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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로 산다는 것

좋아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by 여행작가 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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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가한 한 주를 보냈다. 정기 강의가 며칠 전 끝났고, 한 잡지 서면 인터뷰 답변을 지금 막 끝냈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놔 싸늘하기까지 한 카페에 느긋하게 앉아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시면서 며칠 후 갈 지역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고, 가을에 떠날 여행지의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 누군가 이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다면, 참 한가하고 여유로운 삶이구나. 여행작가란 다 저렇게 사는 걸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크나큰 착각이다. 보이는 것과 직접 몸을 담그고 살아보는 삶은 천지차라는 걸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수업을 듣던 분이 질문을 했다. '지금 여행작가로 사는 게 전에 비해 어떠세요?' 바로 '이보다 좋을 수 없어요' 란 대답이 나와야 옳았다. 첫 여행 에세이가 나왔을 때, 오래된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조차도 기억 못 하는 오래전 일을 끄집어냈다. "처음 유럽 여행을 하고선 앞으로 여행하고 글 쓰면서 살고 싶다고 했었던 거 기억나? 그 꿈을 이뤘네." 그럼에도 나는 그분에게 '이전보다는 좋아요.'란 어정쩡한 대답을 했다.


꿈이 현실이 되고, 좋아하는 일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되었을 때, 특히 그 일이 생계와 연관 있다면 더 이상 꿈을 이뤘다는 환상에만 안주하고 있을 순 없다. 즐거움은 순간이고, 매일매일이 걱정과 근심의 연속이다.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넉넉지 않은 예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허다하다. 원고 요청이 한동안 들어오지 않으면 금세 초조해진다. 책 쓰기 수업은 보람 있는 일이지만, 반면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백 퍼센트 열중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한 명이라도 느슨해진 기미를 보이면 곧바로 신경이 쓰인다. 후에 강의 내용을 고치고, 또 고친다. 여행과 책을 쓰는 본업은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지금 두 개의 책 기획안과 원고 초안이 아이디어 폴더 구석 어딘가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다. 가을에 떠나는 여행은 올해 겨우 두 번째 여행이다. 이조차도 확실치 않다. 따져보면 직장에 매여 있을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대신 책임이 따르고, 정기적으로 통장에 들어오는 수입이 없다는 것 외에는.


여행작가로 첫 밥벌이를 한 것은 인세도 원고료도 아닌 강의료였다. 여행 작가가 됐다는 것을 처음 실감했을 때는 외부에서 별다른 경력 없는 나를 '강사'로 초청했을 때였다. 첫 강의는 백화점 문화센터의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동유럽 여행이 주제였는데 이를테면 동유럽 유명 관광지나 여행 중 있었던 에피소드, 여행 팁 같은 것을 풀어내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난이도 쉬운 강의였다. 난이도가 어찌 됐건,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 시간 가량 혼자 말을 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됐다. 차라리 한 달 내내 글만 쓰는 편이 쉽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두 시간 동안 할 말을 모두 적어보는 거였다. 타고난 언변을 가진 분이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신난다는 분들은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두 시간 동안 할 말을 풀어서 글로 써보면(해본 분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양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많고,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먼저 강의의 주요 주제를 뼈대로 잡고, 그 아래 하위 주제를 잡는다. 그 사이사이에 카를교 다리 위에서 소원을 빌었다거나 부다페스트 여행하기 좋은 시기 등 여러 예시를 다채롭게 집어넣었다. 한번 글로 쓰고 나니, 머릿속에 저절로 정리가 됐다. 첫 강의를 할 때 무척 긴장했던 기억이 나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추가 강의 요청이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수많은 연습과 실전 끝에 지금은 그때처럼 시나리오를 쓰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지만, 보람과는 별개로 여전히 편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사보나 잡지 등에 여행 기사를 쓰고, 원고료를 받는 것은 또 다른 수입의 경로다. 내겐 가끔씩 들어오는 이벤트 같은 일감이다. 그렇기에 이 업계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겪어본 바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글을 쓸만한 매체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사보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홍보의 주요 수단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폐지하거나 e매거진으로 축소하는 추세다.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홍보 효과는 미미하고, SNS에 비해 가성비와 시의성도 떨어진다. 대부분 그나마 보수적인 기업이나 타깃이나 잡지 성격이 뚜렷한 곳 정도에서 정기적으로 종이로 된 사보를 낸다. 시장은 좁고, 글을 싣고 싶어 하는 여행 작가는 많다. 오래 활동하고 있는 작가나 유명한 여행 작가들에게 아무래도 기회가 더 가게 마련이다.


사보에 실릴만한 글을 쓰는 건 자신 있었다. 전에 사보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서 하루에 두세 편 칼럼을 쓰라고 해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이 업계, 특히 여행 쪽에서 포인트는 글이 아니었다. 한 번은 사보 제작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사보 속 한 여행 코너에 정기적으로 내 글을 싣고 싶다고 했다. 좋은 기회였다. 포트폴리오를 보길 원했는데, 그중에서 여행 사진을 여러 장 보고 싶어 했다. 당시 국내 여행지에 대한 소스가 많지 않아서 내가 봐도 부족한 사진을 몇 장 보냈다. 결국 그건은 캔슬됐다. 그 후에도 사진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사보나 잡지의 여행 섹션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잡아끌 멋진 사진이다. 보이는 이미지가 그 매체의 격을 높여주는데 한몫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글이 엉망이어선 안 되겠지만). 여행책을 당장 준비하는 분들은 당연히 글을 기본적으로 우선순위에 두고 있어야겠지만, 향후 여행 작가로 활동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사진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때로 글보다 사진 한 장으로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진의 기술, 카메라에 익숙해지는 것, 사진의 편집까지 모두 익혀놓는 편이 유리하다.


여행작가의 일중에 가장 마음 편하고 재밌는 것은 여행을 제외하고는 글을 쓰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해보면 해볼수록 글쓰기가 더 간절해진다. 글을 쓰는 것을 일상으로 하다 보니, 내 글쓰기 스타일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재밌다. 여러 방식으로 글을 써 본 결과 책을 쓸 때처럼 하나의 주제를 잡고서 내내 몰아 쓰는 것이 내게 잘 맞는다는 걸 알았다. 한 가지에 열중하면 다른 일에 좀처럼 집중 못하는 성격 탓이다. 이를테면 책을 쓸 때의 경우, 대략 3~4개월 정도 기간을 잡는다. 한 달 정도는 초안을 쓰고,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쉰다. 이때 완전히 글쓰기와 동떨어진 일을 한다.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간다. 다시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원고를 다시 쓰거나 수정하고, 일주일 동안 다른 일을 한다. 그렇게 몰아 쓰고, 쉬고를 서너 번 정도 반복하면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어느 정도 완성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한주에 한 편씩 정해진 기간 내에 연재하는 이 매거진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회사를 다닐 때 일이 바쁘면 점심을 굶을 때가 종종 있었다. 대체로 마감이 걸린 보도자료나 기사를 쓸 때면 매번 그랬다. 건너편 자리의 동료는 그때마다 안쓰럽다는 표정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밥은 먹고 일하자. 이것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 말을 들으면, 모든 일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편해졌다. 삶의 우선이 그냥 먹고사는 것이라면 문장 하나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이나, 기사 제목을 재는 일이 큰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차디찬 김밥 한 줄과 바나나 우유를 사들고 와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하곤 했다.


수업이 끝나고 늦은 퇴근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이전보다 좋아요'란 대답에 들어있던 껄끄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불안정안 직업에 대한 불안함, 일정치 않은 수입에 대한 것일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나서 순수한 마음으로 즐길 수 없음을 자책하는 것인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같은 마법 같은 주문을 누군가 건네줘서 가벼운 마음으로 결론을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홀로 모든 것을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 이 일의 가장 큰 단점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누구나, 여행작가>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여행 작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 매거진에서 다 못한 여행 작가 이야기는 브런치에 마저 풀어놓겠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세계 여행기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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