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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Jun 01. 2020

사모펀드대책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하여

신문지를 운동장에 깔아 놓고 하는 게임이 있다. 호각이 울리면 신문지 위에 올라가야 한다. 물론 신문지에 모두가 올라갈 수는 없고 올라갈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아웃된다. 다음 번에는 신문지를 반으로 접고 호각이 울린다. 그 다음엔 다시 신문지를 한번 더 접는다. 서바이벌 게임이 치열해진다. 시장이 작아지면 경쟁력 있는 소수만 살아남게 된다. 지금 사모펀드들에게 요구되는 게임이다. 적격투자자의 최소투자금액을 1억에서 3억으로 대폭 올려놓다보니 발생하는 일이다. DLF,라임사태를 겪으며 사모펀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도, 은행의 블완전판매행태에 제동이 걸린 것도 또 다른 원인일 것이다.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소규모자산운용사들은 대개 시장의 성장을 보고 진입한 자본력이 취약한 회사들이다. 일부 선도적인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수익기반 또한 취약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덕에 최근 몇년 사이에 전문사모 자산운용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그런 가운데 라임사태가 발생하다보니 소규모자산운용사들은 대개 치킨게임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라임시태에 대한 금융감독당국 책임론이 일자 서둘러 내놓은 사모펀드종합대책은 5호 담당제를 연상케 한다. 사모펀드의 이해관계자들인 투자자, 자산운용사, 판매회사, 신탁회사, 신용을 공급하는 PBS가 촘촘하게 견제하고 감시하는 체계를 만들고 감독당국은 그걸 잘 하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 골자다. 거기에다 다시는  사모펀드가 라임펀드처럼 커질 수 없도록 하는 규제장치까지 동원되었다. 금융당국이 모험자본의 공급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다고 자화자찬하던 사모펀드에 대해 전방위적 압박에 들어간 것이다.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a shower)’라는 말이 있다. 온도조절을 하려고 온수밸브를 열다보니 과도하게 돌려서 물이 너무 뜨거워지고 그러자 냉수밸브를 열어 이번에는 너무 차가와지는 것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빗대어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사모펀드정책을 보아도 딱 이렇다. 과도하게 완화정책으로 가다가 문제가 생기니 앗뜨거 하면서 반대방향으로 과도하게 반응한다. 사모펀드시장의 성장을 기대하고 진입한 회사들 입장에서는 손님 받아놓고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격이다. 이런 게임이라면 이 시장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플레이어들도 있을 것이다. 등록심사할 때는 장기사업계획을 요구하면서 갑작스레 룰을 바꿔 사업계획을 무력화하는 일은 온당치 못하다. 거기에다 그 룰의 변경에 타당성도 설득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크다.

 



투자에는 투자자책임의 원칙이 있다. 요즈음에는 그 원칙마저 흔들린다. 은행들은 문제가 생기면 사적화의 형식이라며 돈을 물어주기 바쁘다. 법령상 금지된 수익보전행위에 가까운데 감독당국은 이런 행태에 비조치의견이라는 면죄부를 줘가면서 투자자의 모럴해저드를 조장한다. 요즘 은행에서 사모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은 걱정이 없다고 한다. 알아서 물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일관성있게 강조되왔고 법원이 판례로 뒷받침해온 투자자책임원칙은 이제 뒤켠으로 물러앉게 되었다.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어젠더가 투자자책임이란 어젠더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대법원 판례까지 나온 키코건에 대해 분쟁조정으로 투자자 손을 들어주는 형국이니 아연 실색이다. 세금을 나눠주는 것에 대해서는 포퓰리즘이라며 각을 세우던 보수언론들도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시 외환위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제도나 정책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팬들럼처럼 스윙이 너무크면 시장참여자들은 종잡기 어렵게 된다.

 



펀드를 판매함에 있어 투자자들의 요구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위험대비 수익률을 감안해 높은 수익률 기대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고객의 요구수익률을 넘어서는 부분의 수익은 판매회사가 다 가져가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펀드가 감내하는 리스크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투자자들의 수익률이 같아지도록 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대수익률에 비해 과도한 리스크를 감수하거나 부담하는 리스크에 비해 너무 적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투자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투자할 때는 위험 대비 수익률을 꼼꼼히 따져보는 금융기관들이 투자자들에게는 그 수익률에 만족하니 넘어서는 수익은 자신들이 갖고 리스크는 투자자들에게 전가하는 셈이다. 어느 경우나 투자자들은 부담하는 리스크에 비해 적은 수익을 가져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역으로 펀드를 구조화시켜서 판매하는 금융회사들은 부담하는 리스크에 비해 과도한 수익을 취하는 것이다. 불완전판매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투자자들이나 금융회사들이나 자신들이 부담하는 리스크와 수익을 적절하게 나누어 갖는 '분배'의 문제이다. 이 '분배'의 문제를 해결함에는 세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포퓰리즘이 등장할 이유도 없다. 금융회사의 '탐욕'을 제어하는 장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금융회사의 탐욕은 많은 경우 금융회사의 몰락을 초래했고 금융회사의 몰락으로 인한 시장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세금이 투입되어 왔다. 다시 말하자면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금융회사의 탐욕을 제어해야만 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금융감독당국은 투자자들이 봉이 되지 않도록 탐욕을 규율하는 방법을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금융소비자보호'라 하면서 금융회사 주머니 털 생각부터 할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와 투자자간의 리스크와 수익 배분에 밸런스를 잡는 일부터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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