든걸 유머로 승화시키는 마음의 여유.

나 힘들다고 다른 사람 특히 바로 옆에 있는 사람 힘든 거 나몰라라 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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