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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May 06. 2022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마이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88화 마이산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된 후 어느날 남쪽으로 민심을 살피러 떠났다.

남으로 내려오다가 이 곳 진안에 이르러 두개의 바위 봉우리를 보고 말했다.

"꼭 말의 귀를 닮았구려!"

그래서 그 후로 말의 귀란 뜻의 마이산이 되었다.

원래는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湧出峰)이라 부르던 산이었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마이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왕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 되고 진리가 되는 세상 이야기다.

지금도 왕이라는 단어는 무소불위의 상징처럼 쓰인다.

누군가는 손바닥에 王자를 세기고 다닌 끝에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동네 할머니가 써 주었다는 王자.

사실이라면 그 할머니야말로 정말 영험한 무속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그렇다고 하더라도 왕처럼 통치해서는 안되는 세상인데 지금 하는걸 보면 걱정이 아닐수 없다.



각설하고 본격적인 산행이야기를 해보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봄날.

아내와 함께 신비로운 산 마이산을 찾았다.

마이산은 흔히 말의 귀를 닮은 두개의 암봉만 생각하기때문에 단조로운 산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높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마이산의 산세는 크다.



그래서 산행코스별 난이도도 다양하다.

그중에 우리 부부는 중간 난이도의 남부주차장에서 고금당으로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주차비는 무료다.

그러나 무슨 입장료인지는 모르겠지만 1인당 3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권에는 '문화재보호구역입장권'이라고 쓰여있다.

입장권의 빌미가 된 문화재는 보물로 지정된 금당사 괘불탱화가 있다고 한다.

괘불탱화는 흔히 불상 뒤에 걸려있다.

그래서 쉽게 보지도 못하는 보물이다.

그러니까 보지도 못하는 보물을 우리가 관리하는 셈이다.

아무튼 입장료를 내고 산길에 들어선지 10여분만에 삼거리가 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금당으로 가는 길과 비룡대방향으로 가는 길로 나뉘는 삼거리였다.



삼거리에서 습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파른 암벽길이 나왔다.



그 암벽에 올라서자 연초록의 바다가 펼쳐졌다.

그리고 숨막힐듯 푸르른 연초록의 바다 저 건너에 암마이봉이 살포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오늘 올라야 할 봉우리다.



세상은 온통 연초록 풍경이다.

땅위의 모든 공간이 연초록으로 가득 채워진 풍경이다.

회색도시의 우중충함에 찌든 도시인들의 눈을 정화하기에 이만한 풍경 말고 또 있을까?



그리고 저 아래 오늘 산행 시작점인 남부주차장이 보인다.

아직까지는 약간의 가파른 암벽길이 있었지만 걷기좋은 길이었다.



산행시작 후 40분.

살방살방 걷기 좋은 산길 덕분에 돌길을 싫어하는 아내는 신이 났다.

이 호젓한 산길에 산객은 우리 부부뿐이다.

그래서 그냥 등산로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잠시 쉬어간다.



간식을 먹고 다시 걷기 좋은 아기자기한 산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니 비룡대 아래 전망바위에 도착했다.

멀리 산 중턱에 고금당이 보인다.

초록바다와 같은 숲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이 마치 보물 처럼 신비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고금당은 옛날 나옹선사가 수도했다는 굴이 있는 암자라고 한다.

원래는 금당사가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옛古자를 써서 고금당이라 부른다고 한다.

오늘 산행 계획은 고금당을 경유해서 오를 예정이었는데 아랫쪽 삼거리에서 무심코 많이 다니는 길을 택하는 바람에 지나쳐 오고 말았다.



진행 방향쪽으로는 마이봉이 어느새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앞쪽이 오늘 우리가 올라야 할 암마이봉이다.

그리고 뒷쪽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봉우리가 숫마이봉이다.



이제 전망바위에서 비룡대를 오른다.

비룡대는 그렇지않아도 천혜의 조망점인데 정자까지 세워 놓았으니 천하를 내려다 볼 수 있을 것 같은 위용이다.



전망바위에서 비룡대에 오르는 철계단이다.



조금 아찔하기는 하지만 둥그스름한 바위를 둥글게 올라가는 계단이 이채롭다.

그 높이 또한 과하게 높지 않아서 스릴을 만끽하기에 안성마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로프를 설치해서 타고 오르는 재미를 느낄수 있도록 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요즘 산들은 자꾸 그런 스릴을 즐길거리가 없어지고 있다.

그만큼 안전해지기는 했지만 산행이 밋밋해진 것이다.

철계단을 올라서자 바로 아래에 조금전 전망바위가 보이고 멀리 고금당이 보인다.

고금당 뒤 가운데 봉우리가 광대봉이다.



비룡대다.

이 비룡대가 있는 봉우리는 나봉암이다.

높이가 527m로 봉이라 부르지 않고 암이라고 부르는걸 보면 아마도 바위 이름인듯 하다.

그런데 굳이 꼭 정자를 지어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정자가 없어도 온 천하를 다 내려다 볼 수 있을듯 한 바위인데 말이다.



비룡대에서 보는 마이봉은 마치 돛대 같았다.

실제로도 봄에는 안개 속의 두 봉우리가 쌍돛대를 닮았다고 해서 돛대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마이산은 설악산이나 금강산처럼 사계절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여름에는 숲속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 덮인 들판 가운데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하여 문필봉.

그러고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산임에는 틀림없는것 같다.



아무튼 마이봉은 보는 방향에따라서 다양한 모양을 연출하고 있었다.

귀가 두개가 되었다가 하나로 되고, 사이가 벌어졌다가 좁아졌다를 반복하고, 그때마다 신비한 마이봉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이산은 진안고원지대에 있다.

우리나라에 고원이 있다는게 좀 생소하기는 하지만 이곳의 고원의 높이는 300~500m.

면적 290㎢라고 한다.

이 진안고원의 마이산을 중심으로 산줄기는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으로 나뉘고 물줄기는 금강과 섬진강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원에 고속도로가 뚫리고 큰 도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어서 우리의 상상 속의 그런 고원 느낌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길은 어느새 흙길로 바뀌어 있다.

흙길에 간간이 나오는 암봉길.

그래서 지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까칠하지도 않은 말 그대로 아기자기한 등산로가 계속되고 있다.



산행시작 2시간쯤 지날 무렵 두꺼비 처럼 생긴 바위 하나가 나왔다.

그 바위 아래에는 바위가 쓰러지지 않게 무수히 많은 나무를 받쳐 놓았다.

산행중에 가끔 보는 풍경이다.

길을 가다가 돌무더기에 돌 얹는 기분으로 너도나도 나무를 받친것이다.

집단 재미 놀이를 한 셈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피톤치드가 가득할것 같은 연둣빛 산길을 걷는 이 기분을 그 누가 알까?

걸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상쾌함이다.

그런데 피톤치드 뿐만 아니라 싱그러운 봄 산 특유의 향기도 날텐데 코로나 후유증으로 전혀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기사로만 접하던 코로나 후유증을 내가 겪을 줄이야.



말 그대로 눈이 부시게 푸르른 길은 오르락 내리락 계속 되고 있다.

이쯤이면 올라야 할 암마이봉이 가까워질만한데도 암마이봉은 내가 진행하는 방향과 다른쪽에 있다.

그래서 결국 산에서 인터넷 검색을 한다.

세상 참 좋다.

방향은 그래도 맞게 오르고 있단다.



눈부시게 푸르른 연두의 터널 아래는 얽키고 섥킨 뿌리가 계단을 만들고 있었다.

그 뿌리계단을 걸어 이제 봉두봉을 오른다.



봉두봉에 올라서자 탑영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설적이게도 탑영제는 마치 연둣빛 바다에 떠 있는 섬 같다.

600m급의 산정에서 보는 풍경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완벽한 연초록의 바다다.

이제야 비로소 이곳이 고원지대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걸어온 방향이다.

더욱 멀어진 고금당과 비룡대도 보인다.



봉두봉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헬기장 방면으로 오른다.

여기서 암마이봉을 가기 위해서는 헬기장으로 돌아서 가지않고 옆길로 바로 가는 길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확신이 없어서 그냥 군자대로행을 택했다.



헬기장을 지나서 암마이봉까지가 의외로 지루했다.

그 중간에 마침 점심먹기 좋은 의자가 나왔다.

거기서 오늘 산행중에 유일하게 비룡대에서 만났던 부부를 또 만났다.

그분들은 쉼을 끝내고 일어서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햇빛을 통과한 연두색 나뭇잎이 꽃보다 아름답다.

그래서 마치 연두꽃 꽃길을 걷는 기분이다.



이제 본격적인 암마이봉 오르는 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등산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흙길이 아니라 돌계단이다.



그렇게 돌계단을 오르자 거대한 벽이 갑자기 앞을 가로 막는다.

암마이봉 하단부에 다다른 것이다.



바위라고도 할 수 없고 흙이라고도 할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의 암벽이다.

원래 이곳은 1억년 전까지 호수였다고 한다.

이때 모래나 자갈등이 대홍수때 흘러들어 수압에 의해서 수성암이 만들어졌다.



그 수성암은 지금으로부터 7천년쯤 전에 지구의 지각변동에 의해서 융기되어 지금의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기도 한단다.



이제 암마이봉 암봉 아래를 돌아 간다.

바위가 마치 거대한 오래된 콘크리트 벽같다.



그렇게 돌계단과 목계단이 번갈아 이어지더니 뜬금없이 다시 흙길이 나왔다.

아래에서 보는 거대한 바위 암봉인 암마이봉의 중간쯤에 이렇게 숲이 있고 흙길이 있다는것이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드디어 본격적인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450m다.



그렇지만 수직에 가까운 목계단과 쇠줄타기를 해야한다.



그렇게 힘든 오름을 하는동안 건너편 숫마이봉이 조망되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는 숫마이봉은 신비스럽기도 하고 요상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숫마이봉은 아버지, 암마이봉은 어머니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어떻게 부르더라도 그 의미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느끼는 느낌이란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것 같았다.



북부주차장이다.

마이산은 천왕문을 깃점으로 남쪽과 북쪽에 주차장이 있다.



가장 완벽한 숫마이봉 뷰다.

매끈한 수직의 암봉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마치 보송보송한 푸른 털 같다.

역시 자연만이 만들수 있는 완벽한 예술품이다.



이제 마지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그 계단이 끝나가는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

숫마이봉을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전망대에서는 숫마이봉 중간에 있는 화엄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화엄굴에는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의 꿈속에 남성을 상징하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간쯤에서 물이 솟고 있었다.

부부는 꿈속의 그곳을 찾기위해 전국을 헤메고 다녔다.

그러다 찾은 곳이 이곳 화엄굴이란다.

부부는 화엄굴에서 기도를 드리고 득남을 했다."

그 후 아들을 낳는 효험뿐아니라 숫마이봉에서 나오는 강한 기와 화엄굴에서 나오는 석간수를 마시면 입시와 사업번창등의 행운을 가져온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마이산에는 신비한 산 모양때문인지 다양한 설화가 얽여 있다.

다음은 마이산이 생겨난 설화다.

"옛날에 죄를 지어 하늘나라에서 쫒겨난 산신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두 아이를 낳고 억겁의 세월동안 속죄하며 살았다.

덕분에 천상계로 승천할 기회가 다시 열렸다.

그래서 남편 산신이 아내 산신에게 하늘로 올라갈 때가 되었음을 알리고 승천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면 부정을 탈것이니 한 밤중에 승천하자고 한다.



그러나 아내 산신은 한 밤중은 무섭고 피곤하다며 새벽에 승천하자고 한다.

결국 아내의 의견을 들어 새벽에 승천을 시도 했다.

승천하기 위해 하늘을 향해 산신이 쭉쭉 솟아 올라가고 있을때 아랫마을의 부지런한 아낙네가 치성을 드리러 우물을 찾았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놀라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부정을 타게 된 산신부부는 승천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그 산이 지금의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란다.



드디어 정상이다.

밑에서 보면 거대한 암봉일뿐인데 신기하게도 정상은 흙이 있고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마이산 정상은 두개의 큰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 동쪽을 수마이봉(681.1m), 서쪽을 암마이봉(687.4m)이라고 부른다.

그 두개의 암봉중에서 오를 수 있는 암봉은 암마이봉뿐이다.



정상석을 지나 남쪽 방향에는 또 하나의 전망대가 있다.



여기에서 다시 올라오는 중에 만났던 부부를 또 만났다.

워낙 산객이 없어서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인천에서 오셨다고 한다.

연세가 들어보여서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물어보았더니 70대 중반이라고 하신다.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정상에는 어느새 우리 부부뿐이다.

덕분에 마음 편히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산길에 든다.

정상에서 내려설때는 항상 아쉬운 감정이 뒤따른다.

오를때는 감격하고 환희에 차지만 내려갈때는 어김없이 허전함을 느낀다.

지금 우리나라는 권력 인수인계가 한 참 진행되고 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는데.

어떤이는 권력을 잡았다고 안하무인이고, 어떤이는 권력을 잃었다고 안절부절이다.

어차피 무한하지 않는 세상 이치에 왜 그리들 일희일비 하는지 모르겠다.

하기는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인간사만 그런것도 아니다.

어김없이 돌고도는 자연의 섭리가 다 그렇다.

그 중심에는 계절이 있다.

그 계절의 시작은 봄이다.

계절이 한 바퀴 돌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그 몸에 또 하나의 생채기를 낸다.

그 생채기는 나이테가 되어 실타래처럼 살아있는 것들의 몸을 문신처럼 휘감는다.



하산은 올라왔던 방향의 반대편 천왕문 방향으로 한다.

천왕문 방향의 하산길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래서 정상에서 20여분만에 천왕문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천왕문은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성계가 고려말 남원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귀경하는 중에 왕조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곳에 돌탑을 쌓은 후 꿈속에서 하늘로부터 나라를 다스릴 권한, 즉 금척을 받은 후 왕이 하늘로 오른다는 의미로 '천왕문'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천왕문에서 숫마이봉을 150m쯤 오르면 나오는 화엄굴이다.

암마이봉 정상 전망대에서 보았던 화엄굴이다.



화엄굴은 옛날 어떤 스님이 이 굴에서 연화경과 화엄굴이라는 두 경전을 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거창한 이름의 명성에 비해서 굴은 의외로 왜소했다.



천왕문에서 이제 은수사와 갑사 방향으로 하산한다.



1억여년전에 호수바닥이 지각변동에 의해서 위로 솟구쳐서 생겨났다는 마이산 암질이다.

자갈을 버무려놓은 콘크리트같다.

오랫동안 퇴적된 퇴적암인데 알갱이가 굵어서 역암이라고한단다. 



은수사에서 본 천왕문 고개다.



은수사와 숫마이봉 전경이다.

사실상의 산행이 끝난 지점이다.

은수사는 숫마이봉 바로 밑에 있는 사찰로 이성계가 이곳을 지나다가 물이 은처럼 맑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는 섬진강의 발원지라는  약수가 있다.



그리고 탑사 전경이다.

이갑용이라는 선사가 1900년무렵부터 1957년 죽을때까지 108기를 쌓았다고 하는 탑사는 생각보다 절의 역사는 깊지않다.

현재 남아있는 탑은 80여기로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있다고 한다.



섬진강 발원지.




타포니.

물이 침투하여 풍화작용에 의해서 모래와 자갈등이 이탈하면서 생겨난 홈을 타포니라고 한다.



마이산 자락에 있는 은수사와 탑사를 지나 이제 주차장으로 향한다.



정상에서 봤던 탑영제다.



이름처럼 탑이 비치는게 아니라 마이산이 비치고 있다.



오늘 산행의 끝 지점인 금당사다.

쉬며 놀며 5시간이 걸렸다.

보통 3시간 30분쯤 걸린다고 하는데 체력이 저질이기도 하지만 시간 개념없이 산행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탑사에서 바로 암마이봉만 오르지 않는다면 마이산은 생각보다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 산행은 아기자기 재미는 있었던 산행이었다.




*산행코스: 남부주차장 ㅡ 고금당삼거리 ㅡ비룡대 ㅡ봉두봉 ㅡ암마이봉정상 ㅡ천왕문 ㅡ은수사 ㅡ탑사ㅡ금당사 ㅡ남부주차장(7.3km. 천천히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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