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여러분에게 숨겨왔던 진실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아주 단순한 이유입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발칙한 이유입니다. 이제 재미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속이는 것이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원래,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사람의 작품으로 1919년 발표되었습니다. 에밀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 신인에게 주어지는 문학상까지 수상했는데, 헤세의 문체인 것이 드러나는 바람에 상을 반려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지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를 재해석하고 재평가할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문장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진정한 '나'라는 것은 내가 부정하고 싶던 성질까지 모두 가진 존재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유명 작가'입니다. 다수의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으며 대부분의 작품이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중 몇몇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지요. 작가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늘 공허했지요. 소설을 쓰는 표면적 이유는 대중에게 공감을 일으킬만한 이야기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으나 궁극적인 이유는 저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소설을 통해 제가 갖고 있는 양면성을 발가벗겨 드러내고 그로 인해 자유로워질 거라 여겼지요. 하지만 인기 있는 소설가의 삶이란 그 길에서 점점 멀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점점 저를 이쁘게 포장하기에 급급해졌지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브런치였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의 이름을 빌어 자신을 찾고자 했던 시도를 저는 브런치에서 '늘봄 유정'의 이름으로 했던 것입니다. 브런치는 제게 <데미안>이었고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시도였습니다. 900여 일 동안 이웃 작가님들과 독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면서 자유로운 글쓰기를 했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유명 작가'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아마추어 작가, 브런치라는 공간 속에서만 누리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즐겼습니다. 그 소소함이 좋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국인은 한 명도 살지 않는 지중해 외딴섬의 작은 시장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로는 죄책감이 일기도 했지만 저만 아는 진실을 끌어안고 글을 쓰는 묘한 쾌감이 그것을 집어삼켰지요.
짧지 않았던 시간, 저만의 작은 모험을 이제 끝내려 합니다.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유명 작가'로 돌아가 집필활동을 이어가려 합니다. 이제 저는 이전의 저와는 다른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저를 찾았습니다. 제가 가진 선과 악, 바름과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용기와 두려움, 사랑과 증오. 그 모든 것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