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매거진을 끝마치며...

by 늘봄유정

"자식 걱정에 끝이 있나요. 제가 죽어야 끝나죠..."


두 아이의 입시가 모두 끝나서 후련하겠다, 이제 걱정할 게 뭐 있냐는 친한 지인들에게 저는 위와 같이 살벌하게 답합니다. 당황한 상대에게 더 냉소적으로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저 한 단계가 끝났을 뿐이라고 말이죠.

개관사정 (蓋棺事定). 쉽게 말해 '관뚜껑 덮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두 아이의 입시가 마무리됐다고 해서, 특히 작은 아이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해서 제 삶의 목표, 고민, 의미가 사라진 것은 아닐뿐더러 엄마인 저를 높이 평가하는 시선도 불편합니다. 전 그저 제 삶을 살았을 뿐인데 저의 모든 것이 자식의 입시결과와 결부되어 저울질되는 것이 힘들더군요.


둘째 아이의 합격발표 이후, 지인들에게 종종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를 묻더군요. 학원은 어디 다녔냐, 대치동은 안 갔냐, 선행은 얼마나 했냐... 학원 이름은 얼마든 알려주지만 그 학원이 본인 아이와 잘 맞는지는 모를 일이니 여러 군데 알아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대치동은 제시문 면접 특강만 4회 다녀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선행은 직전 학기만 했다고 말해줍니다. 수학 상하, I II를 언제 얼마만큼 했는지 물어오기 시작하면 말문이 막히고 그러면 상대는 답답하니 아들을 바꾸라고 합니다. 아들과 통화하면 그제야 궁금증이 해소됐다며 만족해하죠.


둘째 아이는, 서울대에 합격했습니다. 아이의 고등학교에서 수시로 합격한 최초의 학생이 되었지요. 동시에 OO고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모두 합격한 최초의 학생이기도 합니다. 정시(수능성적)로 합격한 것이 아니라 수시(학생부 + 성적)로 합격했다는 것은 이제 우리 학교도 경쟁력을 갖춘 학교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저희 아이의 학생부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같은 학교 학생의 생기부를 보면서 비교해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제 아이의 생기부를 보아도 잘 쓴 생기부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사, 촬영은 안되고 보여만 드리자는 아들의 동의하에, 원하는 후배 엄마들에게 학생부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열람만 가능하지만 후배 엄마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기준이 생겼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불합격생들은 학교가 생기부를 잘 못써준다는 불만을 토로했는데, 열심히 학교 생활하면 잘 써준다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결국 자식자랑을 하는 글이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학생부에 적혀있는 둘째 아이의 3년을 함께 훑어보면서 후배 엄마들이 질문을 퍼붓기 시작하면 저는 말문이 막힙니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해주라고 야무지게 말하고 싶은데 아는 게 없습니다. 인강은 어느 강사 걸 들었냐고 물으면 그제야 사이트에 들어가 아이가 어떤 수업을 수강했는지 살펴봅니다. 어떤 엄마들은 일타강사 이름을 줄줄 외우던데, 전 듣고도 까먹어 아이에게 전해주지도 못했던 엄마입니다.


난 도대체 이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고등학생 아들과의 마주이야기>와 <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을 썼습니다. 아이와 마주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아이의 성장과정을 돌아보며 행복한 마음을 장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행이나 발표의 아이디어를 나누었습니다. 투덜대고 힘들어하는 속마음을 들어주었고 해결책 대신 "어쩌냐..."라고 답했습니다. 고기를 열심히 구워주면서 코로나 3년 동안 집콕 생활에 동참했습니다. 제가 해준 것은 그게 다였습니다.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기.



휴가 나온 큰아들이 친구들과 놀고 새벽에 귀가했는데, 비어있는 작은 아들의 침대를 확인하고 황급히 전화를 했다고 하더군요. 친구들과 노느라 자기보다 늦게 귀가하는 동생을 챙기는 큰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정말 내가 할 일은 없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늦은 밤 엄마아빠를 앉혀놓고 자신의 고민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큰아들의 모습을 보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구나 싶습니다. 다만 이제는 부모와 자식, 한쪽이 일방적으로 챙겨줘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아직은 같은 가정에 머무는 반려인들로서 서로를 챙기고 이야기 나누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아들과의 마주이야기> 매거진은 여기서 끝내지만, 우리의 마주이야기는 쭉 계속됩니다. 우리네 삶처럼 말이죠.


* 지금까지 <고등학생 아들과의 마주이야기>를 읽고 공감해주시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아주셨던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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