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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Sep 10. 2019

용기에 대하여

조국으로 인해 들끓었던 한달이었다. 청문회 개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더니 야당은 그다지 설득력있게 장관으로서의 부적격성을 밝히는 데 실패하였고 대통령은 임명권을 행사하였다. 돌이켜 보면 날마다 떠들썩하게 했던 것들의 실체가 뭐였는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조국'이라면 죽자살자 달라들던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일부 언론의 함량미달만 드러나고 말았다. 청문회는 무뎠지만 검찰의 칼날은 서슬퍼렇다. 과거 살아있는 권력에는 애써 눈을 감았던 행태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조국'이 아니라면 검찰이 나설 일도 아니었을 성 싶은 사건에 대검특수부가 대대적으로 동원되어 전광석화처럼 내달리는 '용기(?)'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함을 자아낸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검찰총장의 결기에 따른 일로 보자면 그 '조직'에 충성하는 일이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검찰은 그 '조직'에 대한 충성으로 똘똘뭉쳐 오지 않았던가? 물론 '정권의 개'란 말이 괜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죽은' 정권은 그야말로 먹이감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속성도 결국은 '조직'에 대한 충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작금에 검찰이 개혁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장관은 장관의 일을 하고, 검찰총장은 검찰총장의 일을 하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다운 화법이다. 그의 결단은 여론보다는 신념을 따른 것이고 맞바람이 불더라도 가야할 길을 가겠다는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루이제 린저는 용기란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인 검찰을 그대로 두고는 정치개혁은 사상누각일 것이고 검찰을 정치로부터 분리시키는 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는 결단을 보여준 것이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해야한다는 것도 검찰권을 마음대로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져야 할 것이다. 검찰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투운동을 촉발한 서지현검사의 얘기다. 애써서 제도적 틀을 만들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하루 아침에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다른 권력기관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민주화이후 애써 쌓아놓은 노력의 결과물들이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정권만 바뀌면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한번의 개혁으로 본질의 변화를 가져가는데는 한계가 있고 우공이산처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실행하면 태산처럼 움직이기 어려운 과제도 결국에는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헛된 것이 아니면 좋겠다. 그리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 질적인 변화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런 측면에서 진흙탕 싸움을 마다않고 검찰개혁을 위해 남은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조국의 '용기'도 높이 살 만하다. 정권에 기웃거리며 한자리 하고 싶어서 달려드는 사람 중의 하나로 보이지는 않는다.


서울대 학생회가 조국 반대 촛불을 들었다고 한다. 그네들의 분노의 핵심은 입시에 사용된 스펙쌓기가 반칙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동안 공정과 정의를 외치던 조국의 그림자에서 그런 반칙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항간에는 요즘 처럼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쉬운 때도 없다는 얘기가 있다. 들어가는 방법이 수도 없이 많아 길만 잘 찾으면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길을 찾아가는 데 돈이 많은 든다는 것이다. 대학입시가 수시전형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나타난 결과다. 수시전형은 내신성적과 스펙쌓기를 통한 학생생활기록부 관리가 핵심이다. 스펙쌓기는 부모의 영향력이 온갖 방면으로 동원되고 스카이캐슬과 같은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해야 성공한다. 학생생활기록부에 스펙 한 줄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수백만원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학교대로 입시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내신성적이 좋은 소수에게 표창장 밀어주기가 성행하고 있는 것은 다 알려진 비밀이다. 그러다 보니 금수저 전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고 금수저간의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에게만 일류대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지역균형선발이라는 제도도 도입취지와는 달리 서울에서 내신성적을 내기 어려운 부유층들에 의해 편법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요컨대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들의 상당수는 이러한 배경을 갖고 들어갔다고 얘기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자신은 정시로 들어왔으니 아무 거리낄 것이 없다고 하는 학생이 있을 수 있으나 치열한 정시 경쟁을 뚫는 것이 부모의 재력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일진대 정시로 들어갔다고 하여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정시라 하더라도 공정한 경쟁일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이제 입시제도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전형이 되어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조국 딸의 반칙 논란을 보며 떠오른 것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누구라도 기회만 되면 편폅과 반칙에 기꺼이 동참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의 입시제도이다. 이 구조화된 불공정의 시스템을 통해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공정과 정의를 논하려면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 불공정의 구조를 혁파하라고 외쳐대야 마땅할 것이다. 자신들의 구호가 양심의 명령에 따른 것인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화가 난 것인지 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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