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87화 선운산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부르는 호남의 대표적인 명산이자 명승지다.
선운이란 구름속에서 참선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도솔이란 우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면 극락세계쯤 되는 하늘을 말한다.
그래서 선운산과 도솔산.
그 어느 이름으로 불려도 샹그릴라 같은 이상향이라는 의미에는 일치하는 것 같다.
그 선운산 등산을 위해서 산행 기점인 선운사에 들어서자 그 유명한 선운사 동백이 반갑게 맞아 준다.
거기에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새하얀 목련의 점잖은 목례는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듯 했다.
새하얀 목련과 진홍빛 동백 그리고 노란 수선화가 반겨주는 천년고찰 선운사 절마당엔 이른 봄마중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나도 산행에 앞서 그 봄꽃들로 인해서 봄기운이 감도는 선운사 경내를 천천히 음미하듯 한 바퀴 돌았다.
선운사는 1,500여년된 절이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문화재들처럼 근현대에 와서 거의 대부분 소실되어 조선 후기에 또는 현대에 다시 지은 건물들이다.
그렇게 우리나라 문화재는 아주 옛날에는 오히려 잘 보전되어 왔다.
아마도 우리 민족끼리의 전쟁에서는 비교적 불교 유적은 존중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외세의 침입으로인한 전쟁에서는 많은 손실을 입었다.
특히 일본 놈들의 임진왜란때와 정유재란때 많은 손실을 입었다.
뼈속까지 나쁜 놈들이다.
그래도 현재 선운사와 산내 암자에는 보물이 무려 5점, 중요 문화재가 11점이나 보관되어 있다.
그만큼 선운사와 선운산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운사 창건은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 백제의 고승 검단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그중에 신라 진흥왕의 창건설화는 이렇다.
진흥왕이 왕좌를 버리고 이 곳 진흥굴에서 첫날밤을 보내는데 꿈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왔다고 한다.
그 꿈에 감동한 진흥왕이 중애사라는 절을 짓게 된다.
그 중애사가 현재의 선운사라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354호 장사송.
선운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멋진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반송의 일종으로 수령이 약600년이나 되었다는 장사송이다.
그렇다면 조선 초기부터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하고도 그 할아버지에 할아버지가 보고 자랐을 나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 졌다.
좀 독특한 장사송이란 이름은 이 곳의 옛지명이 장사현이라서 옛날부터 그렇게 불려왔다고 한다.
또 진흥굴 앞에 있다고 해서 진흥송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그 장사송 뒤로는 진흥굴이 있다.
애초에 왕위보다는 불도에 관심이 많던 신라 진흥왕은 부득히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결국 왕위를 물려주고 이 곳 선운사로 길을 떠난다.
그때 진흥왕이 좌변굴이라 불리던 이 굴에서 불도에 정진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좌변굴이라는 이름이 진흥굴로 불리게 되었단다.
진흥굴은 깊이가 10여미터의 자연석굴로 생각보다 볼품은 없는 굴이었다.
아무튼 이 설화가 사실이라면 그 호화로운 자리를 내려 놓고 출가한 진흥왕은 왕자의 길을 버린 석가모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위대한 선각자가 아닐까 싶다.
지금 본부장(본인 비리, 부인 비리, 장모 비리)비리를 딛고 권력을 획득(?)한 윤석열 당선자와 권력욕에 눈이 벌개진 위정자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기레기로 대변되는 언론 권력과 편파부당한 칼을 휘두르는 검찰 권력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절대 그럴리는 없지만.
'하나회'라는 말은 엄청난 사회적 질타를 받았는데 왜 '윤석열 사단'이라는 말이 나왔을때는 사람들이 무관심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찌보면 군 조직보다 더 무서운 검찰 조직을 움직이는 세력인데 말이다.
이야기가 조금 삼천포로 빠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진흥굴에서 다시 산책하듯 15분쯤 오르면 도솔암이 나온다.
전국에는 도솔암이란 이름의 암자가 많다.
그중에 단연 으뜸은 이 곳 도솔암이 아닐까 싶다.
깨어나지 못한 중생이 도솔이란 심오한 뜻을 어찌 알까마는 도솔암이란 어감 만큼은 참 좋은 것 같다.
도솔산.
도솔암.
도대체 도솔이 뭐길래?
그래서 검색을 해본다.
불교에서 하늘에는 욕계 (欲界)와 육천(六天)이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그 가운데 넷째 하늘을 말 한단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고,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에 해당하는 넓이의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1유순은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그 거리를 보통 11~15㎞쯤이라고 하니까 대략 150만 km 이쪽저쪽이 될것 같다.
지구의 둘레가 4만km쯤이란걸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으로서는 상상 불가의 크기다.
그 도솔천에는 칠보(七寶)로 된 궁전이 있으며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도솔에 대한 검색 결과다.
불교의 심오한 이야기는 정말 어렵다.
도솔암에서 다시 도솔암 내원궁으로 오른다.
기암 절벽 위에 자리잡은 도솔암 내원궁은 상 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내원궁에서는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장관이었지만 스님의 구성진 불경소리가 더욱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여기서 내원궁은 하늘의 도솔천에 있다는 궁을 의미한다.
도솔천에는 내원과 외원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외원은 천인들이 오욕을 즐기는 곳이고,내원은 미륵보살이 머무르는 곳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도솔천 내원궁에서 호명보살로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 천상의 세계인 도솔천에 태어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굴까?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정진하여 덕을 많이 쌓은 사람, 깊은 선정을 닦은 사람,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보살을 염불하는 사람, 계율을 지키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은 사람, 널리 복업을 쌓은 사람, 죄를 범하고서 미륵보살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 미륵보살의 형상을 만들어 꽃이나 향 등으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사람]
참 쉽고도 어렵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내원궁에서 내려와 거대한 바위 절벽을 돌아서면 불가사의한 마애불이 나온다.
보물 1200호다.
고려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알려진 도솔암 마애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상 중의 하나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근엄하지 않고 수수한 얼굴표정이 좋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신비한건 마애불의 명치 끝 감실에 넣었다는 검단선사의 비결록에 얽힌 이야기다.
조선말 전라도 감찰사 이서구가 그 감실을 열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비결록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예언이 쓰여있었단다.
그러니까 실제로 이서구가 그 글귀를 직접 열어 보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1000년도 훨씬 전에 한 예언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이제 마애불을 돌아서 용문굴로 오른다.
경사도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400여m의 거리에 있어서 쉽게 오를 수 있다.
용문굴이다.
용문굴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선운사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검단선사가 절을 세울 목적으로 선운산을 찾았다.
그런데 선운사 자리의 연못에 용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고 한다.
검단선사는 그 용을 쫓아냈다.
그때 그 용이 급히 도망치다가 이 바위에 부딪히며 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용문굴은 대장금에서 장금이 어머니 돌무덤 촬영지이기도 하다.
용문굴을 지나 이제 낙조대와 천마봉을 향해서 간다.
용문굴에서 낙조대는 500m거리에 있다.
낙조대가 보인다.
계단 구간만 조금 힘들게 오르면 첫번째 목적지인 낙조대다.
낙조대의 높이는 335m이지만 여기서 보는 서해 낙조가 아름답다고 해서 낙조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론 일반인이 어두워지는 낙조를 즐기기엔 쉽지 않다.
그러나 꼭 낙조가 아니더라도 올망졸망한 암봉과 주변 조망이 아름다운 곳 이었다.
낙조대에서 이제 천마봉으로 이동한다.
천마봉은 높이가 336m로 낙조대보다 1m가 더 높다.
그래서 능선길로 거의 수평이동하면 된다.
천마봉은 높이는 낙조대와 비슷하지만 선운산에서 가장 조망이 뛰어난 봉우리다.
특히 도솔천 계곡과 도솔암 그리고 내원궁과 마애불 바위까지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저 암벽 사이에 조금 전 내가 올라왔던 길이 있다.
용문굴로 오르는 길이다.
산에서는 설마 길이 있을까 싶은 암벽 사이에도 신기하게도 대부분 길이 있다.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별칭이 붙은 멋진 장면이다.
이 풍경 위에 운무만 덮인다면 신선 기분은 덤으로 따라 올 듯한 풍경이다.
아무튼 이 풍경을 앞에 두고 넉넉하게 쉬어 간다.
넉넉한 쉼을 끝내고 이제 배맨바위를 향해서 간다.
그런데 낙조대를 돌아서자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 막는다.
말 그래로 병풍바위다.
배맨바위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병풍바위에 설치된 계단을 올라야 한다.
구름다리 같은 철계단이다.
108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대둔산의 삼선계단 느낌이다.
그렇지만 병풍바위에만 올라서면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이다.
능선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니 배맨바위에 도착했다.
낙조대에서 배맨바위는 1.4km거리에 있다.
비교적 안전하게 올라갈 수도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냥 우회를 했다.
그대신 다른 산객들의 멋진 포즈를 담는다.
배맨바위.
극성스런 사람들이 올라가서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다.
내가 봤을땐 코브라 머리 같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보면 배를 매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배맨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얼만큼 진행하다가 뒤돌아보니 남성의 귀두 같기도 하다.
이 곳 동네 사람들은 또 거북바위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하긴 보는 사람마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생각과 느낌이 다 다르니까 각자의 느낌이 맞을 것이다.
조금 더 멀어진 배맨바위다.
사실 조금 밋밋한 능선길인데 저 바위 하나가 굉장한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다.
그렇게 시시각각 모습이 변하는 배맨바위를 보면서 20분쯤 걷다보니 청룡산 정상이란다.
사실 뭐 평범해서 정상 느낌도 없다.
그런데 그 정상에서 보는 전형적인 평화로운 시골 풍경은 옛날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요즘 천지개벽한 유명산들 아래의 산동네와 달리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시골풍경이 정겹다.
쥐바위.
왜 쥐바위인지 감이 잘 오질 않는다.
쥐바위 아래쪽에 진짜 쥐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 틈새에 갸날픈 진달래가 이쁘게 피었다.
쥐바위에서 다시 1km쯤 걷다보면 사자바위가 나온다.
사자바위에서는 도솔암쪽 전경이 더 가까이 보인다.
U자를 그리며 한바퀴 돈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옆에서 본 배맨바위다.
이 모습을 끝으로 이제 희어재를 지나 하산길로 접어든다.
U자를 그리며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도솔천계곡에 내려섰다.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는 벌써 봄이 한창이다.
도솔제의 물빛도 완연한 봄 느낌이다.
이제 사실상의 산행은 끝이 났다.
여기서부터 선운사를 지나 주차장까지는 평지나 다름 없기때문이다.
역시 산은 가을이 최고다.
특히 선운산은 가을이 최고인 산이다.
반면에 어느 산이나 이맘때쯤의 산은 밋밋하기 그지없다.
눈도 없고 푸르름도 없고 단풍도 없는 어정쩡한 풍경.
선운산도 좀 그렇기는 했지만 조망이 워낙 좋고 아기자기한 난이도 덕분에 질루할 틈이 없는 멋진 산행을 했다.
산행코스:관리사무소 ㅡ선운사 ㅡ자연의 집 ㅡ진흥굴 ㅡ도솔암 ㅡ천마봉 ㅡ낙조대 ㅡ배맨바위
청룡산 ㅡ쥐바위ㅡ도솔암 ㅡ진흥굴 ㅡ자연의집 ㅡ선운사 ㅡ관리사무소(천천히 4시간30분)