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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동 나나 Nov 11. 2023

엄마,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임 윤찬씨의 헝가리 공연을 듣고


 안녕? 

 갑자기 무슨 편지냐고 하겠지? 줌으로 자주 만나고 대화방에서 소식을 전하며 살고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글로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것 같아. 오늘은 특별히 네 생각이 많이 나는 날이었어. 동료 선생님이 동영상을 보내주었는데 임윤찬씨가 헝가리에서 연주한 실황이야.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3악장을 연주하는데, 젊은이의 열정과 힘이 느껴지네. 

 무한 반복을 들으며 걷는 동안 음악을 배경으로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어. 우이동 집의 작은 피아노 방이 생각나더라. 그 방에서 지냈던 너의 시간도 생각이 나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있는 네 뒷모습도 생각이 난다. 너는 그때를 생각하면 어떤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르니? 





하루 8시간 피아노 연습을 하고 공부는 공부대로 하면서 어려운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 날들이었지. 내가 힘들다고 불평하고 안 하겠다고 한 적은 없었어. 나는 직장을 다니며 네 뒷바라지를 했지. 일주일에 두 번씩 교수님께  레슨을 받도록 강북에서 강남을 다니면서 말이야. 개인지도가 끝나면 현금이 든 하얀 봉투를 피아노 위에 놓고 왔던 기억도 나네. 

 그렇게 일 년여를 보내고 예원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다음 힘들어하는 너를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사실은 나도 힘이 들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네가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해보자고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반대했었어. 다행히 아빠가 두바이로 발령이 났고 나는 도망치듯이 내 직장을 버리고 얼른 이삿짐을 쌓지. 너희들을 학교 공부와 과외 지옥에서 꺼내주고 싶었거든. 너는 그때 마음이 어땠니? 

 네가 피아노를 포기하고 나서 내게 한 말이 기억나. ‘엄마,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피아노를 즐기지 못하고 연습만 하다가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던 것 같아. 나는 지금도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면 연습하는 동안 노력하는 모습이 생각나서 제대로 즐기기가 어려워. 얼마 전 임 윤찬 씨의 인터뷰를 보는데 진행자가 왜 콩쿠르에서 입상한 곡을 연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곡은 너무 힘들게 연습해서 다시 치고 싶지 않다고 얘기를 해서 관중들이 웃는 것을 보았어. 너는 다른 사람들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니?



 

두바이에 도착해서 영어 문제로 어메리칸 스쿨을 들어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몇 개월의 준비 기간이 지난 후 입학할 수 있었어. 중학교 1학년이고 사춘기인데 영어를 모르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우울한 시간을 보냈던 것을 기억해.  같은 반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즐기는 체육시간이면 너는 화장실에 한 시간 동안 숨어있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두바이 아메리칸 스쿨은 뮤지컬과 미술 전시회, 재즈 음악회, 합창대회, 스포츠 등 다양한 행사를 하는 곳이었어. 네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알게 된 음악 선생님께서 너에게 피아노를 맡겨 주셨고  그 후로 너는 학교에서 피아니스트로 불리게 되었지. 행사에 참여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네 실력을 드러낼 수 있었지. 힘들었던 피아노 연습 시간이 두바이에서 너를 돋보이게 하였고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 준 거지. 두바이 어메리칸 스쿨은 공부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악기와 스포츠 활동, 행사에 참여를 꼭 해야만 했지. 네가 그 학교를 졸업할 때는 그 해의 아티스트 상을 받게 되어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어. 





열심히 노력하는 시간을 보내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그 노력이 다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무기가 된 거야. 네가 피아노를 칠 때도 두바이에서 학교생활이 어려울 때도 이겨내서 엄마는 고맙게 생각해. 묵묵히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과에 순응하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이제 그 아이가 자라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지금도 그때만큼 열심히 사는 네가 든든하고 감사하지. 어제 줌을 하면서 작은 J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 작은 J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하면 너는 뭐라고 할 거니?


                                                                                                          2023년 가을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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