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동업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치킨가게 복기록
불문율이다.
사업을 할 때 동업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
같은 종류의 일을 함께 하는 것이 동업이라고 한다. 한 명은 자금을 대고 한 명은 실무를 보는 경우도 동업이라 부른다. 그게 어떤 경우든, 동업은 힘들다고 하나같이 뜯어말린다. 피치 못해 동업을 한다면 사전에 계약서를 철저히 써놓아라, 서로 소통을 열심히 하라는 등의 조언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러 이유로 동업을 하고 결국 대부분이 갈라선다.
남편과 3년간 동업을 했다.
부부가 함께 일한걸 뭐 동업이라고 얘기할까 싶겠지만, 결국은 그게 동업이었고 어쩌면 동업보다도 더 힘든 조건으로 묶인 관계였다. 자본금은 공동자금이라 나중에 나누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우리 부부의 경우 자본금은 함께 받은 대출이니 공동책임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동업계약서를 쓸리는 만무했고 근무시간에 대해 명확히 세워놓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부부이자 부모였던 관계에 '직장동료'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해졌을 뿐이었지만 그로 인해 기존의 관계마저 위협받을 줄은 몰랐다. 별일 없을 거라 여겼지만 바닥, 지옥, 막장 그 어디쯤을 맛보았다. 다행히 갈라서지는 않았지만...
처음엔 괜찮았다.
남편은 회사, 나는 육아와 가사라는 각자의 영역으로 나뉘었던, 한때는 연인이었던 우리가 집이 아닌 장소에서 함께 한다는 것, '일'이라는 걸 함께 해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임이 분명했다. 서로를 '사장니~임'이라고 부르는 약간의 판타지도 즐겼고 가정사 외의 일을 위해 머리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도 싫지 않았다. 간혹 의견 충돌이 일기는 했지만 둘 모두에게 처음인 장사 앞이라 이내 둘 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친 우리는 여느 동업자들처럼 제 몫을 챙기기 시작했다. 챙길 돈은 없었으니 남은 것은 노력과 시간이었다. 상대보다 덜 노력하고 덜 시간을 쓰는 꼼수를 부리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보다 당신이 더 애쓰고 있고 더 많은 시간을 공들이고 있구나'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가 더 힘들거든?"이라는 표현으로 서로를 들이받았던 어느 날인가, 벼랑 끝에 걸린 서로를 확인해야 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마감 때가 다 돼서야 가게에 들렀던 날이었다. 평소보다 늦게 가게에 갔던 걸로 기억한다. 홀에 손님은 거의 없었지만 주방은 분주했다. 잔뜩 밀린 설거지를 보니 한바탕 손님이 휩쓸고 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날따라 주방 실장님도 없었고 남편 혼자서 주방을 봤다. 아르바이트 직원도 몇 명 없었지만 크게 바쁘지 않을 것 같아 염려하지 않았던 날이었다.
싸해진 남편의 공기를 감지했지만 그날은 남편의 공을 치하해주거나 수고했다고 엉덩이를 두드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나 역시 가게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생활에 지쳐있었고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일상을 지켜주느라 남편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상황 종료되니까 오는구만?"
"많이 바빴구나? 나는 뭐 놀다 왔나?"
"나는 놀았어? 얼마나 바빴는지 알기나 해?"
"나 혼자서도 그렇게 바쁠 때 많아!"
"당신은 아주 한마디를 안 지는구나?"
"내가, 당신한테 져줘야 하는 사람이야?"
"뭐야? 이럴 거면 이혼해!"
"그래! 이혼해!"
그렇게 살벌한 다툼 이후로 남편은 하루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와 문자를 씹었으며 다음날 밤에도 만취해 들어왔다. 얘기 좀 하자는 나의 말에도 등을 돌린 그를 보며 나 역시 이혼 결심을 굳혔다. 싸운 지 이틀째 되던 날 동생 아이의 돌잔치가 있었지만 아이들만 데리고 가는 것으로 나의 결심을 알렸다. 그의 부재를 물어오는 가족들의 질문에 아파서 못 왔다고 한껏 괜찮은 척 연기를 했지만, 돌잔치에서 상영된 아이의 성장 스토리 영상을 보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아마도 '우리도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으며 두 아이를 키우며 말도 못 할 행복을 느꼈던 시절이 분명 있는데, 어쩌다 오늘을 맞이한 걸까.'를 생각했을 테다.
어떻게 화해를 했고 이혼 위기를 넘겼는지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자기 쇠뇌하듯 읊조렸다. '저 사람도 힘들지. 다 힘들지. 나만 힘든 게 아니지...'
동시에 이런 다짐도 했다.
'이 장사가 끝나고 나면, 남편과 다시는 함께 일하지 않으리라!'
이런 내 마음을 전달받지 못한 건지, 세월이 지나 조금은 희석됐다고 느끼는 건지, 남편은 여전히 언젠가 하게 될 '우리'의 사업 아이템을 상의하곤 한다. 메뉴 구상을 함께 하기도 하고 좋은 자리를 보러 가자며 손을 잡고 이끈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장사를 하게 된다면 더없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보다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으며 측은지심의 크기도 커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어딘가에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동업을 해나가는 부부가 있을 것이다. 미흡하고 미성숙했던 나의 경험과 느낌을 기본값으로 정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요 그들의 성공과 순수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부부의 동업은 서로를 위해 피해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아침에 헤어졌다가 저녁에 만나는 남편의 얼굴에는 내가 예측하고 상상할 수 없는 하루의 고단함이 묻어있어 함부로 나의 그것과 비교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집과 직장의 삶을 온전히 공유하는 부부가 되면 '아는 게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분명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결과 강도가 다를 텐데, 24시간을 공유하다 보면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각자의 고달픔을 양팔저울에 올려놓고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착각. 문제는 그 양팔저울이 늘 내쪽으로만 기울어지게 돼있다는 것이다. 늘 손해만 보는 것 같은 내가 한없이 딱해지고 억울해지고 결국 상대가 미워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최악의 상황에 내던져지지 않는 최선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