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없이도, 우리는 교자봉이다...ㅠㅠ

by 늘봄유정

교육자원봉사센터 운영지원단 워크숍이 있었다. 격월로 모여 두 시간 남짓 하는 회의로는 계획, 결정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 날을 잡고 회의를 하자며 추진된 일정이었다. 2015년 교육자원봉사센터가 생긴 이래, 지금의 업무담당자가 교육자원봉사 업무를 맡기 시작한 2018년이래 처음 갖는 시간이었다.


남편과 주말부부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환경팀 선생님을 제외하고 15명의 운영지원단 중 14명이 참석했다. 교육자원봉사뿐 아니라 각자의 일로 바쁜 봉사자들이라 일정을 잡을 때만 해도 기대하지 않았던 참석율이었다. 스케줄을 조정하고 남편에게 육아를 맡기며 참석한 우리는, 5시부터 8시까지 분임별 토론을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회의를 이어나갔다.


용인에는 < 환경교육, 회복적 정의, 에코 토털 공예, 그림책 리터러시, 응급처지교육, 디베이트, 전래놀이, 용인역사 마주하기, 감정 놀이, 패널 시어터> 이렇게 10개의 교육자원봉사단이 있다. 각 봉사단별 고충사항을 듣고, 팀을 이끄는 봉사단장들의 고민을 나누었다. 봉사자들이 교육자원봉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각종 방안을 모색했으며 서로 다른 봉사단이 함께 할 수 있는 융합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논의도 했다. 오래전부터 나와 업무담당자 둘이서만 구상하던 일이었는데 센터장이 되면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환경을 테마로 환경교육, 에코 토털공예, 디베이트가 함께한다거나 역사를 테마로 용인역사 마주하기, 전래놀이팀이 함께하는 프로젝트형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아이돌 유닛 그룹, 프로젝트 그룹과 같은 것 아니냐는 누군가의 말에 잠시 들뜨기도 하면서 밤이 깊어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회의는 용인교육자원봉사 박람회를 개최하자는 이야기로 모아졌다. 10개 팀, 100명 가까이 되는 봉사자들의 축제이자 용인시민들에게 교육자원봉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성대하게 열어보자는 것이었다. TF팀을 꾸리자, 후원을 받으려면 어디 어디에 가야 한다, 장소는 어디가 좋겠다.... 막연하지만 신나는 구상에 다들 흥분한 와중, 나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녀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9월 초였다.

"내년에... 센터장 연임을 꼭 해주세요~"

저녁 식사를 하던 그녀가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평소에도 농담 삼아 자주 하던 그 말이 그날따라 흘러가지 못하고 내 앞에 멈추었다.

"어디... 가세요?"

내게서 이런 질문이 나올 줄 몰랐는지 그녀는 당황했다.

"네... 내년에, 성남으로 발령이 나게 될 것 같아요. 거의 갈 것 같기는 한데 공문이 와야 확실한 거라서 모두에게 말하기는 아직 일러요. 센터장님만 알고 계세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물이 고였다.


2018년부터 줄곧 교육자원봉사센터 업무를 담당했던 담당자였다.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봉사를 시작했고 그녀 때문에 남았다. 용인교육자원봉사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아니 전부라 해도 모자람 없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든 끝이 있고 어떤 관계에든 결말은 있지만 그녀와 용인교육자원봉사가 분리되는 일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학부모지원전문가였던 그녀를 알게 된 것이 2017년, 그녀 손에 이끌려 교육자원봉사센터에 발을 들인 것이 2018년이었다. 2020년부터 21년까지 경기도의 25개 교육자원봉사센터를 함께 돌아다니며 컨설팅을 했다. 그러면서 교육자원봉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그 이상의 관계가 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떠나다니...


워크숍에서 자신의 인사이동을 발표하기로 했던 그녀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직 공문이 내려오지 않았고 타이밍을 못 잡았다는 이유였다. 나는 워크숍을 앞두고 오랫동안 함께 봉사한 단장 몇몇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들이 받을 충격을 완화시켜 준다는 핑계 뒤에는 나 혼자 지고 있던 마음의 부담을 조금씩 나누고 싶었던 저의가 깔려있었다. 소식을 들은 모두 고개를 떨구었고 몇몇은 오열했다. 나로 인해, 워크숍에 참가한 운영지원단 중 절반만이 이 무거운 현실을 알게 되었다. 앞날을 아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나누는 대화, 함께 세우는 2024년의 계획이 공허하게 느껴진 이유였다.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누군가의 발소리 물소리, 조작법이 잘못됐는지 펄펄 끓는 바닥, 덥다며 창문을 열고 구시렁대는 어떤 이의 말소리. 잠 못 드는 이유가 여러 개였으나 그중 으뜸은 그녀의 코 고는 소리였다. 같은 방에 있던 어떤 이는 투덜거리며 방을 빠져나와 거실에 누운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하다며 두 번째 회의 도중 잠든 그녀는 큰 소리로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왜 안 그랬겠는가. 교자봉 1년 살림을 거의 혼자서 꾸리는 그녀 아니던가. 워크숍 준비를 위해 신경 쓸 일은 또 좀 많았겠는가. 일보다는 어떤 사람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지만 떠나는 이유가 어디 그뿐이었을까...

'꽤 고단한 몇 년이었나 보구나... 어쩌면 그녀에게 이곳을 떠난다는 일은 홀가분한 일이겠구나.'

친정집에만 가면 미친 듯이 잠이 쏟아지던 시절이 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잠 한번 편히 못 자던 일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딸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결혼 전에 쓰던 침대에 누워 곤한 잠에 빠진 딸. 그녀가 그렇게 보였다.


그녀가 없는 내년을 상상했다.

'누군가는 그녀가 없어 떠날 테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남을 테지. 누군가는 그녀가 있던 시절이 좋았다며 과거에 남을 테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며 매일을 열어갈 테지. 때로는 그리워하며 때로는 아쉬워하다 그렇게 잊히겠지.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금의 걱정과는 달리 일정대로, 매뉴얼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봉사는 이어질 테지. 그 모든 길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와 고민을 나눌 수 있을까...'

봉사자로서는 고민이 없다.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센터장으로서는 막막하다. 시장 한복판에서 엄마손을 놓친 아이가 된 기분이다. 그렇게 새벽이 밝았다.


"언젠가 이런 기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 없이도 너무 잘 굴러간다면 조금은 섭섭하겠지만, 결국은 그래야죠. 어떤 업무담당자가 와도 센터가 안정적으로 잘 굴러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교육자원봉사센터의 주인은 봉사자들이니까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녀가 내게 말했다.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앓을 만큼은 앓아야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모두가 그녀와의 작별을 알게 되는 순간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엄마손을 놓쳐 당황스럽고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로 가득 차게 될 교자봉이 걱정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우리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천천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 때문에 교육자원봉사를 시작하고 그녀 때문에 남게 됐다지만, 계속할 수 있는 이유와 목적, 의미와 재미를 발견한 것은 봉사자들 각자의 판단이자 선택이 아니었던가. 누군가의 안내와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자발적'이라는 말을 진정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녀와의 작별이 슬픔으로 시작해 성장으로 이어질 것을 믿는다.

그녀가 없어도...

우리는, 교자봉이다.....




과거에 썼던 < 나는 교자봉이다 > 매거진은 브런치북 <다시, 학교에 갑니다>로 발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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