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갓물주가되는 법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장사를 하면서 어김없이 돌아오던 그 날. 카드 결제일, 주류 결제일, 공과금 결제일보다도 더 가슴이 콱 막혀오던 날. 월세 입금날이었다. 각 240만 원과 210만 원짜리 상가를 임대했는데 부가세까지 포함해 500 가까운 금액을 매달 같은 날 준비하는 것은 피 말리는 일이었다. 미리미리 매출에서 떼어 준비해놓으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매일 나가는 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12시를 넘기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본사 사이트에 들어가 다음날 필요한 재료들을 발주하는 것이었다. 닭부터 시작해서 파우더, 골뱅이 소스, 치킨 양념, 치킨 무등을 매일매일 주문하려면 그만큼의 돈이 필요했다. 선입금되어있지 않으면 발주를 아예 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재료를 주문하지 못하면 다음날 장사를 할 수 없으니 돈이 없으면 빚이라도 내서 발주를 해야 했다.


돈이 조금 모이는가 싶으면 주류업체 사장님이 결제하러 찾아오셨고, 잔고가 쌓인다 싶으면 튀김기름 결제 고지서가 카운터에 올려져 있었다. 주급으로 결제해주는 직원들 아르바이트비도 제때제때 입금해줘야 했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 생활비도 필요했다. 2013년 기준 서울 거주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가 314만 원이었다. 그것보다 더 쓰면 더 썼지 덜 쓰지는 않았던 내 씀씀이로 추측컨데 400만 원은 필요했을 테다. 그러니 매달 어김없이 다가오는 월세 날은 공포였다.


하루 이틀 밀린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어찌 됐든 해결을 해냈다. 빚을 내든 영끌을 하든...

임대 2년째에 재계약을 할 때 임대료 조정을 부탁드렸지만 임대주 두 분 모두 얄짤 없으셨다. 당신들도 대출금을 갚아나가려면 여유가 없다고 하셨다. 판교 원주민으로 평생 농사짓는 것밖에 몰랐던 그분들은 하나에 7억씩 하는 상가 몇 개를 소유한 임대주였어도 여전히 판교 외곽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평생 하던 루틴대로 새벽 일찍 집을 나서서 종일 농사일을 하는 건물주. 게다가 그들은, 재계약을 위해 만난 식당에서 "저희가 대접해야죠~"라며 계산을 하는 젊은 부부를 말리지 않았다. 괜한 돈은 절대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듯, 헛기침을 하며 샤부샤부를 맛있게 드셨다.


어쩌면 건물주가 되는 방법은 그런 우직함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언뜻 했다. 가게를 잘 운영해서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웃돈을 받고 넘기려는 마음을 가진 나는, 쓸데없이 나서서 건물주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고 호들갑 떠는 나는, 절대 건물주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자리에서 한 가지 음식을 수십 년 우직하게 만들어낸 'OOO 할머니 순댓국', 'OOO설렁탕'등의 장사꾼들은 결국 건물주가 되지 않던가. 손님에게는 인심을 베풀어도 괜한 곳에는 십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던가...


세상이 달라져서 폭등하는 코인 가격에 말도 안 되는 이윤을 남겨 건물주가 되는 방법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또 반대로 하루아침에 말도 안 되는 손해만을 남기기도 하는 게 요즘 자본의 생리다. 그러니 흐름에 올라타 부릴 재주 따위는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매일 셔터를 올리고 닭을 튀기고 손님을 맞이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허튼 돈, 새어 나가는 돈을 온몸으로 막아가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손님과 닭만을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직까지 묵묵히 닭을 튀겼더라면 건물주 근처까지는 갔을까... 용인에서 판교로 이사를 가진 않았을까... 치킨집 서너 개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만의 치킨 브랜드를 만들어 전국에 수백 개의 지점이 생기진 않았을까...


잘 버텨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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