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버지니아 울프’를 다시 소환해 보며

by Hello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작품과 행동을 통해서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에 저항하며 페미니즘을 역설한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詩)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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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중상계급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 경(Sir Leslie Stephen)은 저명한 문학 비평가, 편집자, 전기 작가이자 대학교수였다. 아버지는 지적이고 박식했지만 감정적으로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었는데, 울프는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그를 “집 안의 폭군”처럼 느꼈다고 기록할 정도로 가족에게 정신적 부담을 주는 인물이었다.




울프가 살았던 시대는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기간을 일컫는 시기(1837-1901)로 산업혁명의 성공 이후 상업과 식민지 활동을 통해 획득한 온갖 자원과 생산품들을 바탕으로 번성하던 기간이었으며 ‘대영제국’(British Empire)을 형성한 시기이기도 했다. 제국이 한창이던 당시에 지구촌 1/4 지역에서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이 펄럭였지만, 같은 기간 영국 인구 150만여 명이 작은 섬에서의 음습한 날씨와 지루한 일상, 그리고 우울한 풍광만 늘어져 있는 고향을 떠나 신대륙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남아프리카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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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식민지 쟁취를 위한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전쟁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니 당시 영국 사회 내에서 남성들의 권위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다행히 빅토리아 시대는 시민계급의 형성과 중산층의 증가로 인해 사회 내부에서는 정치, 사회적 개혁이 상당 부분 자유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런던대학에서 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울프는 당시 친오빠 토비가 재학 중이던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지성인들과 런던 중심가 대영박물관 근처 거처인 블룸스베리에서 독서 토론과 사회비평을 위한 차 모임을 수시로 가지며 여성의 권익 신장과 사회 참여를 위한 진지한 논의의 시간을 갖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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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는 영국의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참석했다. 모임에는 학자, 비평가들은 물론 소설가 E. M. 포스터와 전기 작가 리턴 스트레이치, 미술평론가 클라이브 벨, 화가 버네서 벨과 던컨 그랜트, 그리고 훗날 저명한 경제학자가 된 케인즈도 참석했다. 또한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버트런드 러셀, 작가 올더스 헉슬리, 극작가이자 문학비평가인 T. S. 엘리엇도 종종 이 그룹과 어울렸다. 이들은 모임을 가졌던 동네의 이름을 본떠 ‘블룸스베리 그룹(Bloomsbury Group)’이라고 불렸다.




울프는 13세 때 모친이 사망하고 22세에 문학평론가이자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부친마저 사망하면서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 의붓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남성과 결혼, 아기에 대한 혐오감을 갖도록 만들었고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가하도록 만든다. 울프는 1912년 블룸스버리 그룹의 일원으로 정치 사상가이자 출판인이던 레너드 울프(Leonard Woolf)와 결혼했는데, 그들의 관계는 부부라기보다는 정서적 보호와 지적 동반자 관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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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성론을 강조하며 ‘페미니즘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자기만의 방』 외에도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막과 막 사이』 등을 발표하였다. 울프는 ‘난해한 모더니스트’, ‘지식인 심미가’, ‘사상적 페미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으며 사회에 팽배한 권위를 조롱하고 여성에게 강요되는 규범을 거부하며 남성들의 불필요한 권위, 명예욕 등과 싸웠다.




울프의 여성운동사적 위상은 무엇보다 1929년에 발표한 대표작 중의 하나인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에서 확고해진다. 작가를 꿈꾸었던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라고 토로했다. 이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재능 부족이 아닌 당시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식하면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 교육 기회, 사적 공간의 부재를 역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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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500파운드는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대략 £20,000~£25,000(약 3,500만~4,000만 원) 정도의 실질적 생활비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단순 생활비를 충당하고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중간 소득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울프가 제시한 500파운드는 단지 생활을 위한 단순한 돈 계산이 아니다. 실제로 당시 여성은 법적·경제적으로 남성보다 훨씬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었고, 가사와 양육 등으로 막힌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진정한 글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자기만의 방(Room of One’s Own)”과 “500파운드”는 여성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경제적 자율성과 창작의 자유를 상징하는 최소한의 수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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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머니, 누이,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 등으로 신경쇠약과 우울증이 심해진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과 런던 공습 등으로 정신 질환이 악화되면서 59세에 강물에 투신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울프는 비록 특권 속에서 자랐지만 지적 자유와 가부장적 억압이 공존하는 가운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라는 어려운 사회적 배경 속에서 문학을 통한 자기 구원을 시도한 인물로 오늘날까지 평가되고 있다.




이런 울프의 생애를 읽으면서 여성들의 적(敵)은 흔히 남자들이거나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평등한 사회적 환경으로만 알았다. 특히 남녀관계를 놓고 보면 남녀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떤 다른 종(種) 보다 가장 밀접한 접촉생활을 하면서도 늘 갈등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남자들의 가부장적 행태와 게으른 천성, 쓸데없는 고집, 그리고 단순한 행동과 고민 없는 추진력에 수십만 년 동안 지긋지긋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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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도 여성들의 쓸데없는 간섭과 잔소리, 그리고 속내 모를 흉계와 다 알면서도 시침 떼는 얄미운 습성을 못마땅해했다. 서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남자는 잘난 여성이 나가서 사냥을 해오라고 화살을 바닥에 던져댔고, 여성은 애들을 키워보라고 아이들을 남자 쪽으로 밀어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녀는 연애를 했고 결혼했으며 아이들을 낳았다. 지구상 생물들의 것 가운데 유일한 창작물인 사람이 쓴 소설과 시는 인간 삶의 이면에서 아주 짧은 시간 남녀의 행복했던 찰나를 묘사하며 사랑을 노래했고 또 사랑을 받았다. 모순되는 상황이 모순을 반전시키는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사회적 환경은 울프가 꿈꾸던 한 세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여성시대가 펼쳐져 있다.(아직도 멀었다는 여성들의 탄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여성들은 남성과의 대결에서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고, 자기만의 방을 떠나 ‘자기만의 성(城)’을 소유하려고 한다. 이런 모습은 요즘 뉴스의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하고 있는 모 여성 정치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그녀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최소한 인간의 양심이나 상식마저 무시하며 거리낌 없이 당적을 바꿔가며 장관직에 목을 매는 추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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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힘없는 인턴 학생에 무자비한 갑질을 통해 청년 본인은 물론 부모 가슴에 평생 한(恨)이 될 못을 박은 것도 부족해 온 가족이 동원된 자산 축적을 통해 평범한 시민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부(富)까지 거머쥐었다. 정치인인 또 다른 인물도 자식의 결혼에 자신의 모든 권력을 동원하는 추함을 보이고도 눈 하나 깜빡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런 지경이니 어쩔 수 없이 찾아간 하객들의 축복이 자녀에게 평생 넘치겠는가. 미국이나 서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여전한 가운데 경제선진국이랄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여성들마저 분노하는 현상이 안타깝다.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여성 모더니스트 작가로 사회적으로 여성을 배제시켜 온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 남성들로부터 받았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대한 고뇌와 탄식을 은유와 풍자적 어조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 울프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런던으로 달려가 ‘타비스톡 광장(Tavistock Square)’에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동상 옆에 커피 한잔 들고 앉아 진지하게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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