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폴론, 그리고 디오니소스
일정이 예정보다 일찍 끝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너는 거실에 편하게 누운 채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엄마도 모임에 나갔다는 너의 말에 아빠는 (엄마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 해방감을 느꼈다.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이 들었다. 옛날 같았으면 곧바로 치킨이나 피자를 시켰겠지만 네가 다이어트하고 있기에 그 말을 차마 꺼낼 순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씻은 다음 편안한 표정으로 네 옆에 앉았을 때, 너는 내게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봤냐고 물어봤다.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다는 그 영화를 당연히 들어봤지만, 아빠의 '반골 기질' 때문에 보지는 않았다고 너에게 말했다. 유명하다고 떠들어 대는 것들은, 그것이 영화건 맛집이건 간에, 기대한 것보다는 실망감과 허탈감을 준 것이 사실이었다.
"아빠, 무슨 생각해? 오랜만에 같이 영화 보자."
"어? 그... 그래."
우리가 얼마 만에 이렇게 오붓이 같이 앉아 영화를 보는 걸까? 아빠 일이 밤늦게 끝나서, 주말에도 함께 해 주지 못해서, 게다가 용돈도 풍족하게 많이 못 줘서, 모든 것이 미안한데, 지금 내 딸이 나와 같이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 이 영화가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는 영화를 봤고, 나는 영화를 보며, 영화를 보고 있는 너도 봤다. 아이돌을 준비하고 있는 네가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이 영화가 어떨지에 대한 기대감만큼이나 컸다. 벌써 세 번이나 봤다는 너였지만 '사자보이스'가 <소다팝>을 부르며 처음 등장 할 때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널 봤다. '헌트릭스'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너는 나지막이 따라 불렀다. 단순히 아이돌이라고 생각했던 헌트릭스가 악령과 싸우며 팬들의 열렬한 사랑으로 혼문을 만들고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발상에 흐뭇한 미소가 올라오며 절로 고개가 끄덕였다. 이런 판타지의 요소를, 그것도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가미시킨 아이디어를 세련된 표현으로 억지스럽지 않게 영화 속에 녹여낸 결과물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아빠, 이 영화 어땠어?'라는 질문을 너에게 받았다. 뭔가 그럴싸한 대답을 해주고 싶어, 나는 너에게 나중에 알려줄게,라는 말만 던졌다. '헌트릭스'의 <골든> 노래만 계속 머릿속에 남아 울려 퍼지고 있어서 도저히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어서였다.
Nietzsche wrote that this tension comes from the human impulses for both the Apollonian and Dionysian. Both were sons of Zeus, but Apollo represented order, logic, and reason, while Dionysus is said to be an irrational agent of chaos who loves to party and dance. To fully live, we need both.
니체는 이 긴장 상태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둘 다에 대한 인간의 충동에서 생겨난다고 적었다. 둘 다 제우스의 아들이었지만, 아폴로는 질서, 논리, 그리고 이성을 대표한 반면, 디오니소스는 파티를 열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혼돈의 비이성적인 대리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둘 다 필요하다.
- 2026년 EBS 수능완성 영어 - 실전모의고사 2회 32번 지문 중에서
최근에 수업을 했던 지문에 언급된 내용이다. 인간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안정과 질서의 추구를 삶의 사명이라 믿고, 때론 그러한 상태를 행복이라 부른다. 인간이 사랑하는 예술작품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피라미드, 파르테논 신전, 피에타, 석굴암, BTS의 칼군무 등을 보며 우리는 그 질서로움에 경의를 표한다. 니체는 이를 아폴론적 예술이라 정의했다. 하지만 니체는 아폴론적 예술만으로는 진정한 예술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예술에는 디오니소스적 요소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니체는 덧붙였다. 니체는 음악과 춤이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대표라 말한다. 싸이의 '흠뻑쇼'에서 관객은 아폴론적 이성과 디오니소스적 실성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필요에 의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무아지경의 상태로 몰입하여 비논리적인 하나가 되어 떼창과 떼춤을 춘다.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도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오묘한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폴론적이라면 고흐는 자신만의 자연을 바라보는 눈으로, 거기에 자신의 열정과 고뇌를 더한 붓터치를 통해 고스란히 캔버스에 옮겼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 <부러진 척추>에서는 이 조합의 진수를 보여준다. 프리다는 이성을 단단히 붙잡고 보통의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직시한다. 그녀는 그 고통의 삶마저 긍정하며 붓을 잡는다. 프리다는 디오니소스가 되어 화폭에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어우러짐을 만날 수 있다. 완벽한 무대와 칼군무는 아폴론적 요소의 극치를 보여준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스>의 아름다운 외모 또한 아폴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예술형태임에 틀림없다. 한편 헌트릭스 멤버들끼리의 갈등과 화합, 서로를 향한 분노, 슬픔, 사랑이 노래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것은 디오니소스적 특성이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고, 거기에서 나오는 집단적 광란의 디오니소스적 힘으로 악령을 완전히 제압한다. 결론적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아이돌이라는 아폴론적 시스템 안에서 내면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디오니소스적 에너지가 절묘하게 조화되어 악령을 물리치는 어마무시한 힘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예술은 결국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니체의 말에 아빠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사실 아빠는 네가 단지 멋진 아이돌을 뛰어넘는, 진정한 예술가로 성장하길 바란다. 화려한 아폴론적 아름다움은 당연히 갖추면서도, 삶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디오니소스적인 힘을 따뜻하게 표현해 낼 줄 아는 그런 예술가가 되기를 아빠는 진심으로 바란다.
P.S. 네가 샤워하면서 부르는 <골든>을 거실에서 네 엄마와 시루와 함께 들었다. 잘 안 들리긴 했지만, 조금만 더 연습하면 꽤 괜찮아질 것 같다. 엄마가 너 샤워 엄청 오래 한다고, 수도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날 보며 널 흉봤다. 샤워도 하면서 연습도 하니 일석이조라서 괜찮다고 널 변호했다. 저렇게 연습을 하니 우리 딸의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골든' 타임도 머지않았다고 네 엄마를 보며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