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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May 12. 2024

쉬는 데 죄책감 갖지 말기

시간관리 자기계발론을 넘어서


시대를 풍미했던 자기계발 열풍은 시간관리와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 옛날 ‘4시간 수면법’을 지나 ‘아침형 인간’이 유행하더니, 얼마 전에는 ‘미라클 모닝’이 ‘갓생’ 살고픈 이들을 자극하며 아침을 깨웠다. 비슷하게 유행했던 ‘일만 시간의 법칙’은 노력을 시간 단위로 증명하는 것이고, ‘플래너 쓰기’는 문서로 하는 시간관리 방식이다. 시간표와 체크리스트는 계획성과 노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지표다. 이 유행들도 진화해서, 과거에 생산성 있는 사람, 성과를 내는 사람 되기에 목표를 두었다면 이제는 자기 돌봄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변화하기는 했다. 그래도 알고 보면 성공을 위한 목표지향적인 삶의 방식임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촘촘한 시간관리로 자기계발을 하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두 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엄격하게 시간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 삶이 이미 만만치 않다는 인식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부지런을 떨고 뚜렷한 목표 아래 자투리 시간을 탈탈 털어 쓰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감에 기초한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부와 능력을 뛰어넘기 위해서 현재 쓸 수 있는 자원은 시간뿐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가능성을 시간에 투자해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이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마치 신체를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이어트와 몸만들기 산업이 가능해진 것처럼, 시간관리의 자기계발론은 시간을 개인이 디자인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한다. 물론 주어진 시간을 잘 쓰면 좋다는 것이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과연 우리에게 스스로 통제 가능한 시간이 얼마나 주어지는지는 의문이다. 이 기나긴 노동시간과, 가족 외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돌봄시간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처럼 시간관리 자기계발론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가능성 적은 믿음에 기반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시간을 잘 쓰게 되면 ‘더 좋은 나’로 바뀔 수 있다는 건 사실인 듯하다. 영어공부나 경제뉴스 보기 같은 천편일률적인 것들 말고, 정해신 시간 몸과 영혼을 맑게 하는 자기만의 리츄얼이라든가, 줏대 없이 중독에 빠졌던 습관과 미디어로부터 떨어져 디톡스를 한다든가... 이렇게 시간을 쓴다면 말이다. 급하지 않게 내일로 미룰 일과 미루지 말고 당장 할 일을 잘 가르는 지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할 수 있는 용기. 이런 것들이 있다면 실천의 결과는 나를 한층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시간을 잘 쓴다는 말이 더 많은 시간을 생산적인(생산적으로 보이는) 일에 쓴다는 뜻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일에서 벗어난 시간도 좋은 시간이니까. 옛날 옛적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구직 중이던 시절, 나는 여행 떠날 자격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쉴 자격은 누구에게 있을까? 많이 일한 사람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쉼이라면, 그 보상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 마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가 나야말로 잘 쉬고 잘 놀아야 할 상황이었음을 깨달았다. ‘잘 쓴 시간’에는 열심히 놀고 충분히 쉬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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