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의 무산담
안녕?
요즘 아빠는 시골집 담을 수리하고 꾸미느라 바쁘시네. 카톡으로 보낸 사진처럼 오래된 시골집 담이 멋지게 변해가고 있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솜씨가 좋다고 하고 아이디어도 좋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으신가 봐. 나는 퇴근해 돌아오면 그날 한 일을 살펴보고 폭풍 칭찬을 해야 한단다. 아빠는 혼자서 힘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해. 새로운 재료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 힘이 많이 들거든. 아빠의 성품이 아니면 이런저런 일을 할 수가 없을 거야.
아빠 얘기를 하니까 생각난다. 우리가 두바이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1월 1일 해돋이를 보러 간다고 떠났는데 아빠가 계속 서쪽으로 운전하고 갔던 날 기억나니? 날이 훤하게 밝았는데 우리는 아빠만 믿고 해가 왜 안 뜨지, 왜 안보이지 했던걸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와. 해는 이미 떠서 우리 이마까지 와 있었는데 말이야. 그때는 내비게이션도 없었고 동서남북을 몰랐던 거지. 매일 뜨는 해라며 내일도 해는 뜬다고 너희들을 달래는 아빠의 궁색함이 나를 화나게 했던 기억도 나네.
해돋이를 포기하고 목적지를 바꾸어 오만의 무산담으로 갔었어. 중동에 있는 유일한 피요르드식 해안이고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이야. 이곳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보고 가보고 싶었거든. 호르무즈 해협과 붙어있는 땅이여서 본토 오만과 떨어져 있고 지금도 인구가 적은 청정지역이라고 알려진 곳이야.
https://maps.app.goo.gl/ab4t8XGzYvyS3zBc6
무산담 내의 알 카삽이란 작은 마을에서 낚싯대 몇 개와 소금 한 봉지, 숯을 사서 다우(아랍식 작은 배)를 타고 작은 섬에 도착했어. 너는 준비했던 이젤을 꺼내 놓고 그림을 그리고 아빠와 네 동생은 낚싯대를 바다에 내려놓고. 스노클링하며 놀았지. 나무 한 그루 없는 작은 섬에서 몇 시간을 보내며 지칠 때쯤 눈먼 물고기 한 마리가 낚싯대에 걸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었어. 아빠는 물고기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불을 피워 나무 꼬챙이에 끼워서 생선을 굽기 시작했어. 영화에서 보던 원주민같이 그 불 주위에 모여 앉아 생선이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겉이 까맣게 탄 생선의 살을 발라서 소금을 뿌려 먹는 맛이란 아마 내가 먹어본 생선구이 중 제일 맛이 있었을 거야. 작은 섬에서 한낮을 보내고 해 떨어질 때쯤 우리를 태우러 배가 왔을 때 우리는 많이 잡지 못한 물고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 많이 구워 먹을 거라고 크게 피워놓은 불을 끄느라 고생하고, 큰 봉지의 소금을 샀는데 한 마리밖에 못 잡아서 소금 봉지가 더 커 보였지. 하지만 우리는 무인도를 경험했고 재미있게 놀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내고 깔깔대며 웃었고, 물고기를 소금만으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경험도 했어.
잘못 들어선 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경험이 계획된 것보다 기억이 나더라. 여행도 인생도 예상치 못한 길을 가는 경우가 많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를 사고라고 하고 고난이라고도 하지. 고난을 이겨내고 어려운 상황에서 내리는 우리의 판단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 같아. 아빠와 엄마도 어려움이 있었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에 감사해. 그런 상황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주었고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너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하고 네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기를 바라. 쉽지 않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하든 그 시간은 지나갈 거야. 이왕 지나갈 일이고 시간이라면 우리가 담대하게 멋지게 대응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한국은 요즘 단풍으로 산속이 소란스러워. 그 소란함을 느끼려 다음 주에는 내장산에 갈 거야. 사진 찍어서 보낼게. 아이들한테 보여줘.
모두 건강하길.
2023년 한국에서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