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공부만 했구나?

by 늘봄유정

입시를 마친 아들은 요즘 한가한 듯 바쁩니다. 대학 입학 전 해둘 것들을 하나씩 하는 중이죠. 고등학교, 집, 학원 사이를 빙빙 돌던 생활에서 벗어나 사회로 한 발씩 내딛는 중입니다. 그래서 실수 연발입니다. 공부는 잘하는데 생활지능은 떨어진다는 엄마의 구박을 매일 받고 있습니다. 경험해본 적 없고 배우지 못했던 것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데 '이걸 모른다고?' 하게 되는 상황이, 귀엽습니다.


...

"엄마. 내 카드는 왜 유효기간이 넉 달밖에 안돼?"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낮에 만들어온 체크카드 유효기간이 왜 넉 달이야?"

"카드에 쓰여있는 유효기간이 4월 28일까지인데?"

"아... 그랬구나... 몰랐구나... 그래! 모를 수 있지. 그 숫자는 2028년 4월까지라는 뜻이야. 아직 5년이나 남은 거지."

오래된 통장을 새것으로 바꾸고 분실한 체크카드를 재발급받고 온 날, 아들의 천진한 질문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면, 알 기회가 없었다면 모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

운전면허를 따려는 아들과 면허시험장을 찾았습니다. 미리 신청해놓은 교육 시간 5분 전에 도착했으나 주차할 곳이 없어 아들을 먼저 내려주며 말했습니다.

"안내창구에 가서 바로 교육 들어가면 되는지 물어보고 교육받으러 들어가~"

곧이어 아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안내창구 대기번호가 300번이라 아무래도 물어보기 힘들다는 것이었지요. 그럴 리가 없다고, 대기표는 안내창구용이 아닐 거라고 했지만 아들은 난감해했습니다. 결국 교육시간을 넘겨버렸고 이틀 후 다시 가야 했습니다. 낯선 이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는 일이 아직은 힘들었나봅니다.

필기, 기능시험에 합격한 아들은 이제 도로주행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도로에 어떻게 차를 몰고 나가냐며 겁을 내며 말이죠.


...

어느 일요일 아침, 컴퓨터 속도가 너무 느려 램을 바꿔야겠다던 아들은 '나 홀로 용산행'을 떠났습니다. 태어나 한 번도 혼자 서울을 가본 적이 없던 녀석은 대중교통 어플을 깔고 티머니 금액을 충전하며 비장하게 나섰습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지만 저는 일부러 문자 한 통 하지 않았습니다. 4시간 반 뒤 아들은 '서울, 별거 아니네?' 하는 표정으로 개선장군처럼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먼 길을 혼자 다녀온 보람도 없이 램은 묘하게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작은 홈 하나의 위치가 달랐던 거죠.

"너, 기존에 있던 램 안 들고 갔어?"

"응? 아... 그거 들고 갔어야 했구나..."

"어쩔겨? 한 시라도 빨리 빠른 속도로 게임하고 싶어서 다녀온 거니까, 지금 빨리 다시 다녀와. 가게 문 닫기 전에."

매몰차게 밀어내는 엄마를 향해 아들은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촉촉하고 큰 눈망울로 저를 빤히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에 무장해제되었지요.

"왜? 뭐? 나? 나한테 지금 데려다 달라는 거야?"

결국 아들은 원래 있던 램을 들고 엄마차를 얻어 타 용산에 갔습니다.

용산에 도착한 아들은 잠시 주춤했습니다.

"왜?"

"다시 가서 교환해 달라고 말하기가 쫌..."

"교환하러 다시 왔는데 옆에 엄마가 서 있으면 더 찐따 같을걸? 혼자서 당당히 다녀와!"


등 떠밀려 혼자 다녀온 아들은 "단종된 모델인데 마침 중고가 있어서 그걸로 주겠대. 가격도 더 싸서 환불해 줬어. 집에 가서 혹시 문제 생기면 연락 달라고 명함도 주더라. 엄청 친절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고등학생 시절 이미 공원으로 산으로 당구장으로 한강으로 실컷 돌아다닌 큰아들에게는 가르칠 것이 없었습니다. 집 뒷산에 굴을 파서 소주를 숨겨가며 먹었다고 하니 말 다했죠. 좌충우돌하며 하나하나 스스로 깨우쳤을 겁니다. 반면, 고등학교 3년 내내 코로나로 운신의 폭이 제한되어있었으며 공부만 했던 작은아들은 아는 것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하나하나 스스로 깨우쳐나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고등학생 아들과 마주할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물가에도 내놓고 벼랑 끝에도 내놓으며 스스로 살아남기만을 기도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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