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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02. 2022

(외전)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2월 1주 설날 특집
[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어 주세요.


<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 후 >

* 이 글은 옥희 특유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_bWx5n0n8Y&t=294s


안녕하세여? 옥희예요.

네, 맞아요~ <사랑 손님과 어머니> 이야기의 그 여섯 살 난 옥희요. 지금은 일곱 살이라우. 오늘은 특별한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해요. < 사랑 손님과 어머니, 그 후 이야기 >랄까요?


사랑방 아저씨가 떠나고 나서 엄마는 풍금 뚜껑도 걸어 잠그고 아저씨가 줬던 꽃도 내다 버렸어요. 사실은 내가 유치원에서 훔쳐온 것이지마는, 엄마는 아저씨가 준 꽃인 줄 알고 그렇게 성을 내지 뭐유? 맨날 골이 나서는 웃지도 않았지요. 아저씨가 있을 땐 매일 삶던 달걀을 사지도 않았어요. 달걀 장수만 나타났다 하면 눈을 흘기고 문을 잠갔지요. 참 이상하죠? 달걀 장수 때문에 아저씨가 떠난 것도 아니잖아요?

어쨌든 그날부터 잔뜩 성이나 보였던 엄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요. 유명한 의사 선생님도 오시고 외할머니가 약도 지어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엄마는 나한테 그림책도 못 읽어주고 매일 누워만 있었지요. 열이 펄펄 끓던 어느 날, 식구들이 모두 한 숨도 못 자고 엄마 옆에 있었어요. 나도 자다 깨다 하면서 엄마 옆에 누워있었는데 외할머니랑 외삼촌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잠결이어서 잘 못 들었지만 사랑방 아저씨 얘기를 하는 것 같았지요? 외삼촌은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길을 나섰어요. 친구인 사랑방 아저씨를 만나러 간다구요. 그리고 며칠 후에 외삼촌은 사랑방 아저씨를 데리고 나타났지 뭐예요? 아저씨는 반가워하는 나를 보지도 않고 엄마가 누워있는 방으로 뛰어들어갔어요. 피... 아저씨는 옥희가 보고 싶지도 않았나 봐요.


아무튼, 엄마는 언제 그랬냐 싶게 병이 나았어요. 아저씨는 다시 사랑방에 짐을 풀었구요. 엄마 심부름으로 아저씨에게 삶은 달걀을 가져갔다가 아저씨한테 물었지요.

"아저씨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았수?"

"무슨, 아저씨도 옥희 많이 보고 싶었지?"

"그런데 어쩜 연락 한번 안 했다우?"

"그건..."

"또 떠날거우?"

"아니, 이제는 떠나지 않지. 옥희랑 오래오래 여기서 살 거지."

"참말이우? 아이 좋아라~"

"그런데, 옥희는 친구 없나?"

"친구 없어여. 엄마가 유치원 끝나면 바로 집에 데리고 오니 친구 사귈 새가 어디 있겠어요?"

"저런... 친구 사귀면 뭘 제일 하고 싶니?"

"친구 사귀면 같이 풍금 치고 싶어요. 엄마가 가르쳐준댔는데 아저씨 간 후로는 풍금을 열쇠로 잠갔지 뭐유?"

"저런... 아저씨가 친구 만들어줄까?"

"좋구말구요~ 언제요? 어디 있는데요?"

"조금만 기다려~ 곧 만나게 해 줄게~"


아저씨는 친구를 데려 온다고 다시 떠나더니 한참만에 돌아왔어요. 이사라도 온 것처럼 짐을 잔뜩 싣고 왔고 제 또래의 여자아이도 데리고 왔지 뭐예요?

"엄마엄마~ 아저씨가 왔어~ 그런데 어떤 여자애도 데리고 왔어~"

대문 밖에서 아저씨를 보자마자 나는 엄마한테 뛰어가 숨도 안 쉬고 말했어요. 엄마는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을 하고는 좋아 어쩔 줄 모르더라구요?

"옥희야. 엄마 말 잘 들어?"

"응, 엄마."

"옥희... 아빠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

"그랬지? 옛날에 내가 여섯 살 때, 사랑방에 아저씨가 처음 왔을 때 그랬지?"

"엄마는 옥희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던 것도 기억나니?"
"나지? 엄마가 밤마다 울면서 그랬잖우. 엄마는 옥희만 있으면 된다구."

"그런데, 엄마가 너무 엄마 생각만 했나 봐. 옥희한테는 아빠도 필요하고 자매도 필요한데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 아저씨가 옥희 아빠가 되어주면 어떨까? 아저씨한테는 너만한 딸도 있으니 옥희한테 자매도 생기고. 옥희도 좋지?"

이때부터 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엄마가 갑자기 미워졌어요. 아빠는 무슨 소리며 자매는 또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이유 없이 눈물만 흐르고 엄마가 낯설게 느껴졌어요.


그날 이후로 사랑방에는 아저씨랑 어떤 계집아이가 같이 살게 됐어요. 외할머니랑 외삼촌은 엄마랑 아저씨의 혼례 어쩌구 하면서 바쁘고 엄마랑 아저씨도 뭐가 그리 좋은지 매일 대청마루에 앉아 싱글벙글인거예요. 사랑방에 있는 여자애는 일부러 못 본 체했지요. 일곱 살에 갑자기 자매가 생길게 뭐예요?

엄마는 혼례를 앞두고 나랑 그 계집아이 준다고 예쁜 한복 두벌을 준비해놓고는 내 몸에 대보며 신이 났어요.

"우리 옥희는 어떤 게 어울릴까? 얼굴이 뽀야니 흰색 저고리에 연분홍치마도 어울릴 것 같고, 색동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어도 예쁠 것 같은데?"

한복이고 뭐고 혼자 있고 싶었어요. 그때, 여섯 살 때 숨었던 벽장이 생각났지요? 숨어 있다가 잠이 들어 식구들 모두 날 찾는다고 혼비백산했던 때가 생각나 웃음이 났어요. 나를 찾고 엉엉 울던 엄마가 "엄마는 옥희만 있으면 돼~"하던 말도 생각났구요. 그래서 식구들 몰래 또 벽장에 들어가 앉았지요. 그러다 또 잠이 들었구요.


얼마나 지났을까, 깨어보니 캄캄한 밤이었어요. 밖에서는 옥희 어디 갔는지 봤냐며 다급한 식구들 소리가 들렸지요. 통쾌한 마음에 씩 웃다가 깜짝 놀랐어요. 어둑한 벽장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거든요. 손 닿으면 닿을 거리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리더니 누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게 아니겠어요?

"네가 옥희구나? 안녕? 난 독희야."

"아이구 깜짝이야! 독희? 사랑방 아저씨 딸?"

"응. 여기 온 지 한참 됐는데 처음 얘기해보는구나."

"그거야...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넌 내가 싫지? 우리 아빠도?"

"싫은 건 아니야. 그냥..."

우린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러다 독희가 다시 나에게 물었죠.

"너, 삶은 달걀 좋아한다며? 우리 아빠가 그러더라."

"비싸서 엄마가 자주 안 해주는데, 너희 아빠가 오신 이후로 매일 먹어 좋았지."

"우리 아빠는 삶은 달걀 안 좋아해."

"뭐? 그럴 리가 없는데? 아저씨도 잘 드시던데?"

"옛날에 크게 체한 적이 있어서 못 먹어. 그런데 너희 엄마가 매일 삶아주시니 안 먹을 수가 없었대."

"아..."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대. 나는 한 번도 엄마가 있었던 적이 없어."

"우리 아빠두. 나도 아빠 얼굴은 사진에서만 봤고 엄마한테 얘기만 들었지."

"옥희야! 엄마가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엄마가 있다는 건, 늘 따뜻하지. 하지만 가끔 엄마의 슬픈 얼굴을 볼 때도 있어. 나만 있으면 된다고 하면서 나를 보는 눈이 나를 지나 딴 곳을 보는 것 같아. 아빠는? 아빠가 있으면 어때?"

"아빠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날 버려도 마지막까지 남아 날 좋아해 줄 사람 같아. 아빠랑 있으면 어떤 것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무 걱정이 없지. 그런데, 나는 아빠한테 그런 사람이 못 되는 것 같아. 우리 아빠도 가끔 멍한 눈으로 하늘을 볼 때가 있거든."

"난, 우리 엄마랑 사랑방 아저씨, 그러니까 너희 아빠가 결혼을 한다는 게 상상이 안가. 그만큼 서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우리 아빠랑 너희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사이래.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지만 둘 다 우연히 남편과 아내가 먼저 죽고 나서 서로를 많이 그리워했대."

"그래? 처음 듣는 얘기야."

"너희 엄마한테 풍금을 가르쳐준 것도 우리 아빠라지 아마?"

"뭐? 풍금을 너희 아빠가 가르쳐준 거라고?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는 풍금을 치지 않던 엄마가 다시 치기 시작한 게 그럼, 그래서였던거야? 너희 아빠 들으라고?"

"그럴지도?"

"아빠가 알면 속상할 것 같은데?"

"돌아가신 우리 엄마랑 너희 아빠도 다 이해해주지 않을까? 한번 결혼했던 사람이라고 평생 혼자 사는 건 너무하잖아. 우리에게도 엄마 아빠가 생기니 좋은 거고."

"독희 너는 어떻게 이 결혼을 반갑게 생각할 수 있어?"

"아빠가 행복해하니까. 우리 아빠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걸 본 적이 없어. 나를 보면서 기뻐하는 거랑은 다르다는 걸 느꼈거든. 나는 아빠한테 나 말고도 행복한 이유가 많아졌으면 좋겠어."


독희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이 많아졌어요. 나도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결혼이라니. 하지만 독희의 말을 들으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한 거지 뭐예요?

독희와 손을 잡고 벽장에서 나오니 엄마랑 아저씨가 엉엉 울며 우리 둘을 안아줬어요. 그렇게 우리 넷이 부둥켜안고 있으니 기분이 참 이상하대요?



오늘, 드디어 엄마와 사랑방 아저씨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에요.

재혼이지만 조용히 몰래 하지는 않기로 했대요. 여자가 재혼하면 화냥년이라고 놀린다는데, 엄마는 그게 무섭지 않대요. 남자만 재혼하는 건 옳지 않다나요? 그래서 처음 결혼할 때보다 더 시끄럽고 화려하게 할 거래요. 나랑 독희는 화동을 하기로 했어요. 예쁜 한복을 나눠 입고 꽃핀도 꼽고 청사초롱도 들었어요. 결혼식에 신랑신부의 딸들이 화동을 하다니요. 참 신기하지 뭐예요? 온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려고 다 모였다지요 아마? 태어나서 이렇게 시끌벅적한 잔치는 처음 봤어요.


"옥희야~ 독희야~ 어서 와~ 엄마 아빠랑 같이 사진 찍자~"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됐고 넷이 함께 가족사진이라는 걸 찍었어요.

"자, 여기 보세요~~ 신랑 얼굴을 조금 오른쪽으로, 그렇죠. 신부는 신랑 쪽으로 몸 기울이고, 아주 좋아요~~ 옥희랑 독희도 손잡고 이쁘게~~ 참 보기 좋습니다. 자 찍습니다~~ 다들 준비되셨죠?"

우리 넷은 합창을 했어요.

"네~~ 오키도키~~~"


* 원작에 나온 문장을 따라하느라 맞춤법에 어긋난 부분들이 있습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원작이 가물가물하신 분들을 위해 원작을 첨부합니다.


* 보글보글 매거진의 이전 글, 최형식 작가님의 동화 < 색동옷 > 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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