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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23. 2022

(동화) 게임기 증발 사건의 전말

2월 4주
[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보셔요~~
< 박앤장 뮤직사무소 - 오방 블루스 >


"내 이름은 코난. 탐정이죠! 진실은 언제나 하나! 빠라빰빰~~ 빠라빰빰빰빰~ 빠라빠라빰빰빰 빰빰빰빰~"

"아니 현우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아빠 코트는 왜 입고 돌아다니는데~~ 아휴~ 저 질질 끌리는 것 봐~ 한 손에 돋보기는 왜 들고 있고, 알도 없는 안경은 왜 쓰고 있니?"

볼일을 보고 들어온 엄마는 거실 한가운데 서있는 현우의 행색을 보고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현우가 아빠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아니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두면 바닥까지 떨어지는 소매 때문에 양손 어정쩡하게 올리고 있고 한쪽 손에는 돋보기가 들려 있었다.

"엄마. 게임기가 사라졌어."

"게임기? 무슨 게임기? 지난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그 게임기?"

"응... 형아 것은 그대로 있는데 내 것만 없어졌어. 그래서 지금 찾고 있는 중이야."

"어디다 뒀는데? 넌 물건 잘 챙겨두잖아~ 어디다 잘 뒀겠지~"

"옷장 서랍에 잘 넣어두었는데 없어졌다니까?"

"형은? 형은 어디 갔는데?"

"형아는 친구랑 놀이터 간다고 나갔어."

"에휴. 동생 좀 보고 있으라니까, 그새 나갔어? 엄마랑 같이 찾아보자. 그 코트 좀 제발 벗고! 얼른 벗어! 어이구.. 이 질질 끌린 것 좀 봐!"


현우는 게임기를 옷 서랍장 안에 애지중지 보관하곤 했다.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가 형과 똑같이 주신 선물이 아니던가. 정해진 시간을 채워 놀고 나면 위에서 두 번째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현우 엄마는 그 서랍장부터 뒤졌다. 안에 있는 옷을 모두 꺼내 툭툭 털어가며 꼼꼼히 찾았다. 서랍 뒤로 떨어졌나 싶어 서랍을 몽땅 빼고 확인했고 서랍장을 앞으로 빼서 먼지가 가득한 뒷면도 확인했다. 침대 밑, 침대 매트리스와 프레임 사이, 장난감 상자까지 샅샅이 확인했다. 현우 방을 뒤집어 탈탈 털듯이 찾았지만 게임기는 보이지 않았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대체 어디다 둔 거야?"

"난 진짜 서랍장에 뒀다니까?"

현우와 현우 엄마는 거실, 안방, 부엌, 심지어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책장의 책을 모두 꺼내기도 했다. 혹시 책 사이에 끼었을지도 모른다는 현우의 추리 때문이었다. 놀러 나갔다 들어온 지우와 퇴근하고 온 아빠까지 온 가족이 총동원됐지만 게임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게임기 갖고 놀던 장면을 잘 기억해봐 현우야. 몇 시쯤 놀았어? 형이랑 둘이 게임했어? 다 놀고 어떻게 했어?"

"형아랑 둘이 있는데 형 친구 태호형이 놀러 왔고, 우리 셋이 돌아가면서 게임했어. 다 놀고 서랍장에 잘 두었고."

"그래? 혹시, 태호가 가져간 건 아닐까?"

"엄마! 지금 내 친구 의심하는 거야?"

"의심이라기보다는, 집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으니까..."

"그래 엄마. 설마 태호 형아가 그랬으려고. 내가 서랍에 잘 뒀는데 어떻게 그걸 꺼내갔겠어?"

하지만 엄마의 의심은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게임기가 발이 달렸을 리도 없고 코딱지만 한 집을 몇 번씩 찾아도 없다면 그건 분명 누군가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현우는 게임기가 사라져 속상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형 친구를 의심하는 건 싫었다. 태호형은 현우네 집에 하루가 멀다 하고 놀러 오는 지우형 친구였다.

'가끔 형아랑 말썽을 부리기는 하지만 나쁜 형은 아닌데... 정말 태호형일까? 하긴, 그 시간에 우리 집에 있다가 간 사람은 태호형뿐이니까.'

현우도 조금씩 엄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안 되겠어. 경비실 가서 CCTV라도 확인해야 속이 후련하겠어. 혹시 가져갔다면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꺼내보던가 하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을 거 아니야?"

현우와 지우가 말렸지만 엄마는 바로 경비실로 달려갔다.


경비실에 자초지종을 설명한 엄마는 경비아저씨와 함께 의심이 가는 시간대의 엘리베이터 CCTV를 돌려보았다. 하지만 화질도 좋지 않았을뿐더러 이상하게 태호의 모습은 CCTV에 잡히지 않았다. 분명 태호가 놀러 왔었고 20층인 현우네 집에서 자기 집으로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계단을 이용했다는 말인데,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엄마는 확신했다.

"아무래도 수상해..."

경비실에서 돌아온 엄마는 계속 태호를 의심했다.

"엄마, 그만해요. 진짜 희한한 일이고 좀 수상하긴 하지만 다짜고짜 태호에게 물을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서 태호 얼굴을 어떻게 봐요?"

지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았어. 엄마도 그만할게. 그런데 참 희한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게임기는 이후로도 나타나지 않았고 현우는 지우의 게임기를 빌려 쓰는 신세가 됐다. 형에게 아부도 떨고 가끔은 우는 시늉까지 하느라 치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게임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새것을 사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싼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쯤은 현우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서랍장을 열었던 현우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거짓말처럼 게임기가 놓여있던 것이다. 한 달 전에 감쪽같이 사라졌던 게임기, 매일 서랍을 몇 번이나 열었지만 한 번도 보이지 않던 그 게임기가 말이다. 마치 자기는 어디에도 간 적이 없는데 넌 왜 날 보지 못했냐는 듯 야속하게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찾았어! 내 게임기 찾았어~~~~~"

현우는 집이 떠나갈 듯 소리 질렀다. 엄마는 한달음에 뛰어와 서랍 안에 얌전히 있는 게임기와 놀란 현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엄마의 입은 동그랗게 벌어졌다.

"이게 무슨... 분명히 엄마가 옷까지 다 꺼내서 털어보고 다시 잘 개서 넣었는데?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걸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현우 너도 봤잖아. 진짜, 귀신이라도 있는 거야?"

"동수 짓이네~"

어느새 방문 앞에 나타난 아빠가 말했다.

"동수가 누구야, 아빠?" 지우가 물었다.

"개그 프로그램 '혼자가 아니야'라는 코너에서 상상의 친구로 나오는 동수 있잖아~ 우리 집에 동수가 사나 봐~"

"그러네. 동수 짓이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돼. 어린이 귀신인가 보다. 동수도 새로 나온 게임기가 너무 탐나서 딱 한 달 놀고 제자리에 갖다 놓았나 보네."

엄마의 말에 현우가 말했다.

"똘이라고 부르자. 똘아이 귀신이잖아. 왜 내 것만 가져가? 형 것도 있는데!"

"그래그래. 똘이라고 부르자. 똘이가 엄청 심심했나 보다."

가족들은 다시 찾은 게임기 때문에도 기뻤고 똘이라는 귀신 친구가 생긴 것도 신났다. 그날 이후로 집에서 없어지는 물건이 생길 때마다 가족 모두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똘이야~~ 빨랑 갖다 놔라~ 셋 셀 동안 안 갖다 놓으면 진짜 가만 안 놔둔다~"

신기하게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없어졌던 물건들이 다시 나타나고는 했다.

정말, 똘이의 짓이었을까?



* 에필로그

도난 사건 발생 당일.

현우와 지우, 지우 친구 태호는 셋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사이좋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태호가 현우의 게임기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을 때 현우가 말했다.

"형, 내 게임기 이제 그만 줘. 오늘 할 시간 다 끝났어. 다시 잘 보관해야 돼."

태호는 아쉬웠지만 게임기를 현우에게 순순히 내주었다.

"좋겠다. 나도 산타할아버지한테 게임기 선물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

태호의 실망한 모습을 본 지우는 속상했다. 그때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현우 몰래 현우의 게임기를 태호에게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초등학생도 아닌 현우가 너무 일찍부터 게임기에 빠진다고 걱정하던 엄마 아빠의 말도 떠올랐다. 엄마 아빠도 내심 잘된 일이라고 여길 것 같았다. 며칠만 태호에게 빌려줬다가 다시 돌려놓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지우는 현우가 TV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서랍장을 조심스럽게 열고 게임기를 꺼냈다. 그걸 점퍼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은 다음 현우 들으라고 크게 외쳤다.

"현우야~ 형 놀이터 다녀올게~ 태호야~ 나가자~"

왠지 엘리베이터에 타면 카메라에 찍힐 것 같다는 생각에 지우는 태호와 20층에서부터 계단으로 내려왔다. 그때까지 영문도 모르던 태호는 계단으로 내려가자는 지우에게 물었다.

"왜? 힘들게 왜 계단으로 내려가?"

"태호야. 내가 현우 게임기 몰래 갖고 나왔거든? 너 이 게임기 하고 싶지? 며칠만 실컷 놀고 다시 돌려줘~"

"뭐? 야! 네 동생이 찾으면 어쩌려고."

"내가 잘 둘러대 볼게. 며칠만이다?"

태호는 현우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새로 나온 게임기를 실컷 갖고 놀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며칠만 놀기로 한 것이 한 달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게임기 도난 사건의 똘이는, 지우였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음악만 듣고 글을 쓰는 이 작업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곡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를 열심히 수사하고 다니는 꼬마의 뒷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 레밍턴 스틸, 수사반장, 제시카의 추리극장까지 찾아봤지 뭡니까. 덕분에 추억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에필로그 전까지의 내용은 12년 전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달 만에 원래 그 자리에 나타난 게임기를 보고 온 식구가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 상황에 무섭기까지 했었죠.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재미있게 마무리하자는 생각에 동수라는 가공인물을 탄생시켰습니다. 친구도 없이 외로웠던 동수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지요. 아이들은 동수 대신 똘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이후로도 자동차 키나 아이들의 휴대폰, 장난감, 지갑 같은 것들이 없어지면 똘이에게 모두 덮어씌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을 다그칠 일도, 아이들의 친구를 의심할 일도 없었거든요.


그나저나, 요즘 똘이가 통 안 나타납니다. 어린이들이 있는 집에서만 장난을 일삼는 친구라 아이들이 다 커버린 우리 집에서는 더이상 재미가 없었던 걸까요? 간다는 인사도 없이 사라진 똘이. 지금쯤 어느 아이의 집에서 또 장난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 같은 에피소드를 다룬 과거 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 글, 최형식 작가님의 글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해주시면 됩니다.  


3월 1주 주제는 < 나는야 우리 동네 홍보대사 >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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