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이야기 4
올바르지 못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경우를 당했을 때 사람들은 부당하다고 인식한다. 그 부당함이 과도할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흔히 갑질로 표현되는 부당함은 계약관계 등에 있어 권력이나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고 공권력은 그 부당함을 제어하는 기재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참고 견디거나, 참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되면 공권력에 하소연하게 된다. 그러나 민초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포청천과 같은 판관은 드라마에나 등장할 뿐이고 현실에서는 공권력에 하소연하더라도 그 억울함을 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법률적 다툼에 있어서는 돈의 힘이 작용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현정권에 들어서는 청와대에 직접 청원하는 프로그램에 민초들의 하소연이 집중되고 있다.
버닝썬 사건의 시작은 그 억울함의 호소였다. 유흥업소에서 당한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 공권력이 억울함을 풀어주기는 커녕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그 배경에는 유흥업소와 공권력이 유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진행되는 것을 보면 피해자의 억울함은 빙산의 일각이었고 '승리'라는 성공한(?) 연예인 사업가의 뒤에 감추어져 있던 추악한 진실들은 카더라 통신으로 전해지던 것들이 사실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온갖 더러움의 종합선물세트에는 도대체 어떤 것이 더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위 사건과 관련하여 최근 인권위원회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확인하면서 책임자급 경찰관에 대한 '주의조치'와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을 '권고'하였다고 한다. 인권위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출동한 경찰관들의 초동조치가 적절하지 않았으며 경찰들이 작성한 현행범인 체포서에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사진영상을 보면 공권력이 '양아치'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한 패거리처럼 보인다. 보고서에는 허위내용을 기재했다고 하면서 '주의조치'를 권고하는 인권위는 누구를 위한 인권위인지 아연실색하다. 해당 경찰관들을 현행범으로 고발해 수사와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인권위는 공권력에 대해 여러 차례 '권고'를 해왔지만 그 '권고'를 '수용'한 경우가 또 얼마나 되는가? 권고는 권고일 뿐, 그냥 지나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행태가 아니었나? 인권은 '권고'로 강화되지 않는다.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신상필벌이 답이다. 지금이라도 관련 경찰관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권고'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마오쩌뚱이 한 말이다. 민주주의에 있어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국민들로부터 나온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국민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은 보통명사로만 존재할 뿐이고 힘없는 민초들은 '권력'을 휘두르는 대상이 된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적당히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권력기관들의 속성이다.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외치던 검찰은 제식구들 감싸기에 바쁘고 '사법부'는 균형추를 제멋대로 조정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디부터 바꾸어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다. 그 '부당함'은 움직이지 못할 산처럼 건재하고 '억울함'은 당하는 사람들의 피해의식만을 키워온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윤리'는 교과서에나 있는 옛 성현들의 이야기이고 현실에선 외면하라고 교육받는다.
부당함의 반대말은 공정함이다. 공정함은 과정과 절차에 반영되어야 하고 또한 그 결과로 드러나야 한다. 또한 그 공정함은 사람으로서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인 '인권'을 근간으로 하여야 한다.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인권 디렉터를 임명했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기 위해서도 인권을 경영의사결정의 주요한 요소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인권위에서도 '인권경영'의 매뉴얼을 제시하고 공기업들을 중심으로 인권경영 체계를 구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인권'은 더 이상 Trade-off의 대상이 아니다. 공정함은 적당히 타협해서는 달성되지 않는다.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비롯되는 직장내 갑질이 있다. '부당한 업무지시'는 지시를 내리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시를 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경우 그 '부당함'을 인식하지 못한채 행해지고 있다. 자신들도 직장생활에서 상사로부터 보고 답습한 행태이다. 자신들이 하급사원일 때는 앞뒤 안가리고 수행했던 일의 행태들이 지금에서는 상당부분 '부당한 지시'로 분류된다. 이러다 보니 직급간에 인식의 괴리가 크다. 윗직급의 사람들은 부당한 지시라고 인식되는 부분이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당한 지시를 '부당하게' 부당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식이다. 사적인 심부름도 '너와 나 사이에 이런 정도도 못해주냐'는 식의 인식이 강하다. "해외여행길에 어디 들르거든 뭘 좀 사다줘라"고 하면 부하직원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거기를 들러서 물건을 '적당한'가격에 사와야 한다. 회사에서 간단한 파티를 하면 뒷정리는 하급사원들의 몫이다. 이것을 '당연하지, 나도 과거에 그랬는데'라고 인식한다. 부당한 업무지시의 유형은 지식산업이든 외식산업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그 유형이 대동소이하다. 일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양태만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자신이 '부당한 지시'를 하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위의 공권력에 의해 발생하는 '현저한' 부당함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에 터잡고 있는 '은근한' 부당함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았나 반성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