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자봉 사칭을 환영합니다

by 늘봄유정

온 나라가 재벌가 혼외자를 사칭한 사기꾼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막장드라마였다면 개연성 떨어진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전개가 현실에서 일어났다. 재벌 3세, 해외 유학, 승마선수, IT기업 임원뿐 아니라 성별까지 사칭했다.

사칭 : 이름, 직업, 나이, 주소 따위를 거짓으로 속여 이름.
사기죄 : 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거짓말만으로는 처벌이 안되지만 사칭으로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면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육자원봉사자 사칭은 어떨까? 도대체 자원봉사자를 사칭하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그 황당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첫 번째 사례

2019년 말, 디베이트 교육자원봉사팀을 꾸리게 되었다. 코로나로 첫 해를 건너뛰고 2021년에 팀으로는 첫 봉사를 나가게 됐는데 한 학교 봉사를 끝으로 그만둔 이가 있었다. 마을 도서관 봉사일로 바쁘다고 했다. 그런데 1년 후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송쌤! OOO이라는 분 알아요? 아직도 봉사하고 계신 분이에요?"

"아.. 그분 작년에 한 학기만 하고 그만두셨어요. 바쁘시다고 하던데요?"

"그랬구나. 내가 어느 모임에서 만났는데, 본인이 교자봉 디베이트봉사팀 단장을 맡아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이상하다 생각했죠. 분명 송쌤이 단장인걸 아는데... 그러시냐고 하고 헤어지기는 했는데 기분이 쫌 묘하네?"

"그러게요? 계속 봉사하셨으면 단장직 드렸을 텐데... 하하하"

디베이트팀 단장 사칭.


두 번째 사례

2022년 초에 처음 만들어진 봉사팀이 있다. 학교 주변의 유적지를 중심으로 용인의 역사를 알려주는 팀인데, 모집 때는 열명 남짓하던 인원이 양성과정 이후 3명만 남았다. 남은 3명은 어느 팀보다 열심히 연구모임을 가졌고 드디어 첫 봉사를 나가게 됐다. 학교 주변 유적지 탐방까지 이어지는 수업에 인솔을 도와줄 봉사자가 더 필요하다고 해서 나를 비롯한 다른 팀 몇 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첫 봉사를 다녀온 후 감격해 상기되었던 세분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교육청 행사에서 만난 어떤 분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본인이 그 팀에서 활동 중이라고 했다. 심지어 첫 봉사를 다녀왔다며 자랑을 하는 게 아니던가.

"어! 제가 보조교사로 따라갔었는데, 선생님은 못 본 것 같은데요?"

나의 질문에 상대는 태연히 답했다.

"나는 준비까지만 도와줬죠. 시간이 안 맞아서 나가지는 못했어요."

이미 그녀가 팀에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따져 묻지 못한 나는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다음 봉사 때 꼭 봬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갑자기 쌀쌀맞게 말했다.

"봉사는 이제 그만해야지요. 저 교육자원봉사 오랫동안 했거든요? 2009년부터 했어요. 이제 돈 되는 일 해야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교육자원봉사는 2015년에 만들어졌다.

교육자원봉사 활동, 기간 사칭.


세 번째 사례

교육지원청 사업 가운데 지역의 기관들과 연계해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교과시간에 학교밖으로 일주일 동안 체험을 다니는 활동이라 오가는 길에 안전지도를 해줄 인솔교사가 필요하다. 활동비를 지급하는 일이어서 이왕이면 평소 봉사로 수고하는 교육자원봉사선생님들에게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교육자원봉사센터에 들어왔다. 밴드 전체 공지로 지원자를 모집하다 보니 모르는 봉사자도 더러 있었다.

"처음 봬요. 어떤 교육자원봉사를 하고 계셔요?"라는 나의 물음에,

"토론을 가르치고 있어요~"라고 답한 이가 있었다.

"어머. 그러세요? 혼자 하고 계시나 봐요? 저도 토론을 가르치고 있어요. 저희 팀에 들어와 함께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요? 업무담당자를 잘 알고 있어서 그분 소개로 하게 됐어요. 그분이랑 친하거든요."

얼마 후 업무담당자를 만나 그분에 대해 물었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밴드에는 들어와 있지만 봉사는 전혀 안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토론교육자원봉사 사칭, 업무담당자 지인 사칭.

교육자원봉사 봄소풍, 가을소풍, 연말 사례발표회등 각종 행사에는 모두 참여하지만 봉사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밴드에도 들어와 있지 않은데 자신은 어느 팀 소속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그 팀 봉사자들이랑 꽤 친하다는 걸 모르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렇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그들은 4시간 활동에 10만 원의 수당을 수십 차례 챙겼다.

교육자원봉사 사칭. 재산상 이익 취득.



해본 적 없거나 한 번 해봤던 교육자원봉사 활동을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으며 팀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세 번째 사례처럼 교육자원봉사자라는 것이 금전적 이익으로 이어진 것은 사기에 해당하지만 그렇게까지 따지고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어떤 다른 교육자원봉사자도 그들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지 못했다. 엄청난 사기를 쳤거나 대단한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사정이 있겠거니, 그러려니 했다. 우리끼리 "도대체 왜~~~?"라며 의아해했다.

무엇보다도, '교육자원봉사자라는 이름이 사칭하고 싶을 만큼 가치 있는 이름인가 보네?'라고 생각하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운'이 아니라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속된 말로 '먹히는'이름이 되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다른 사칭과 달리 '교육자원봉사자'는 얼마든지 갖다 쓰시라 말하고 싶다. 자신의 커리어에든, 수익에든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잘 된 일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제는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언제든 교육자원봉사센터로 찾아와 진짜로 함께 해주기를...


이러다가 교육자원봉사 센터장을 사칭하는 이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나왔으면 좋겠다. 그만큼 갖고 싶은 자리, 누구나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으면 좋겠다. 공무원도 아니고 급여, 활동비 아무것도 없는 봉사직이지만 용인교육자원봉사 센터장이 꽤 끗발 있고 힘 있는 자리라는 인증, 받고 싶다. 그만큼 교육자원봉사 활동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재벌가 혼외자, 재벌 3세보다 더 먹히는 자리가 되기를.


매일매일 사칭당하는 게 즐거운,

우리는 교자봉이다. ( 새로 나온 과일 이름 아님 주의!!! )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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