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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Feb 04. 2022

15년 뒤 주례사를 다시 본다면

화동을 따라가는 길

보글보글 매거진
2월 1주 설날 특집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결혼- 화동을 따라가는 길>


사진 속 예쁜 아이 둘이 화동으로 카펫 위에 서있습니다. 신랑 신부인 누군가의 결혼을 축하하는 날인 것 같습니다.

꽃 화(花), 아이 동(童)인 화동은 로마제국 때 신랑 신부를 위해 아이가 번영을 상징하는 '칼'을 차고 걸었던 유래가 있었다고 하네요. 르네상스 시대에는 '마늘'을 들고 불운과 악귀를 막으려 했고, 현대에는 남자아이는 결혼반지를 전하는 임무, 또 여자아이는 꽃을 전하며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역할을 화동이 맡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에서는 조선 후기부터 홍사 바탕에 청사로 단을 둘러 만든 청사초롱을 혼례에 사용했습니다. 음양의 화합을 상징하는 실의 조합이라니, 다른 나라의 화동이 들고 걷는 칼이나 마늘, 반지와 다르게 우리나라는 결혼에서 특히 부부의 조화에 더 뜻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음이의어로 화동(和同)도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가 멀어졌다가 다시 뜻이 잘 맞게 된다는 화동이라는 말도 결혼에 어울리는군요. 화동을 떠올리며 사진을 다시 보았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다른 쪽을 보고 있네요? 그리고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쌍둥이같이 비슷한 키에 같은 나이일 듯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이번 보글보글 주제 사진을 받아 들고 저는 결혼을 떠올리고 화동을 떠올렸습니다. 동화를 쓸까? 사라진 신랑 신부에 대한 추리소설을 써볼까? 하며 두리번거리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거꾸로 봅니다. 결혼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왔다 갔다 하는 자신을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화동인 사진 속 두 아이는 마치 내 안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나'라는 한 사람 안에도 여러 색을 담고 있는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뇌도 좌뇌 우뇌로 나누어져 서로 다른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순간 둘은 하나로 움직이며 해야 할 복잡한 기능을 척척 수행합니다. 제가 쓴 책 <좌뇌 우뇌 밸런스 육아>에 저를 '좌뇌형 전직 승무원 엄마'로  남편을 '우뇌형 작곡가 아빠'로 상징적인 표현을 썼습니다만, 실제 우리의 뇌는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누듯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뇌는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고 움직이는 '' 살게 합니다. 결혼 전의 나라는 사람과 15 뒤의 나는 분명히 다릅니다. 결혼을 기점으로 다른 나로 살게 됩니다.  선택이 오로지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결혼식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는 동안 삶에서 수없이 많은 판단이 거듭되었습니다. 또 외부의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고 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듯 허무함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상대로 채우려고 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며 오히려 그를 비난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가끔 내 안에 갈라져 있는 분리된 자아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불안한 자신을 보게 되고, 쉽게 자기 비난에 빠지기도 했던 시간을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꼈습니다. 저는 글을 읽고 쓰면서 저를 새로 알아가면서 그 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힘든 순간 결혼식 때의 주례사를 꺼내 읽어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가 아닌 우리 부부에게 해주고자 한 그 말씀을 꼬깃한 편지를 다시 꺼내 읽듯 되새겨 보고 나면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는 동안 그저 관계를 맺는 차원에서의 '만남'이 아닌 '결혼'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혼은 그저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빈 곳을 퍼즐처럼 맞춰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 관계를 뛰어넘어 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끝끝내 완벽한 퍼즐로 맞춰질 수 없는 존재가 되는 일입니다. 완성된 퍼즐이 되지 않아도 더 사랑하며 평생 맞추어 가는 것이 결혼일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조화롭게 섞여 부부로 살기 위해 모두의 앞에서 약속하는 길을 걷습니다.

그 길을 화동이 앞장을 섭니다. 실제로 화동은 결혼식의 작은 볼거리이기도 하지요. 청사초롱을 든 아이가 설사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거나 제각각 따로 출발하더라도 괜찮습니다. 하객들에게는 오히려 즐거움이 됩니다. 하지만 두려움에 망설이는 어린 화동들의 예상치 못한 걸음 뒤를 신랑 신부는 따라가야 합니다. 결혼식처럼 인생이 그러하니까요.


그들은 화동들처럼 떨릴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생각했던 미래가 펼쳐질지 아닐지 알 수 없을 그 길의 첫발을 걷는 것이니까요. 아니면 장밋빛 미래만 꿈꾸며 고통은 나에게 오지 않기만을 고집스레 믿고 걸을 수도 있습니다. 화동들의 짐작할 수 없는 걸음처럼 인생의 어려움에도 웃으며 넘기라고 청사초롱은 부부의 길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결혼식의 주례사를 들으며 두 사람은 평생 다짐하게 되겠지요.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요.


나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화동의 뒤를 따릅니다. 먼저 나의 걸음을 알고, 상대와의 속도를 맞추어 그 빛나는 꽃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결혼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결혼식 주례사를 기억하시나요?


브런치 글 덕분에 오랜만에 저의 결혼식 때의 주례사를 읽어봅니다. 남편이 존경하는 김창완 선생님께서 주례를 맡아주셨던 결혼식은 저희 부부에게 큰 영광이었습니다.

방송국에 대책 없이 커피를 사 갔던 스토리에 주례사 중 하객들이 박장대소했던 기억과 부끄러웠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른 결혼식과 다르게 주례사가 더 더 길었으면 했다고 하객들이 말씀하시던 결혼식이었지요.


저에게는 너무나 정신없던 날이었지만 홈페이지에 주례사를 정리해 올려두신 김창완 선생님 덕분에 결혼식이 끝나고도 그날의 설렘과 행복을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소중한 결혼식 주례사를 평생 안고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렇게 고난과 슬픔도 사랑으로 이겨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뻔한 부부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파고 또 파도 모르는 그 사람을 발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깊은 속마음을 보여주고 찾아보고 백 년의 그리움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주례사를 되새기며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주례사를 올립니다.

김창완 선생님의 주례사처럼 앞으로도 더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주례사는 어떠셨나요?





<주례사> 김창완


이제 완연한 가을이지요.

며칠 전 주례사를 정리하려고 와인을 한잔 시켜놓고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밤바람이 제법 차더군요.

이렇게 또 한 계절이 갔구나 하는 생각에 쓸쓸한 기분마저 들더라고요.

그때 바람처럼 음악이 스며들었습니다.

러시아 민요풍의 연주곡인데 피아노 반주 위로 아코디언이 피어났다 수그러들었다 하는 거예요.

어느 대목에선 서로 신이 나서 까불다가

또 어느새 쓸쓸한 곡조로 바뀌고 하더라고요.

문득 저게 결혼이구나 싶었습니다.

언제는 숨 가쁘게 기쁘기도 하다 때론 우울이 생활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그 사람이 나로 인해서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있어요 그 사람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걸 생각하는 것은 힘을 테스트하는 일이고 그 사람을 위해 어떤 고통을 참을 수 있는가 하는 걸 생각하는 것은 사랑을 테스트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결혼은 사랑에 의한 일이며 사랑을 위한 일이며 사랑에 관한 그 모든 것입니다. 거창한 얘기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지찬 군에게 사랑은 차영경 양이고 차영경의 사랑은 정지찬입니다.

이솝우화 중에 자기를 빼고 머릿수를 세는 아기돼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슷하게 우리는 사랑처럼 중요한 얘기를 할 때 본인을 빼고 얘기하곤 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아니고 우리가 지켜야 할 성채도 아닙니다.

사랑은 바로 나고 사랑이 바로 당신입니다.

오늘 정지찬의 사랑은 면사포를 쓰고 옆에 서 있습니다.

오늘 차영경의 사랑은 멋진 수트를 입고 옆에 서 있습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닙니다.

이제 두 분 앞에 사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만져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피곤에 지쳐 잠든 아내의 어깨에서 사랑을 볼 것입니다.

콩나물국을 끓여놓고 부엌에서 멋쩍게 웃는 남편의 그 미소가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벗어던진 신발들이 현관을 사랑으로 가득 채웁니다.

두 사람은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합니다.

나아가 더 사랑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흔히 드라마나 그 밖의 이야기 속에서 결혼생활을 뻔한 걸로 그립니다.

그저 지지고 볶는 그저 그런 일상으로 그립니다.

그러나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꼭 그렇진 않습니다.

제가 방금 더 사랑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두 사람은 어리둥절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더 사랑하나 하고요.

사실 어리둥절해하는 게 맞습니다.


지난 목요일 두 사람이 느닷없이 방송국으로 찾아왔습니다.

라디오 스텝들 것까지 커피를 잔뜩 사 가지고 왔어요

이제 곧 녹음 마치고 밥 먹으러 내려가야 하는데 커피를 갖다 엥겼으니 그걸 어떻게 다 마시겠어요 그냥 대충 먹는 시늉만 하고 내려가면서 참으로 대책 없는 마음 씀씀이구나 했습니다.

마음을 전하고는 싶은데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던 거지요.


부부로 산 다는 게 그런 겁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걸 뻔히 아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알고 싶어 하는 것,

아직은 그 사람을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걸 알고 싶어 하는 것,

그게 진짜 부부의 사랑법 일지도 모릅니다.

뻔한 부부가 되지 마세요,

척 하면 착 아는 부부놀이 하지 마세요,

파고 또 파도 모르는 그 사람을 발견해 보세요,

외치고 외쳐도 전해지지 않는 저 깊은 속 마음을 보여주세요

백 년이 가도 모르는 마음을 찾아가고 백 년이 가도 안 지워지는 그리움을 기다리세요


두 사람의 앞길의 고난과 슬픔마저도 아름답길 빕니다.......!


작 성 일 : 2007/09/19,




*사진; 픽사 베이


*보글보글 매거진의 이전 글, 송유정 작가님의 글입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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