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gin Again (실패를 긍정하는 마음)
한 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다. 영화를 '본다'라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버겁게 느껴졌다. 적어도 두 시간쯤은 써야 하고, 십 분 정도 지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딴짓을 하고 싶어졌다. 영화관에 '간다'라는 행위는 나에게 사치다. 어차피 우리 가족 다 각자의 삶으로 바쁘기도 하고, 나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가줄 사람도 없다. 영화가 재미없어졌다. 목적 없이 오로지 쉬기 위해,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보는 영상은 이제 유튜브 밖에 없다. 20분이 넘어가는 영상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쉽게 지친다. 쇼츠가 나에게 딱 맞는 삶이 되고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 쇼츠에 길들여진 나를 발견했고, 하릴없이 몇 시간이고 쇼츠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소비해 버린 나 자신에 대한 질책과 후회도 몰려왔다. 잠들기 전에 조금만 보고 자겠다는 나약한 다짐을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할 건지. 차라리 책을 읽자라는 새로운 다짐도 늘 쇼츠에 유혹에 쉽게 패배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쇼츠보다는 영화를 보자는 새로운 각오는 어찌 보면 꽤 괜찮은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리모컨을 이리저리 조작하는 내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리모컨을 소유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지 않았나. 그래도 그땐 작아서 더 좋았던 소파가 있는 거실에 다 함께 모여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귀한 일이 되어 버렸다. 채널을 탐색하다가 <비긴 어게인>를 만났다.
딸아, 이 영화는 워낙 평이 좋아서 보지 않았던 영화였다. 남들이 좋다고 꼭 보라고 하면, 나는 이상하게 보기가 싫어지곤 했다. 반골(反骨) 기질, 즉 명령이나 권위, 사회적 통념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이 나에게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나이 들어서 그 강도와 빈도가 많이 줄긴 했는데 그래도 영화, 책 분야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참고로 아빠는 마동석 주연의 국민 히트작 <범죄 도시>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마동석이 누군가를 줘 패는 '짤'만 봤다.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걸로 만족했다. 영화 다 봤다,라고 생각하면서) <비긴 어게인>도 마찬가지였다. '뭐 대충 힘들고, 가난한 무명 뮤지션의 삶을 그리면서, 결국은 유명해지는 그런 뻔한 클리쉐를 보여주는 영화겠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래도 언젠가는 봐야지'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2013년 작이니, 결국은 12년 만에 보게 된 셈이었다.
영화의 시작, 주인공 그레타는 허름한 바에서 친구 권유에 못 이겨 자신의 자작곡을 기타 반주와 함께 부르기 시작한다. 그다지 매력이 없어 보이는 보이스다. 얼굴이 매력적인 것 빼고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만한 특이점도 없다. 청중들의 반응도 그래서 미지근했다. 여기서 또 다른 주인공 댄이 등장한다. 댄은 이미 잔뜩 술에 취한 상태였고, 바 앞에 놓여 있는 높은 의자에 앉아 술을 더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술을 주문하고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그레타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다른 청중들과는 달리 댄은 그레타의 단순하고 평범한 노래에서 다른 것을 보고 듣는다. 노래 처음에는 잔잔한 기타 사운드, 그 후에 드럼이 등장하고, 그다음에는 차례대로 건반, 첼로 등의 연주가 더해지며 그레타의 노래는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음악으로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이 댄의 상상 속에 일어난 일이었다. 비록 한물가긴 했지만 한때 잘 나갔던 음반 제작자였던 댄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도 단숨에 예선 탈락할 것만 같았던 그레타의 자작곡은 댄의 상상 속에서 적어도 탑 쓰리 안에는 들어갈 수 있는 곡으로 탈바꿈했다.
딸아, 아빠는 이 영화의 모든 시퀀스 중에서 바로 이 초반부가 가장 맘에 든다. 영화 시작 5분 만에 아빠는 완전히 <비긴 어게인>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아 진짜 이 장면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내가 취미로 음악을 계속하는 한, 이 장면은 나에게 무한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불러다 줄 것 같다. 영화는 이제 댄과 그레타의 음반제작 여정을 그려 나간다. 돈이 풍족하지 않았던 그들은 뉴욕 곳곳의 길거리를 스튜디오 삼아 음반 녹음에 들어간다. 뉴욕이 내는 각종 소음은 오히려 음악에 독창성과 아름다움에 기여한다. 서로가 가지고 있었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응원하며 기어이 음반제작이 끝난다.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해 각자의 길을 걷는 것으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We all make mistakes. That's what makes us beautiful.
우린 모두 실수를 해. 그게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댄이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힘들어하는 그레타에게 해주는 위로의 대사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대사였지만 아빠는 여기서 진한 감흥이 왔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없다. 다만 실수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은 크게 바뀔 수 있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그 여정에는 결코 실패란 있을 수 없다. 남들이 실패라 읽는 그 단어를 내 딸은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읽어 주길 아빠는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실수와 실패가 결국 우리를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댄의 대사는 우리가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대사라 생각한다. 댄과 그레타는 각자의 인생의 최저점에 있었다. 이 둘은 음악이라는 매개로 만났고 서로를 응원하며 영화제목처럼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실패하지 않을 힘이 아니다. 실패와 실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삶을 살아가는 바로 그 힘을 말하는 것이다.
This is what I live about music. It can make a mundane,
everyday scene sound beautiful.
이게 바로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야.
지극히 평범한 순간도 아름답게 만들어주잖아.
댄과 그레타가 서로 이어폰을 나눠 끼고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장면에 댄이 했던 대사다. 영상과 음악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너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음악과 함께 했다. 아빠는 기타를, 엄마는 타악기를, 너는 노래를, 혹은 춤을. 세상의 거의 모든 부모처럼, 네 엄마와 나는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내어야 하는 이유를 너에게 두며 살아왔다. 가끔 지칠 때마다 우리는 음악과 함께 했다. 어렸을 적 너의 노래와 춤은 네 엄마와 나에게 큰 위로와 사랑을 주었다. 그게 없었으면 내가 버틸 수 있었을까. 우리의 음악은 너를 향한 사랑이었고, 너의 음악은 우리의 치유였다.
P.S. 사랑하는 딸아, 이 영화를 봤다고 했었나?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빠랑 같이 꼭 다시 보자. 팝콘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팝콘은 먹어도 살 안 찐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냥 팝콘은 먹어도 살 안 찌는 것으로 하자. 우리 딸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혹은 네가 원하는 아이돌이 되었을 때, (혹은 썩 괜찮은 뭔가 다른 존재가 되었을 때) 그때 아빠와 엄마, 그리고 너 이렇게 셋이서 맥주 한 캔 씩 붙잡고 마시며 꼭 보고 싶은 영화다. 생각만 해도 좋다. 음악이 있는 한 우리 가족은 늘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음악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레타가 했던 대사다.
Music was always there. Always!
음악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어.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